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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비극과 사랑 "사랑의 슬픔"

오지상 | 2016-09-12 12:35

 

 

 

 

‘사랑의 슬픔’이라. 아주 고전적인 제목이다. 근대 이전의 영문학이나 오래 전의 작품을 재해석한 연극의 제목에 어울릴 법하다. 2015년에, 유료로 결제하는 웹툰 사이트에서 이런 제목이라니! 직관적으로 작품의 내용을 알 수 있기는 하지만, 작가의 자신감이 돋보인다. 물론 제목이 고전적이라는 것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일이니, 꼭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썸네일의 고퀄리티 작화 덕분에 제목에서 망설일 독자는 많이 없을 것 같다.

 

사랑 이야기에는 무수히 많은 변주가 존재하는데, 웹툰 ‘사랑의 슬픔’에서 사랑에 빠진 두 남녀 ‘레프’와 ‘알비나’ 사이를 잇는 건 운명적인 만남이나 물질적인 이해관계, 전생의 인연이 아니라 ‘터부’에 대한 강한 긍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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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는 언제나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다니는 기이한 남성으로, 그가 한시도 빼놓지 않고 장님이 되다시피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특별한 능력 때문이다. 레프는 다른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데, 여기서 본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이나 감정을 읽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부터 과거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의 인생을, 마치 자식의 성장 과정을 기억하기 위해 찍은 기록 영상처럼 샅샅이 훑게 된다. 물론, 부모라면 절대 카메라에 담지 않았을 어둡고 은밀한 과거까지 전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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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최악인 것은 ‘읽힘 당한’ 상대가 그 사실을 생생히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낯선 이에게 발가벗겨져 치욕을 당한 것처럼 분노하고, 레프는 배척당한다.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난 ‘알비나’는 유일하게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이다. 레프의 능력에는 알비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알비나의 눈을 보고 레프는 그녀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지만 어린 알비나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워한다.

 

자신의 능력을, 혹은 자신을 처음으로 ‘긍정’하는 알비나를 만난 레프는 적극적으로 알비나와 친해지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인연은 어른이 되어서까지 계속되고, 레프는 알비나와 함께 있을 때면 눈에 두른 천을 벗는다.

 

알비나는 부잣집의 따님으로, 아름다운 용모와 사회적으로도 고아원의 아이들을 신경 쓰는, 소위 모범생과의 전형적인 ‘아가씨’다. 그녀의 주변에 단 한 가지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역시 서커스단의 기이한 남자 ‘레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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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는 어렸을 때부터 서커스단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언제까지나 서커스단에 머물러 있을 것 같지 않다. 서커스단이 머물고 있는 도시는 -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깃발을 휘날리는 - 점령군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고, 레프의 능력을 눈여겨 본 군인들이 서커스단을 찾는다. 경제적 지원과 안정된 거처를 원하는 서커스단은 애초부터 노리고 있던 데로 그들의 제안을 수용한다.

 

한편 도시에는 점령군을 상대로 반항하는 피 끓는 남자들이 있다. 이중에 일부는 알비나와 건너건너 인간관계가 이어져 있다. 점령군이 독심술 비슷한 능력을 지닌 레프를 원하는 것은 물론 도시의 ‘레지스탕스’들을 소탕하기 위함이다. 레프는 이를 거부하려고 하지만 그의 보호자격인 서커스단은 물론 점령군에 적극 협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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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다가오는, 거대한 체제의 압박과 파국, 위태로운 안정 위에서 비틀대고 있는 19세기 즈음의 도시, 열정만이 넘쳐나는 겁 없는 철부지 청년들의 반항, 그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의 한가운데에서 사랑하고 있는 어울리지 않는 연인들. ‘사랑의 슬픔’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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