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연재시작일: 2014.04.10
“맞아요, 나 겁쟁이예요. 약혼녀가 버젓이 옆방에서 자고 있는데, 침대로 다른 여자를 끌어들이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누구처럼 용기 있는 사람이 못 되거든요.”
보경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난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렸다. 당시 여행에 동행한 친구들 앞에서 한낱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만 그 치욕적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터였다.
“최소한 나한테 해명할 기회는 줘야지. 안 그래?”
“무슨 해명이요? 술기운에 욕망을 어쩌지 못했다는 소리를 또 들어야 하는 건가요? 순간의 실수, 그저 짧은 외도였다고요?”
“이봐, 너무 비약하지 말자고. 외도는 결혼한 사람한테나 적용하는 거지. 우리는 그저 약혼만 했을 뿐이잖아. 그러니까 여기서 대충 접자고.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은 그저 단순한 결혼이 아니야. 집안끼리의 약속이고, 사업의 연장이지. 동일제약과 일성화학이 하나로 결합하면 단숨에 재계 삼위의 거대 그룹이 된다는 거 몰라?”
“나랑 결혼하려고 한 이유가 바로 그거였군요. 재계 삼위 거대 그룹의 총수. 동일제약도 결코 작은 회사는 아닌데…… 사람 욕심이라는 게 정말 끝이 없군요.”
보경의 입가에 짙은 자조가 깃들었다. 형민이 이제 와서 새삼스레 무슨 소리냐는 듯 생뚱한 표정을 지었다.
“돈과 권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게 내 지론이거든. 당신도 내가 사랑 때문에 청혼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어차피 사랑 없는 정략결혼인데, 서로 마음 맞는 상대 만나 화끈하게 즐기면서 살자고요?”
“그렇게 못할 이유 없잖아. 안 그래?”
형민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죄의식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애당초 잘못했다는 생각조차 없는 것이 틀림없다. 문득 보경은 모든 일이 지긋지긋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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