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정보
다른 작품 리뷰/인터뷰
「2022년 신진 스토리 작가 육성 사업」
vol. 3
[바사니조_헌팅 닥터스]
렉터, 시긔와 아진이 작가 | 재담미디어
글 [렉터 작가]
Q. <바사니조> 스토리를 구상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이전,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의료과실로 아내를 잃은 한 남편 분의 사연을 접했었습니다. 남편은 병원 측과 오랜 기간 법정싸움을 이어가던 도중 회사를 관뒀고, 홀로 남은 아들을 키워 내야 했습니다. 그가 매일 블로그를 통해 하늘나라로 간 아내에게 쓰는 편지를 보게 되었는데 그 때 굉장히 울컥했던 것 같아요. 아내가 살아 있었을 당시의 기록들, 병상에 있었을 때의 대화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아들과 자신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적은 글들이었는데 죽은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의 일상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어요. 가족을 의료사고로 먼저 떠나 보내고 남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이야길 쓰고 싶어졌습니다. 이후에도 의료사건에 대해 깊이 있게 취재하던 중, 약자에게 가해지는 의료범죄에 대해서도 범위를 확장하여 취재를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바사니조>라는 작품의 스토리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Q. 신진스토리작가 지원사업에 멘토링 지원이 있어 멘토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멘토링을 통해 알게 되거나 깨닫게 된 스토리 기획, 연출법은 무엇인가요?
A. 웹툰은 독자로서 재미있게 봐왔지만 직접 글 콘티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웹툰은 컷 하나에도 디테일한 연출이 중요한데 저는 연속적인 동작들도 '주인공이 달려가고 있다', '문이 열린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끝내버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한 부분을 바로잡는 작법을 많이 알려주신 것 같습니다.
또, 웹툰 독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웹툰을 소비하는지, 어느 지점을 좋아하는지, 어떤 건 지겨워하는지 등을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컷 하나에서 모든 걸 다 보여줘야 하는 웹툰이란 장르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장르가 메디컬물이어도 웹툰 독자층은 지루하거나 너무 설명이 많으면 흥미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취재한 것들을 많이 쳐내가며 발 밑에 두고 썼습니다.
Q. 그림작가님과의 협업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협업을 진행하시며 깨달은 점이 있으시다면?
A. 시긔와 아진이 팀 작가님들께서 웹툰을 연재하신 경력도 있었고, 수상 경력도 화려하셨습니다. 웹툰 쪽에서는 이미 잔뼈가 굵으신 분들인데 글작가가 원하는 방향에 대해 많이 귀 기울여 주셨습니다. 특히 첫 만남 때 글 콘티 페이퍼를 수차례 읽고 분석을 하신 상태로 오셨는데 그때 이미 프로라고 생각했고, 작가님들에 대한 신뢰감이 생겼습니다.
Q. 본래 작품명은 정확히 <바사니조_헌팅 닥터스>이죠. 해당 작품명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A. '바사니조'는 고대 헬라어로 '고되게 처단한다. 응징한다. 처단한다' 등의 의미입니다. 메디컬 빌런들을 주인공이 '바나시조'하게 처단한다는 의미로 제목을 지었습니다. '헌팅 닥터스'는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헌팅 (배드) 닥터스'인데 글자수를 고려해서 '배드'는 뺐습니다.
Q. 부제가 '헌팅 닥터스'라면 의료계를 비판하는 이야기일 것이라는 인상을 자칫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A. 의료계를 비판하는 이야긴 아닙니다. 사기를 치는 기업가를 비판하는 이야기가 기업인 전체를 비판하는 이야기가 아니듯 <바사니조>가 의료계 전부를 매도하거나 비판하는 이야긴 아닙니다. <바사니조>는 범죄에 해당하는 범죄인에게 복수하는 이야기입니다. '메디컬'의 탈을 썼지만 범죄를 근절시키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독자분들의 공감을 일으킬만한 명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남주와 여주가 밥을 먹다가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는 장면이 인상 깊어요. 일부러 밥을 먹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당돌하게 여주가 "숟가락 하나 놓죠?" 하면서 밥을 먹거든요. 그러고는 남주가 술을 따라 마시니 여주도 술을 마셔요. 신분은 고3이긴 하지만 여주는 나이가 많아서 이미 성인이거든요. 여주는 흔히 '학생이 무슨 술이냐. 날라리냐. 부모 없는 티를 낸다' 이런 말들만 듣고 살아왔는데 남주가 여주에게 무심하게 하는 말이 "아껴 먹어"거든요. 여주인 다희는 부모님이 없이 컸고, 산전수전 다 겪어서 쉽게 당황하거나 어쩔 줄 몰라하는 캐릭터가 아니에요. 남주인 선무진도 지옥에서 온 아저씨 콘셉트인데 둘이 서로 붙을 때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다가 이 장면에서 좀 서로가 편해지는 것 같고, 이렇게 남주와 여주 투샷이 잡혔을 때 에너지가 생기게 되더라고요. 밀당과 케미가 살아있는 장면입니다. 밥-> 술 -> 어른 이렇게 의미심장한 주제들을 아무렇지 않게 티키타카로 대화하는 장면인데 이 장면이 기억에 남네요.
또 다른 장면은 복수에 대해 이야길 나누는 장면이에요. 남주가 자신이 나쁜 개미지옥 의사를 처리했다고 하니 여주가 고맙다는 말 대신 화를 내요. 왜 남의 복수를 아저씨가 뭔데 대신하냐고요. 그러자 남주가 조용히 살다 보면 강가에서 그 놈들의 시체가 떠내려올 거라고 말을 해주거든요. 그러면서 넌 그 시체가 세라고. 그냥 일상을 살라는 이야기였는데 여주가 화를 내요. 그럼 자긴 평생 강가를 떠나지 못할 거 아니냐며. 개굴개굴 개구리도 아니고 뭐냐고. 그때 남주가 깨닫게 돼요. 아. 나도 강가를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강가 주변을 배회하고 있구나. 그렇게 남겨진 사람들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이 마음에 들어요.
Q. 소재 자체가 전문적인데 웹툰화하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예컨대 그림작가님들, 담당 PD와의 소통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과정을 소개해주신다면?
A. 담당 PD님께서는 아무래도 웹툰 전문가셔서 그림작가와 글작가 사이의 조율을 굉장히 잘해주셨습니다. 특히 조용한 카리스마가 있으신데 메일 워딩이나 말씀하실 때 조곤조곤 말씀하시는데도 굉장히 설득력이 높았고, 대부분 옳은 말씀을 하셔서 어려움 없이 잘 진행됐습니다. 인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작품 특성상 의학적 용어가 자주 등장할 것 같은데 관련 부분은 어떻게 사전 조사를 진행하셨나요?
A. 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취재했던 아이템들이 큰 도움이 되었고, 그때 신뢰를 쌓았던 법조인, 의료계 인사들과도 이후 추가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의사 출신 검사, 의사 출신 변호사, 간호사 출신 변호사, 대학병원 의사, 개원의, 레지던트, 인턴, 의대생 등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추가로 환자 단체 등에서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평소 의료 기사들을 체크하며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Q. 작품을 쓰시며 어려웠던 점이 있으셨는지?
A.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바사니조>는 의료범죄를 비판하는 이야기이지, 의료계 전반을 비판하는 이야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의료과실로 환자를 잃은 가족들의 아픔과 병원 내에서 생사와 사투를 벌이는 의사들의 직업의 무게 사이에서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는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쾌감과 사이다를 넣어 재미를 살리면서도 독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는 따뜻한 이야기가 되는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Q. 1화 초반부에는 일부 의사들의 의료사고를 풍자하는 듯 보였으나 말미에는 '다희'의 청년 정착 지원금을 찾으며, 대출 광고 전단지를 보는 '유이'의 모습에서 성형 중독의 현실을 풍자하는 듯한 인상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님께서 궁극적으로 말씀하고자 싶으신 바는 무엇인가요?
A. 이 이야기가 겉으로 드러나는 장르는 메디컬물이지만 그와 함께 궤를 같이 하는 하나의 플롯은 바로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바사니조>는 메디컬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남주와 여주가 서로를 구원하고, 구원받는 이야기입니다. 가족을 잃고 남겨진 가족들이 유사 가족을 만들어 삶을 살아가는 휴머니즘도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여주가 성형중독이라고 오해를 하고, 도발적이고 사람을 열받게 하는 구석이 있다고 초반에 여깁니다. 여주는 남주가 부패한 데다가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자신이 지금껏 보았던 믿을 수 없는 흔한 어른의 전형이라고 여겨 경멸을 합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오해했고, 오히려 절대 고독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서로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림 [시긔와 아진이 작가팀]
Q. 다른 팀과 달리 두 작가님께서 팀으로 공동 작업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작업 파트를 어떻게 나누시는지 궁금합니다.
A. 대부분의 작업을 함께 나누어하고 있습니다. 다만, 스토리에 관련된 작업은 아진 작가가 맡고 있습니다.
Q. 두 작가님께서 공동 작업을 하시다 보니 캐릭터에 대한 논의 과정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이런 경우 보통 어떤 식으로 진행을 하셨나요?
A. 캐릭터를 제작하는 부분은 앞서 말씀드렸던 렉터 작가님께서 준비해 주신 PPT 자료가 도움이 되었고, 렉터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캐릭터의 이미지와 저희가 생각하는 캐릭터의 이미지가 비슷하여 캐릭터를 제작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Q. 글작가님과 공동작업을 진행하시며, 그림작가님들의 의견을 따라 기존의 스토리 및 캐릭터 설정이 일부 변경된 부분도 있나요?
A. 일부 조금씩 변경된 부분들은 있으나 크게 봤을 때는 거의 없습니다. 렉터 작가님께서 원래 가지고 계시던 작품의 의도를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진행시키기 위해 시퀀스 순서를 조정한 부분 정도가 가장 큰 변동 사항인 것 같습니다.
Q. 공동작업은 이런 점이 좋다, 이런 점은 안 좋다 하는 것이 있을까요? 두 분께서 서로 의견이 충돌하실 경우 어떻게 해결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A. 가장 좋은 점은 외롭지 않다는 겁니다. 작업하면서 생기는 여러 고충과 고민을 함께 나누기 때문에 심적으로 많이 안정이 됩니다. 작업을 나누어 하기 때문에 시간도 절약되고, 부담도 적어 좋습니다. 저희가 죽이 잘 맞는 편이어서 지금까지는 의견 충돌이 난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서 해결 방법은 아직 모르겠네요. ㅎㅎ
Q. 작가님들께서 뽑는 명장면은 어떤 장면인가요?
A. 개미지옥 의사가 고문을 받는 장면과 4화 마지막에 무진이 천막을 걷고 마인드 맵을 보는 장면이 명장면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말씀드린 장면에서는 의사가 마약류의 주사를 소녀에게 투약하며 약간 희번뜩하게 웃는 모습이 나오는데 쾌락적으로 웃는 표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주인공 검사가 평소에는 껄렁한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그 장면에서 만큼은 그래도 최대한 소름 돋게 그려야겠다 싶었던 게 눈빛이 갑자기 바뀌는 게 콘티에서도 드러나더라고요. 한순간에 사람이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구나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바사니조>라는 작품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그리고 이 작품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장면들인 것 같습니다. 둘 다 카타르시스와 전율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