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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토 두른 십자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김봉석 | 2016-10-31 04:35

<망토 두른 십자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슈퍼맨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38년, 배트맨은 1939년이다. 인간의 나이로 보면 이미 은퇴하고도 남았을 나이다. 슈퍼맨이야 외계인이니 영원한 젊음을 구가할 수도 있겠지만 초자연적인 능력이 전혀 없는 배트맨은 어떨까? 아무리 ‘판타지’라 해도 시간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슈퍼히어로의 계보에는 그린 랜턴처럼 2대, 3대로 바뀌는 경우도 있고, 캡틴 아메리카가 죽음을 맞이하고 윈터 솔져에게 넘겨주는 것처럼 다른 캐릭터에게 대행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리부팅도 자주 등장한다. 현대의 독자들에게 더 매력적이고 공감이 갈 수 있도록 재탄생시키는 것. 이를테면 프랭크 밀러의 <이어 원>은 배트맨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원점을 다시 그린 만화다. 제각각의 스토리를 지닌 ‘다중 우주’를 이용하여 한 캐릭터의 다양한 기원과 역사를 설명할 수도 있다.

미국의 만화 시스템은 한국, 일본과는 다르다. 대부분 스토리 작가와 그림 작가가 분리되어 있고, DC와 마블에서는 만화의 캐릭터를 소유한다. 캐릭터의 소유권이 회사에 있다는 것은 캐릭터를 끊임없이 변형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일본에서도 작가의 허락을 받거나 죽은 후 리메이크되거나 변형된 작품이 나오는 경우는 꽤 있다. <데빌맨>은 많은 작가들에 의해 속편, 외전들이 그려졌고, 테즈카 오사무의 <우주소년 아톰>의 에피소드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로 재창조되기도 했다. 다만 일본에서 리메이크는 특정한 작품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거나 개인적으로 재창조하고픈 이유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는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이미 대중에게 검증된 캐릭터를 끊임없이 변형하고 재창조한다. 마블의 어벤져스와 DC의 저스티스 리그처럼 유명한 캐릭터들이 함께 싸우거나 대립하는 이야기도 가능하다.

캐릭터의 소유권이 회사에 있는 것은 창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불리하다. 하지만 미국 만화산업이 ‘슈퍼히어로’를 이용하여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주류에 안착한 것을 본다면 긍정적인 점도 대단히 많다. 그때 그 때 알맞은 작가를 투입하여 안정적으로 작품을 만들어내고, 필요에 따라 캐릭터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미국 만화계의 혁명도 프랭크 밀러, 앨런 무어 등 새로운 시각과 감성을 지닌 작가들이 투입되면서 기존의 슈퍼히어로에게 새로운 성격과 역사를 부여했기에 가능했다. 이미 알고 있는 캐릭터이지만 새로운 작가에 의해 다른 의미와 느낌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그런 미묘한 변주는 재즈에서 스탠다드곡이 끊임없이 다른 연주자들에 의해 연주되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곡이지만 연주자에 의해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느껴지는 것.

그런 의미에서 닐 게이먼이 스토리를 쓴 <망토 두른 십자군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는 끊임없이 새로운 작가가 투입되어 만들어지는 슈퍼히어로 코믹스의 정점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샌드맨>의 작가 닐 게이먼에게 제의가 들어왔다. 배트맨의 죽음을 그린 단편. 닐 게이먼은 70여 년 동안 지속된 슈퍼히어로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짧은 단편 안에 섬광처럼 그려낸다. 단편 하나에 70년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배트맨의 장례식에 친구와 적들이 모두 모여들고 캣우먼, 알프레드 등이 그가 누구인지를 말한다. 각자의 진술은 서로 다르고, 배트맨이 누구인지, 그가 무엇을 했는지도 서로 엇갈린다. 그 광경을, 유령이 된 배트맨이 지켜본다. ‘배트맨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보상이 뭔지 아니? 배트맨이 되는 거야.’ 배트맨의 캐릭터가 시대를 거치면서 그리고 새로운 작가에 의해서 끊임없이 재창조된 역사가 이 한편에 현란하게 펼쳐진다. 이 한편으로 배트맨 캐릭터의 거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알지는 못해도 감이 온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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