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테 - 이승에 머무르는 영혼들의 이야기
레테의 강. 망각의 강이라고도 불린다. 그리스 신화에서 죽은 자들이 건너는 강으로 묘사되며, 이 강을 건너거나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모두 전생의 모든 기억을 지운다고 알려져 있다. 강도하 작가는 이 신화에서 모티프를 따와 우리 정서에 맞게끔 이 망각의 물을 마시는 장소를 약수터로 설정하였다. 이런 창의적인 발상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참 궁금하다. 이 작품에서는 죽은 자들은 바로 다음 장소로 향하지 않고 길게는 1년 동안 인간세계에 머무른다고 설정되어있다. 천국이라고도, 지옥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장소.. 전생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빨리 그 기억을 잊고 싶어 산에 올라 약수터의 물을 마시고 기억을 깡그리 잊고 어딘가로 떠난다. 그 후의 삶. 아니 삶이 끝났으니 삶이라 할 수 없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존의 강도하 작가의 작품과는 다르게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만의 가벼운 느낌은 놓지 않았기에, 마냥 무겁기만 할 것 같은 주제를 그만의 스타일로 창조해 내었다.
주인공이 일주일 출장을 다녀온 뒤 그의 아내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강가에 뿌려졌다. 그가 자리를 비웠을 때 결정되고 벌어진 모든 것. 원망할 사람이 없으니 처제에게 얄궂은 원망의 소리를 늘어놓는다. 한동안을 폐인처럼 지내다 원망의 대상은 친구들로 - 신에게로 옮겨간다. 그녀는 정말 착한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갈 리가 없는데..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을 믿지 않았던 남자에게 신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차반 같은 놈들도 멀쩡히 살아있는 세상인데.. 왜 내 아내였을까.
그는 애꿎은 교회 붉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녀는 착하게 살았으니 제발 천국을 보내달라고 한다. 그렇게라도 믿고 싶어지는 게 사후세계일 것이다. 더더군다나 자신의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면..
아내를 만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아무 생각 없이 터널을 터벅터벅 걷다 보니 아침이 되었다.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밤이었는데.. 주인공은 이곳에서 맨발의 할아버지를 만난다. 그는 이곳이 지옥이라 했다. 여기 건너오기까지 전만 해도 주인공도 그렇게 믿었다. 이곳이 지옥이라고.. 하지만 살아있을 때보다 자신의 주변의 사람들을 찾아가 자신의 살아생전 자신이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는 것만큼 잔인한 것은 없을 것 같다.
맞다. 이곳이 지옥이다. 절친한 친구들도.. 가족들도.. 심지어 그가 키우던 고양이마저도.. 그들은 떠난 사람을 잊지만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남은 사람들을 지켜봐야 한다.
어쩌면 작가는 약수터에서 망각의 물을 마시고 속세의 기억과 미련을 다 잊어야지만 가는 곳이 천국이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할아버지와 대화중 주인공은 어쩌면 아내가 이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고 그녀를 찾아 헤매게 된다. 그녀가 떠난 지 10달.. 이제 2달 남았다. 남겨진 시간 동안 그녀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극에 달한 주인공에게 할아버지가 넌지시 하는 한마디. 자네가 간절히 원하니 찾을 수 있을 거라는 - 이 말은 파울로 코엘료의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그 명언이 생각나게끔 한다.
이곳에 남겨진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사연이 있다. 학교폭력으로 죽은 여학생, 그녀를 사랑하는 건달이었던 남자, 자신이 죽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회사원, 부모를 남겨두고 어린 나이에 죽은 두 남매까지.. 여학생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아이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며 그들을 괴롭히고, 남자는 죄 없는 사람들을 패고 다닌 건달이었던 그의 과거 때문에 여학생에게 상처가 된다.
죽은 두 남매는 매일 부모의 집에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자고 생활한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그들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돈 때문에 죽은 사람들과, 돈 때문에 모였다가 흩어지고 돈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떠난 사람들의 심정.. 유산상속 문제는 형제 간에 잦은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심하면 칼부림이 나기도 한다. 이런 사회적인 문제를 그의 작품에 녹여낸 것 또한 정말 사는게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게끔 만든다.
“죽은 사람한테 너무 잔인하지 않아요? 현실대로 알려주고 인정하게 만드는 게 낫잖아요.”
“그럼, 또 죽이는 거 아녀? 저 친구의 믿음까지 죽일 권리가 누구한테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