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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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YES 24
작품소개
연재시작일: 2016.02.01
1. 작품 소개<br/><br/>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br/>은재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을 때, 도독 소리가 들렸다. 간밤에 머츰했던 비가 다시 기세를 올렸다.<br/>아침에도 비가 내리고 있기를.<br/>그리하여 우리 또 사랑하기를.<br/><br/><br/>※ 본 작품은 ‘가시꽃의 이중주’와 시리즈입니다.<br/><br/><br/>2. 작가 소개<br/><br/>나자혜<br/><br/>느린 여행과 굽 낮은 신발과 승패가 가려지는 야구 경기를 좋아하며, 걷거나 뛰면서 글쓰기 노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기계가 발명되기를 기다리고 있다.<br/><br/>홈페이지: www.lovenwisdom.com<br/>트위터: www.twitter.com/lovenwisdom<br/><br/><br/>▣ 출간작<br/><br/>아이스크림처럼, 레몬처럼<br/>별의 바다<br/>얼음불꽃<br/>13월의 연인들<br/>꿈꾸는 오아시스<br/>우리들의 시간꽃<br/>가시꽃의 이중주<br/><br/><br/>3. 미리 보기<br/><br/>석영은 침대에 누운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의식이 없는 여자를 그의 아파트로 데려온 것이 한 시간여 전. 여자는 눈을 감고 잠에 빠져 있었다. 여자의 얼굴에 귀를 갖다 댔을 때 들리는 숨소리가 아니라면, 그는 여자가 밀랍인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해쓱한 얼굴과 가는 팔다리. 침대에 얌전히 놓인 손가락들. 미동 없는 파리한 입술. 모든 것이 불길하도록 창백했다.<br/>석영은 여자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뜨거웠다. 여자의 온몸이 열로 들끓었다. 병원으로 데려가야겠지만, 여자의 정체를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br/>여자는 어떤 소지품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이었다. 핸드백도 없고, 지갑도 없었다. 연락처를 적은 팔찌를 차지도 않았다. 외계인은 아닐 테고. 돈도 없이 카페에서 커피는 어찌 마셨나? 이렇게 아프면서 외출은 왜 했고. 여자는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br/>석영은 찬물에 적신 타월을 가지고 와 여자의 이마에 올렸다. 냉기를 감지했는지 여자가 움찔했다.<br/>“이봐요.”<br/>석영은 여자의 어깨를 가만히 흔들었다.<br/>“가지 마.”<br/>여자의 입술이 달싹였다. 석영은 고개를 숙였다.<br/>“가지 마. 나 혼자 두고 가지 마. 정혁아…….”<br/>여자가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br/>석영은 여자를 떼어내려 했다. 여자가 막무가내로 그에게 매달리며 뺨에 얼굴을 부볐다.<br/>“정혁아. 정혁아…….”<br/>여자는 보드랍고 뜨거웠다.<br/>“정혁아. 정혁아…….”<br/>애타게 누군가를 부르던 여자의 입술이 그의 입술에 닿았다.<br/>흡! 석영은 숨을 가두었다. 몸이 여자에게 반응했다. 낭패였다.<br/>여자는 그를 끌어당기면서 몸을 붙였다. 안는다 해도 여자가 반항할 것 같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여자는 외려 적극적으로 응할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파서 의식이 없는 여자를 안는 건 반칙. 게다가 다른 남자 대용이라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br/>석영은 여자의 손길을 뿌리치고 침대를 벗어났다.<br/>“정혁아. 정혁아…….”<br/>신열 앓듯 헛소리를 하던 여자가 다시 잠에 빠졌다.<br/><br/>긴 찬물 샤워를 한 석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그가 빠진 딜레마를 곱씹었다. 침대를 차지한 여자는 그가 누리던 토요일의 평화를 무참히 깨버렸다. 어떻게 한다? 의식이 없는 사람을 내다 버릴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언제까지 저대로 둬? 신원조차 불명한 여자를. 깨어나 그를 납치범으로 몰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잠결에 남자 이름을 부르는 걸 보면 애인도 있는데. 남의 애정사에 얽히는 건 아닌가? 더럽게 꼬여버린 하루다.<br/>초인종이 울렸다. 중국음식 배달이 도착했나 보다.<br/>석영은 현관문을 열고 음식을 받았다.<br/>“음식이 평소보다 많은데요. 집에서 데이트라도 하시나 봐요?”<br/>단골인 중국 레스토랑의 젊은 남자직원이 헤죽거렸다. 남의 일에 신경 끄시지. 석영은 날카로운 눈길을 내리꽂고 음식 값과 팁을 건넸다. 그의 예민한 반응에 배달직원이 재빨리 돌아섰다.<br/>현관문을 잠근 석영은 음식을 들고 주방으로 가다가 멈춰 섰다. 배꼼 열린 침실 문 사이로 말간 얼굴이 삐져나와 있었다. 깨어나셨군.<br/>여자가 커다란 눈을 굴리며 밖을 살폈다. 현관에서 주방으로 가는 동선에서 침실이 보인다는 걸 까맣게 모른 채, 전쟁에 처음 나선 어설픈 척후병처럼.<br/>“일어났어요?”<br/>석영은 침실 문을 향해 외쳤다. 놀란 여자가 얼굴을 거두고 문을 닫아버렸다.<br/>석영은 음식을 내려두고 침실 문을 노크했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여자가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겁을 잔뜩 먹은 얼굴이었다. 맑은 눈망울이 커질 대로 커져 불안하게 흔들렸다.<br/>“배고프지 않아요?”<br/>석영은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을 뱉어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혹은 실없는 질문이었다.<br/>여자가 입술을 깨물었다.<br/>“나와요. 그쪽이 누군지, 어디가 아픈지, 상황 설명은 먹으면서 듣죠.”<br/>석영은 주방 쪽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딴에는 여자를 배려한 건데, 여자의 얼굴에 깔린 두려움이 짙어졌다.<br/>“배가 고플 것 같아서 뭐 좀 먹으라는 거예요. 집에 데려다 주려면 그쪽이 누군지 알아야겠다는 거고. 겁먹을 필요 없어요.”<br/>석영은 부드럽게 이르고 미소를 밀어냈다.<br/>“금방 나갈게요.”<br/>여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피했다.<br/>석영은 그를 보지도 않는 여자에게 눈인사를 하고 돌아서 주방으로 갔다. 테이블을 세팅하고 음식을 테이블에 올리고. 테이크아웃 포장용기를 정리해 쓰레기통에 넣고. 냉장고에서 탄산수와 과일 주스를 꺼내도록 여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br/>“이봐요. 뭐 해요?”<br/>석영은 침실 쪽으로 가면서 물었다. 널찍한 거실에 그의 목소리가 공명했다. 늘 혼자 지내는 공간인데, 혼자라는 느낌이 살갗을 긁었다.<br/>석영은 침실로 달려갔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문을 왈칵 열어젖혔더니, 텅 빈 방이 그를 맞았다. 빈 침대. 빈방. 여자는 없었다. 침실에 딸린 욕실에도, 드레스 룸에도.<br/>젠장. 도망가버렸다. 겁먹은 토끼 같던 여자가 내빼는 솜씨는 고양이잖아. 현관문 소리는 왜 못 들었지?<br/>석영은 허허한 방을 서성이다 침대 맡에서 파란 종이 백을 발견했다. 꽃잎을 싼 셔츠를 담은 백이었다. 빗속에서 꽃잎을 구하는 일이 존재의 의미라도 되는 것처럼 굴던 여자가, 이걸 미련 없이 버리고 사라졌다.<br/>석영은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쓸어 올렸다. 지금 이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까? 불쾌하고, 당황스럽다. 낭패스럽고, 허망하다. 그리고 여자의 실종이 몹시 서운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앓던 이 같던 여자였는데. 그의 삶에서 이렇게 빠져나간 것이 야속하다. 왜인지는…… 알 게 뭐냐?<br/>석영은 백에서 셔츠를 꺼냈다. 셔츠를 펼치자 꽃잎들이 쏟아져 내렸다. 팔랑이던 붉은 꽃잎들이 하얀 시트 위에 내려앉는다. 나비처럼. 눈 위의 발자국처럼. 처음 사랑을 치른 여자의 은밀한 흔적처럼.<br/>도독. 도독. 빗줄기가 창을 두드렸다. 예고 없이 찾아든 비가 이 도시를 적시고 있었다.<br/>토끼가 고양이가 되고. 구원한 이가 버림을 받고. 도둑처럼 찾아든 인연이 도둑처럼 빠져나가고.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도시에 비가 내린다. 그 비의 이름은 세 라 비.<br/>세 라 비. 그래, 그게 인생이지.<br/>너는 네 길을 가고. 나는 내 길을 가고.<br/>석영은 침대에 털썩 앉았다. 침대에 흩뿌려진 붉은 꽃잎들이 그를 고요히 올려다보았다. 석영은 꽃잎 하나를 쓰다듬었다. 꽃잎은, 그에게 안겨오던 여자처럼, 가볍고, 연약하고, 보드라웠다. 1. 작품 소개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은재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을 때, 도독 소리가 들렸다. 간밤에 머츰했던 비가 다시 기세를 올렸다.아침에도 비가 내리고 있기를.그리하여 우리 또 사랑하기를.※ 본 작품은 ‘가시꽃의 이중주’와 시리즈입니다.2. 작가 소개나자혜느린 여행과 굽 낮은 신발과 승패가 가려지는 야구 경기를 좋아하며, 걷거나 뛰면서 글쓰기 노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기계가 발명되기를 기다리고 있다.홈페이지: www.lovenwisdom.com트위터: www.twitter.com/lovenwisdom▣ 출간작아이스크림처럼, 레몬처럼별의 바다얼음불꽃13월의 연인들꿈꾸는 오아시스우리들의 시간꽃가시꽃의 이중주3. 미리 보기석영은 침대에 누운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의식이 없는 여자를 그의 아파트로 데려온 것이 한 시간여 전. 여자는 눈을 감고 잠에 빠져 있었다. 여자의 얼굴에 귀를 갖다 댔을 때 들리는 숨소리가 아니라면, 그는 여자가 밀랍인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해쓱한 얼굴과 가는 팔다리. 침대에 얌전히 놓인 손가락들. 미동 없는 파리한 입술. 모든 것이 불길하도록 창백했다.석영은 여자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뜨거웠다. 여자의 온몸이 열로 들끓었다. 병원으로 데려가야겠지만, 여자의 정체를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여자는 어떤 소지품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이었다. 핸드백도 없고, 지갑도 없었다. 연락처를 적은 팔찌를 차지도 않았다. 외계인은 아닐 테고. 돈도 없이 카페에서 커피는 어찌 마셨나? 이렇게 아프면서 외출은 왜 했고. 여자는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석영은 찬물에 적신 타월을 가지고 와 여자의 이마에 올렸다. 냉기를 감지했는지 여자가 움찔했다.“이봐요.”석영은 여자의 어깨를 가만히 흔들었다.“가지 마.”여자의 입술이 달싹였다. 석영은 고개를 숙였다.“가지 마. 나 혼자 두고 가지 마. 정혁아…….”여자가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석영은 여자를 떼어내려 했다. 여자가 막무가내로 그에게 매달리며 뺨에 얼굴을 부볐다.“정혁아. 정혁아…….”여자는 보드랍고 뜨거웠다.“정혁아. 정혁아…….”애타게 누군가를 부르던 여자의 입술이 그의 입술에 닿았다.흡! 석영은 숨을 가두었다. 몸이 여자에게 반응했다. 낭패였다.여자는 그를 끌어당기면서 몸을 붙였다. 안는다 해도 여자가 반항할 것 같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여자는 외려 적극적으로 응할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파서 의식이 없는 여자를 안는 건 반칙. 게다가 다른 남자 대용이라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석영은 여자의 손길을 뿌리치고 침대를 벗어났다.“정혁아. 정혁아…….”신열 앓듯 헛소리를 하던 여자가 다시 잠에 빠졌다.긴 찬물 샤워를 한 석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그가 빠진 딜레마를 곱씹었다. 침대를 차지한 여자는 그가 누리던 토요일의 평화를 무참히 깨버렸다. 어떻게 한다? 의식이 없는 사람을 내다 버릴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언제까지 저대로 둬? 신원조차 불명한 여자를. 깨어나 그를 납치범으로 몰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잠결에 남자 이름을 부르는 걸 보면 애인도 있는데. 남의 애정사에 얽히는 건 아닌가? 더럽게 꼬여버린 하루다.초인종이 울렸다. 중국음식 배달이 도착했나 보다.석영은 현관문을 열고 음식을 받았다.“음식이 평소보다 많은데요. 집에서 데이트라도 하시나 봐요?”단골인 중국 레스토랑의 젊은 남자직원이 헤죽거렸다. 남의 일에 신경 끄시지. 석영은 날카로운 눈길을 내리꽂고 음식 값과 팁을 건넸다. 그의 예민한 반응에 배달직원이 재빨리 돌아섰다.현관문을 잠근 석영은 음식을 들고 주방으로 가다가 멈춰 섰다. 배꼼 열린 침실 문 사이로 말간 얼굴이 삐져나와 있었다. 깨어나셨군.여자가 커다란 눈을 굴리며 밖을 살폈다. 현관에서 주방으로 가는 동선에서 침실이 보인다는 걸 까맣게 모른 채, 전쟁에 처음 나선 어설픈 척후병처럼.“일어났어요?”석영은 침실 문을 향해 외쳤다. 놀란 여자가 얼굴을 거두고 문을 닫아버렸다.석영은 음식을 내려두고 침실 문을 노크했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여자가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겁을 잔뜩 먹은 얼굴이었다. 맑은 눈망울이 커질 대로 커져 불안하게 흔들렸다.“배고프지 않아요?”석영은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을 뱉어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혹은 실없는 질문이었다.여자가 입술을 깨물었다.“나와요. 그쪽이 누군지, 어디가 아픈지, 상황 설명은 먹으면서 듣죠.”석영은 주방 쪽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딴에는 여자를 배려한 건데, 여자의 얼굴에 깔린 두려움이 짙어졌다.“배가 고플 것 같아서 뭐 좀 먹으라는 거예요. 집에 데려다 주려면 그쪽이 누군지 알아야겠다는 거고. 겁먹을 필요 없어요.”석영은 부드럽게 이르고 미소를 밀어냈다.“금방 나갈게요.”여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피했다.석영은 그를 보지도 않는 여자에게 눈인사를 하고 돌아서 주방으로 갔다. 테이블을 세팅하고 음식을 테이블에 올리고. 테이크아웃 포장용기를 정리해 쓰레기통에 넣고. 냉장고에서 탄산수와 과일 주스를 꺼내도록 여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이봐요. 뭐 해요?”석영은 침실 쪽으로 가면서 물었다. 널찍한 거실에 그의 목소리가 공명했다. 늘 혼자 지내는 공간인데, 혼자라는 느낌이 살갗을 긁었다.석영은 침실로 달려갔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문을 왈칵 열어젖혔더니, 텅 빈 방이 그를 맞았다. 빈 침대. 빈방. 여자는 없었다. 침실에 딸린 욕실에도, 드레스 룸에도.젠장. 도망가버렸다. 겁먹은 토끼 같던 여자가 내빼는 솜씨는 고양이잖아. 현관문 소리는 왜 못 들었지?석영은 허허한 방을 서성이다 침대 맡에서 파란 종이 백을 발견했다. 꽃잎을 싼 셔츠를 담은 백이었다. 빗속에서 꽃잎을 구하는 일이 존재의 의미라도 되는 것처럼 굴던 여자가, 이걸 미련 없이 버리고 사라졌다.석영은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쓸어 올렸다. 지금 이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까? 불쾌하고, 당황스럽다. 낭패스럽고, 허망하다. 그리고 여자의 실종이 몹시 서운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앓던 이 같던 여자였는데. 그의 삶에서 이렇게 빠져나간 것이 야속하다. 왜인지는…… 알 게 뭐냐?석영은 백에서 셔츠를 꺼냈다. 셔츠를 펼치자 꽃잎들이 쏟아져 내렸다. 팔랑이던 붉은 꽃잎들이 하얀 시트 위에 내려앉는다. 나비처럼. 눈 위의 발자국처럼. 처음 사랑을 치른 여자의 은밀한 흔적처럼.도독. 도독. 빗줄기가 창을 두드렸다. 예고 없이 찾아든 비가 이 도시를 적시고 있었다.토끼가 고양이가 되고. 구원한 이가 버림을 받고. 도둑처럼 찾아든 인연이 도둑처럼 빠져나가고.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도시에 비가 내린다. 그 비의 이름은 세 라 비.세 라 비. 그래, 그게 인생이지.너는 네 길을 가고. 나는 내 길을 가고.석영은 침대에 털썩 앉았다. 침대에 흩뿌려진 붉은 꽃잎들이 그를 고요히 올려다보았다. 석영은 꽃잎 하나를 쓰다듬었다. 꽃잎은, 그에게 안겨오던 여자처럼, 가볍고, 연약하고, 보드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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