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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자가 추천하는 이주의 '웹툰 속 어떤 순간’] 춤추는 도련님 - 진짜 어른이 되고 싶어졌어요

EditorAnne | 2016-12-26 00:42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주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단출한 옷가지와 책 몇 권 정도의 가벼운 짐을 정리한 후에는 슬렁슬렁 동네를 돌아 봤습니다. 집 앞에 바로 카페가 두 개나 있는 게 맘에 들었고 그 옆에 작은 성당도 좋았어요. 안전함이 전제되어 있기만 하다면 낯선 동네를 산책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 입니다. 레진에서 연재가 완결된 양지 작가의 새로운 웹툰 춤추는 도련님역시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낯선 길을 거닐다 맞닥뜨린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같은 웹툰입니다.


30대 초반의 용주는 내심 사모하던 교수님의 집을 정리하러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 옆집에 사는 한 남자는 곱상한 얼굴에 고급스러운 옷차림과 까탈스런 몸가짐을 가진 특이한 인물입니다. 마치 은둔이라도 하듯 세상과의 소통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죠. 용주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그 남자를 도련님이라 칭하기 시작합니다. 심상치 않은 이웃과 티격태격하며 조금씩 정이 들어가는 설정은 사실 로맨스 중에서는 흔한  클리셰인데, 작가는 진부하지 않게 풀어냈습니다. 감정이 극적으로 치달을만한 상황에서도 한 발짝 물러난 관조의 시선으로 등장인물과 사건을 바라보지요. ‘어느 대목에서 웃어야해?’ ‘이 대목에서는 울어야 하나?’라는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에피소드에서 눈을 떼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 어느새 최종회를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진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죠.



[웹툰 리뷰]춤추는 도련님 - 하양지

일견 로맨스물처럼 보이는 작품이지만 사실 엄청난 성장드라마에요. 인상적인 장면이 몇 군데 있어요. 용주가 사모하던 교수님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 듯 제자를 병실로 부릅니다. 장미를 들고 찾아간 용주는 병실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봅니다. 그리고 교수님은 용주에 대한 진심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넌지시 드러냅니다. 그리고 3일 뒤 세상을 떠나지요.


[웹툰 리뷰]춤추는 도련님 - 하양지

주인공은 용주와 도련님이지만 자꾸만 교수님에게 눈이 갔던 건 오랜만에 보는 '진짜 어른'의 캐릭터라서였던가 봐요. 작품 내에서 교수님은 '소멸'의 아이콘입니다.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만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가 기거했던 시골집은 용주의 부주의때문에 타버리고 말죠. 하지만 교수님은 용주를 탓하지않고 고맙다고 말해줍니다. "네가 잘 정리해 준 거"라고요. 동시에 도련님의 회상을 통해 교수님이 시골에서 보냈던 즐거운 시간들이 오버랩됩니다. 자신의 병을 알고 시골에 집을 마련한 그는  허락된 시간과 자유를 힘껏 누립니다. 그저 멍하니 앉아있거나 시를 쓰고 발가벗고 수영도 했죠. 그 와중에도 교수님은 도련님과 천천히 이웃이 되었고 나름의 방식으로 용주를 애정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웹툰 리뷰]춤추는 도련님 - 하양지

품위 있는 인간의 소멸은 또다른 시작의 계기를 만듭니다. 도련님은 교수님의 부탁대로 작은 집을 짓습니다. 그리고 용주는 그 곳에 머무르며 도련님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게 됩니다. 자연의 것이 썩으면 토지를 비옥하게 하는 비료가 되듯, 교수님이 있었기에 도련님과 용주도 인간으로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자신만의 성에서 살던 도련님은 세상으로 나오고, 하릴없이 살던 용주도 미래를 기대하게 되거든요.



[웹툰 리뷰]춤추는 도련님 - 하양지


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직장을 옮기고 이사를 하며 많은 감상이 제 머리를 스쳐갔어요. 이사 마지막 날에 그 동네에서 가장 좋아했던 카페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홍차 한 잔을 시켜두고 노트북 자판이 부서져라 두드리던 주말풍경의 무대는 다른 장소가 되겠구나. 이 카페로 다시 돌아올 확률은 거의 없겠지. 한 공간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도 다시 볼 일은 없겠죠. 마음은 굴뚝같아도 각자의 삶은 모두 바쁘고, 어쩌다 우연히 혹은 노력으로 만남을 성사한다고 해도 그 시절의 그 관계는 아닐 테니까요. ‘시간은 흐르고 있고 우리는 매순간 이별을 경험 한다는 명제를 가장 뚜렷하게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언젠가 모든 것이 사라지며 그 중에는 나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되새길 때마다 힘이 빠집니다. 특히나 연말에는 더욱 그렇지 않나요? 떠들썩함과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일상은 연말이 되면 더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세면대 앞에서 화장을 지우며 초췌한 얼굴을 볼 때마다, 돌멩이도 소화시키던 나의 위가 나날이 음식물을 버거워하는 걸 확연히 느낄 때 말이에요. 나만 빼고 모두가 잘 나가는 것 같고 착착 돌아가는 세상의 궤도 속에 나는 포함되지 않은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 때도 말이죠.


그럴 때면 이제는 두 남자를 떠올릴래요. 죽음 앞에서도 인간과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교수님과, 쉰이 되어 다시 세상밖으로 떨리는 발걸음을 옮기는 도련님이요.  트럼프나 최씨여인 같은 인물들이 만드는 거대한 물줄기가 세상을 휘저어도 내 삶이 떠내려가지 않게, 단단하고 강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극소수인 친구들과 아름다운 소멸과 또다른 시작의 쳇바퀴를  함께 한다면 더욱 좋겠죠. 그 명분으로 집들이만 일주일째입니다. 부엌에는 연일 버터와 향신료 냄새가 끊이지 않네요. 쌓여가는 술병도요. 괜찮아요.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노력은 지금 이 순간부터, 다이어트는 2017년 1월 1일부터 하렵니다.




필진 소개

직업은 기자.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날의 웹툰 챙겨보기. 주말 일정은 늘 신사동의 한 만화카페에 칩거하기.
인터뷰 때 늘 하는 질문, ‘혹시 웹툰 보세요?’ 놀라운 사실은 각양각색의 수많은 인터뷰이 중 웹툰을 보지 않는 이는 1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하여 오늘도 진지하게 외치는 바, 웹툰은 우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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