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아침은 그냥 오지 않는다 - 웹툰 <밤에 사는 소녀>

조경숙 | 2020-02-28 18:11
시간은 종종 구원자로 비유된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졌을 때, 시험에 낙방했을 때, 많은 사람이 읊조리는 말이 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확실히 시간은 많은 것을 무디게 한다. 아마 그건 시간 자체의 힘이라기보다, 그것을 잊으려 애쓰는 일상이 켜켜이 쌓여 가려지게 되는 기나긴 여정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시간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혹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사실 때문에 더 절망하게 되는 때도 있다. 웹툰 <밤에 사는 소녀>(다음웹툰)의 소녀들이 살고 있는 시간이 그렇다. 이들은 결코 눈앞의 빛이 보이지 않는 밤속에 갇혀 산다.

스크린샷 2020-02-28 오후 6.07.27.png
웹툰 <밤에 사는 소녀> 표지 (출처: 다음웹툰)

소녀들이 사는 곳은 '새벽향'이다. 낮에는 문을 닫았다가, 해 질 무렵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이곳은 유사 성매매 업소다. 아직 미성년자인 이 소녀들은 이곳에서 과일을 깎거나 안주를 만든다. 이들 자매를 길러 준 이는 '새벽향'의 주인인 '정마담'이지만, 친모인 건 아니다. '새벽향'에는 정마담과 자매가 거주하지만, 밤이 되면 여기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 찾아 온다. 여기 머무는 여자들은 어떤 방식으로건 자신의 존엄성을 '얻어내고' 싶어해 누군가를 짓밟거나 깔아보며 동정하면서 자신에게 권력이 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려 한다. 주로 이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자매들이다.

그렇다고 이 자매들이 순순히 그 폭력을 감내하는 건 아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저항하고 대들고 싸운다. 싸울 뿐만 아니라, 이 공간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탈출구를 찾고자 한다. 정 마담 몰래 천장에 문을 만들어 자신만의 다락방을 만들고, 학교에서 폐쇄된 도서실에 들어가 책을 읽는다. 이 자매는 '새벽향'을 탈출해 자신들의 진짜 새벽을 만들어내고자 작은 모래성을 쌓듯 하나씩 숨 쉴 구멍을 만들어나간다. 작품 후반부에 나오지만, 이들이 '자매'인 것조차 현실과 격투를 벌인 끝에 얻은 산물이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곳, 새벽향에서는 여러 욕망이 드러나고 또 교차한다. 새벽향은 정 마담의 친구이자 주인공 '새벽'의 친모인 '향기'가 희망을 갈구하면서 '언젠간 행복해질거야'라는 희망 아래 끝내 유예하다가 한 번도 누리지 못한 미래다. 늘 가게를 가지려 했던 향기는 결국 가게를 차릴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았지만, 정 마담과의 파탄 난 관계와 갓난아이만 남긴 채 세상을 하직한다. 그 이후 정 마담이 만든 '새벽향'은 '향기'의 삶에서 유예된 만큼이나 어둡고 깊은 밤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자매들은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시간이 그들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매들은 지금 당장 자신의 소망을 찾아 떠난다. 어둠 속에서 향만 진동하던 새벽향을 떠나 그들이 찾아낸 아침은, 오랫동안 작은 낙관을 돌탑처럼 쌓아 올린 자매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결과로서 만들어진다. 이 작품에는 이들이 쌓은 돌탑을 부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돌탑을 다시 차근히 쌓도록 도와주는 사람도 등장한다.

스크린샷 2020-02-28 오후 6.10.53.png
웹툰 <밤에 사는 소녀> 30화 중 (출처: 다음웹툰)


사실 돌이켜보면 시간 자체가 해답인 적은 많지 않다. 지나온 것이 시간이라고 믿었던 순간이 많았을 뿐이다. <밤에 사는 소녀>는  '새벽향'이라는 공간에 모인 사람들을 통해, 각자 밤을 견디는 방법들에 대해 선명히 보여준다. 지금 직면한 어둠을 어떻게 넘길지, 이 안에서 어떻게 나의 존엄을 지켜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이 만화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