작품소개
연재시작일: 2017.11.17
1. 작품 소개<br/><br/>“나에게 아직도 그 미안한 감정이 남아 있다면, 나를 선택해.”<br/><br/><br/>AE그룹의 막내딸, 사생아, 절름발이 그리고…… 백색증을 가진 백설공주, 정하민.<br/>손대기만 하면 부서질 것 같은 그녀 앞에 그가 나타났다.<br/>10년 전 하민이 망가뜨린, 비운의 축구선수 우정헌.<br/>달라진 모습으로 10년 만에 나타난 정헌은 하민에게 계약결혼을 제안하는데…….<br/><br/><br/>“결혼이 안 된다면 잠깐 곁에 두기라도 해.”<br/>“곁에 잠시 두면?”<br/>“너 그런 거 잘하잖아. 곁에 두고서 사람 피 말리면서 손끝 하나로 부리는 거.”<br/>“…….”<br/>“하민아, 가장 잘하는 걸 해.”<br/><br/><br/>2. 미리 보기<br/><br/>“AE 정 회장이 오늘내일한다는 소린 들었어.”<br/>정 회장. 사람들이 하민의 아버지인 정유성을 부르는 호칭이다. 아직 언론은 막고 있지만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얘기다. 오빠인 주호는 이미 후계자 수업을 끝마쳤다. 지금 모든 가족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주호가 아버지의 죽음 뒤 최소한의 흔들림으로 큰 타격 없이 회장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br/>“독신주의자였던 정하민이 선보러 다니는 거, 그래서 아냐?”<br/>그와는 두 달 전 10년 만에 재회했다.<br/>하지만 자신이 독신주의자라는 사실을 이미 전부터 알았던 양 말하는 정헌이 낯설었다.<br/>“……맞아.”<br/>“결혼을 안 하면 유산 상속에서 뺀다는 소문이 돌던데.”<br/>느른하게 묻는다. 하민의 입술에서 대답이 떨어지기 전인데, 저 느른한 물음은 단박에 목줄을 당길 것처럼 매섭다.<br/>아쉬운 듯 손을 하민의 볼에서 손을 뗀 정헌이 손님용 소파에 멋대로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br/>AE그룹을 이끌어온 정 회장의 개인 자산은 그 규모가 막대했다. 정 회장의 죽음을 앞두고 하민이 선보러 다닌다는 소문이 돌자 유산 상속 때문일 거란 추측이 돌았다.<br/>하민의 얼굴이 굳었다.<br/>그녀는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조용히 정헌을 응시했다.<br/>입술이 떨어질 듯 말 듯하다. 옅은 색의 립글로즈가 발라져 있는 그 입술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헌은 기다렸다. 괜히 손을 뻗어 이 침묵을 깨고 싶지 않았다.<br/>“……맞아.”<br/>머릿속에 온통 정헌이 한 말, 자신이 가장 잘하는 걸 하라는 말이 떠오른다. 제가 손끝 하나로 사람을 부리며 피 말리게 했다는 그때가 떠올랐다. 그가 기억하는 건 그게 전부였을 거란 생각에 희미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br/>“그래서 정 회장님이 돌아가신 뒤에 깨끗이 이혼해줄 사람으로 찾고 있어.”<br/>목소리는 한 치도 떨리지 않았다. 담담하게, 마치 진실처럼 술술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가 디퓨저의 리드스틱을 손가락으로 무의미하게 돌리고 있었다.<br/>하민이 천천히 카운터를 돌아 나와 그가 앉아 있는 소파의 맞은편으로 걸어왔다. 약간씩 저는 다리를 서늘한 시선이 끈질기게 주시한다.<br/>“깨끗하게라.”<br/>툭.<br/>그의 손에서 리드스틱이 부러졌다. 그게 마치 정헌의 심경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br/>“네가 왜 이러는 줄 알아. 새로 앱 개발하는 데 투자금 필요하다면서.”<br/>그녀의 말에 정헌이 짧게 웃었다.<br/>“나한테 아주 관심이 많았나 봐?”<br/>“네가 왜 나한테 이러는지 궁금했거든.”<br/>입안에 모래가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가 바늘이 되어 혀를 찔렀다. 하민은 눈을 내리깔고서 그의 손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러진 리드스틱이 마치 언젠가 끊어졌던 그와 자신의 사이처럼 보여 조금 웃음이 나왔다.<br/>“너도 돈 필요하니?”<br/>하민이 고요하게 대놓고 정헌에게 물었다.<br/>“돈이야 항상 필요하지.”<br/>심상하게 답하면서 그가 손을 뻗어 하민의 턱을 들어올렸다.<br/>“그리고 이런 걸 물을 땐 상대방 눈을 보고 하는 게 예의 아니겠어?”<br/>이 남자가 갖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br/>그가 죽을 만큼 원망스러웠을 때도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런 관계를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정헌의 입이 뻔뻔해 보여 하민이 가슴에서 북받치는 덩어리를 꾹 내리눌렀다.<br/>“나랑 선봤던 남자랑 너랑 다를 게 뭐야?”<br/>결국엔 명예와 재산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여자를 곁에 데려다두고 올라설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남자들. 우정헌이 그런 남자였었나? 10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본 지 겨우 두 달 된 그의 속내를 하민은 전혀 알 수 없었다.<br/>그녀가 아는 것은 그에게 친구들과 차린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난 IT 기업이 있고 이번에 새로운 앱을 개발하는데 투자자들마저 고개를 저을 정도로 모험적인 것이기에, 그가 제 사비까지 모두 쏟아붓느라 재정적으로 곤란한 상황이라는 사실.<br/>“나는 적어도 욕망에 충실했고, 먼저 도망간 적 없어.”<br/>마치 도망간 자신을 탓하는 것 같다. 그의 손끝에서 묻어난 향기가 어떤 건지 하민은 도저히 분간할 수 없었다.<br/>“그리고 넌 나에게 굉장히 미안하잖아. 아직도 비가 오는 날이면 다리가 아파, 하민아.”<br/>그건 그녀도 마찬가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온몸이 곱아들고 가게를 열지도 못할 만큼 고열에 시달렸다.<br/>“나에게 아직도 그 미안한 감정이 남아 있다면,”<br/>하민은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아마 그가 협박처럼 제안할 이 뒷말을 자신은 거부할 수 없노라고.<br/>“나를 선택해.”<br/>눈앞이 어지러웠다. 그의 주위로 빙글빙글 세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끝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br/>이미 방향을 잃었다.
1. 작품 소개“나에게 아직도 그 미안한 감정이 남아 있다면, 나를 선택해.”AE그룹의 막내딸, 사생아, 절름발이 그리고…… 백색증을 가진 백설공주, 정하민.손대기만 하면 부서질 것 같은 그녀 앞에 그가 나타났다.10년 전 하민이 망가뜨린, 비운의 축구선수 우정헌.달라진 모습으로 10년 만에 나타난 정헌은 하민에게 계약결혼을 제안하는데…….“결혼이 안 된다면 잠깐 곁에 두기라도 해.”“곁에 잠시 두면?”“너 그런 거 잘하잖아. 곁에 두고서 사람 피 말리면서 손끝 하나로 부리는 거.”“…….”“하민아, 가장 잘하는 걸 해.”2. 미리 보기“AE 정 회장이 오늘내일한다는 소린 들었어.”정 회장. 사람들이 하민의 아버지인 정유성을 부르는 호칭이다. 아직 언론은 막고 있지만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얘기다. 오빠인 주호는 이미 후계자 수업을 끝마쳤다. 지금 모든 가족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주호가 아버지의 죽음 뒤 최소한의 흔들림으로 큰 타격 없이 회장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독신주의자였던 정하민이 선보러 다니는 거, 그래서 아냐?”그와는 두 달 전 10년 만에 재회했다.하지만 자신이 독신주의자라는 사실을 이미 전부터 알았던 양 말하는 정헌이 낯설었다.“……맞아.”“결혼을 안 하면 유산 상속에서 뺀다는 소문이 돌던데.”느른하게 묻는다. 하민의 입술에서 대답이 떨어지기 전인데, 저 느른한 물음은 단박에 목줄을 당길 것처럼 매섭다.아쉬운 듯 손을 하민의 볼에서 손을 뗀 정헌이 손님용 소파에 멋대로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AE그룹을 이끌어온 정 회장의 개인 자산은 그 규모가 막대했다. 정 회장의 죽음을 앞두고 하민이 선보러 다닌다는 소문이 돌자 유산 상속 때문일 거란 추측이 돌았다.하민의 얼굴이 굳었다.그녀는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조용히 정헌을 응시했다.입술이 떨어질 듯 말 듯하다. 옅은 색의 립글로즈가 발라져 있는 그 입술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헌은 기다렸다. 괜히 손을 뻗어 이 침묵을 깨고 싶지 않았다.“……맞아.”머릿속에 온통 정헌이 한 말, 자신이 가장 잘하는 걸 하라는 말이 떠오른다. 제가 손끝 하나로 사람을 부리며 피 말리게 했다는 그때가 떠올랐다. 그가 기억하는 건 그게 전부였을 거란 생각에 희미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그래서 정 회장님이 돌아가신 뒤에 깨끗이 이혼해줄 사람으로 찾고 있어.”목소리는 한 치도 떨리지 않았다. 담담하게, 마치 진실처럼 술술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가 디퓨저의 리드스틱을 손가락으로 무의미하게 돌리고 있었다.하민이 천천히 카운터를 돌아 나와 그가 앉아 있는 소파의 맞은편으로 걸어왔다. 약간씩 저는 다리를 서늘한 시선이 끈질기게 주시한다.“깨끗하게라.”툭.그의 손에서 리드스틱이 부러졌다. 그게 마치 정헌의 심경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네가 왜 이러는 줄 알아. 새로 앱 개발하는 데 투자금 필요하다면서.”그녀의 말에 정헌이 짧게 웃었다.“나한테 아주 관심이 많았나 봐?”“네가 왜 나한테 이러는지 궁금했거든.”입안에 모래가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가 바늘이 되어 혀를 찔렀다. 하민은 눈을 내리깔고서 그의 손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러진 리드스틱이 마치 언젠가 끊어졌던 그와 자신의 사이처럼 보여 조금 웃음이 나왔다.“너도 돈 필요하니?”하민이 고요하게 대놓고 정헌에게 물었다.“돈이야 항상 필요하지.”심상하게 답하면서 그가 손을 뻗어 하민의 턱을 들어올렸다.“그리고 이런 걸 물을 땐 상대방 눈을 보고 하는 게 예의 아니겠어?”이 남자가 갖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그가 죽을 만큼 원망스러웠을 때도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런 관계를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정헌의 입이 뻔뻔해 보여 하민이 가슴에서 북받치는 덩어리를 꾹 내리눌렀다.“나랑 선봤던 남자랑 너랑 다를 게 뭐야?”결국엔 명예와 재산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여자를 곁에 데려다두고 올라설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남자들. 우정헌이 그런 남자였었나? 10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본 지 겨우 두 달 된 그의 속내를 하민은 전혀 알 수 없었다.그녀가 아는 것은 그에게 친구들과 차린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난 IT 기업이 있고 이번에 새로운 앱을 개발하는데 투자자들마저 고개를 저을 정도로 모험적인 것이기에, 그가 제 사비까지 모두 쏟아붓느라 재정적으로 곤란한 상황이라는 사실.“나는 적어도 욕망에 충실했고, 먼저 도망간 적 없어.”마치 도망간 자신을 탓하는 것 같다. 그의 손끝에서 묻어난 향기가 어떤 건지 하민은 도저히 분간할 수 없었다.“그리고 넌 나에게 굉장히 미안하잖아. 아직도 비가 오는 날이면 다리가 아파, 하민아.”그건 그녀도 마찬가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온몸이 곱아들고 가게를 열지도 못할 만큼 고열에 시달렸다.“나에게 아직도 그 미안한 감정이 남아 있다면,”하민은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아마 그가 협박처럼 제안할 이 뒷말을 자신은 거부할 수 없노라고.“나를 선택해.”눈앞이 어지러웠다. 그의 주위로 빙글빙글 세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끝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이미 방향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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