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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죄가 없다 - 웹툰 <토이 콤플렉스>
조경숙
| 2020-03-30 11:21
로맨스 장르가 주는 즐거움은 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극단적인 조건의 캐릭터가 만나 좌충우돌을 겪으며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시나리오를 좋아한다. 이를테면 재벌과 일반인의 만남도 그중 하나겠고, 서로 다른 세계를 살다가 만나는 이세계물이라던가 아니면 한 캐릭터가 아주 특별한 초능력을 가진 등의 서사도 그렇다. 극명하게 다른 조건을 가진 이들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신비롭다. 캐릭터들은 접점이 있을 리가 없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한 사람을 통해 갑작스럽게 대면하고, 그 충격을 서서히 극복하며 자신의 삶 안으로 그 세계를 받아들인다. 이런 서사는 대개 끈질긴 설득력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이 새로운 두 세계의 만남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발전되는 과정이 독자에게 납득되기 때문이다. 이 설득력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특정한 사건을 만들어 캐릭터들이 갈등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테고, 또 캐릭터들에게 합심하여 이루어 내야 하는 목표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니면 아예 캐릭터들을 충돌시키면서 오로지 캐릭터만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 방법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이 웹툰 <토이 콤플렉스>(이윤희)다.

▲ 토이콤플렉스 썸네일 이미지 (출처: 다음웹툰)
<토이 콤플렉스>는 여성 주인공인 '윤아'에게 섹스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생기면서부터 시작된다. 이전에도 연애는 해봤지만, 모두 일방적으로 고백 받아 사귀게 된 터라 윤아는 스스로 자기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성적으로 끌리는지 탐색할 기회가 없었다. 좋아하지 않으니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번번이 스킨십을 회피해왔던 그의 눈에 띈 건 남성 주인공 '민석'이다. 민석은 하루 일과가 온통 아르바이트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청년으로, 늘 일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윤아가 새삼 반하면서 이 둘의 관계가 시작된다.
관계의 삽을 뜬 건 윤아다. 윤아는 그날 처음 본 민석에게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고 말한다. 우여곡절 끝에 민석과 첫 섹스를 하게 된 윤아는 이후 대학 캠퍼스에서 민석을 선후배 사이로 다시 대면한다. 작품 초중반에서 이 관계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윤아에게 쥐어져 있다. 윤아는 수도 없이 민석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쫓아다니며 구애한다. 민석은 그런 윤아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한편, 눈앞의 생계를 보전할 생각에 괴로워한다. 이 두 캐릭터의 주요한 갈등 요소는 빈부 격차인데, 이건 오로지 일방적인 사랑으로 돌파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결국, 민석은 자신과 정반대의 가정환경에서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는 윤아를 자신의 삶에서 밀어내려 하고, 반복되는 민석의 저항 끝에 윤아는 결국 민석을 떠난다.
이 만화의 재미는, 여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던 두 캐릭터가 서로의 만남을 통해 각자의 욕망을 깨닫게 되는 데에 있다. 욕망이 더 억눌러져 있었던 건 민석 쪽이다. 윤아는 자신의 마음에 집중해 자신이 왜 민석을 좋아하는지를 꼼꼼하게 살핀다면, 민석은 자신의 상황을 핑계삼아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도피한다. 그뿐 아니라 '넌 부자지만 난 아니야'라며 윤아를 책망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정작 윤아가 순순히 항복을 선언하고 물러나자 민석은 그제야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감지한다. 민석이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민석은 윤아의 사랑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기로 선언하고, 이번엔 반대의 상황이 되어 윤아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 토이콤플렉스 2화 중 (출처: 다음웹툰)
이 발랄하고 귀여운 웹툰을 보면서 나는 'N번방 사건'을 떠올렸다. N번방 사건을 보며 어떤 남성들은 '피해 여성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피해 여성의 일부가 일탈계를 운영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웹툰 <토이 콤플렉스>가 연재를 시작했을 때, 처음 보는 남성인 민석에게 대뜸 같이 자자고 얘기하는 윤아의 모습에 불편함을 느낀 독자 역시 적지 않았다. 어떤 이는 댓글에 이렇게 남기기도 했다. "실제였으면 남자는 (...) 여자 바로 끌고 가서 섹스하면서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부수입 얻을 듯"
나는 이 댓글이 꽤 시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댓글은 정확히 만화와 현실의 낙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토이 콤플렉스>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누구나 안전하게 성욕을 탐색할 수 있음을 말하는 건강한 만화지만, 이 건강함에 비해 현실의 불안전성이 더 부각되어 일부 여성 독자의 입장에서는 크게 반발하는 요소가 됐다. 그러나 실상 억압되어야 하는 것은 남성들의 성폭력이지, 윤아가 내비치는 성욕이 아니다. 윤아가 안전하게 섹스를 누릴 수 있었던 상황은 확실히 만화가 설정한 이상적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지만, 그러한 공간이 현실에도 더 늘어날 수 있도록 오히려 장려해야 하지 비판할 일이 아니다. '일탈계' 피해여성이 많다는 사실 역시 이 연장선에 있다. 남성의 성폭력을 이유로 여성의 성욕이 억압되면, 여성은 더더욱 안전하게 자신의 성욕을 드러낼 수 없게 된다. 이런 경우에야말로 숨어서 드러내는, 그러나 위험성이 짙은 '일탈계'로 내몰리는 것이다. 이 댓글은 남성들의 성폭력을 비판하는 형태로 발화됐지만, 그가 향하는 바는 오히려 '피해 여성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식의 문제 제기를 강화하게 될 가능성이 있어 그가 지적하고 있는 <토이 콤플렉스>보다도 도리어 위험하다.
<토이 콤플렉스>는 19금 장면이 주를 이루는 성인물 만화로, 이들의 섹스는 파트너를 존중하고 아끼는 행위로서 그려진다. 대개 여성을 굴복시키거나 짓밟는 형태의 모욕적인 장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남성향 성인만화와 비교했을 때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나는 섹스가 더 많이 말해져야 하고, 더 다양하게 그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토이 콤플렉스>의 시도가, 그리고 또 이 작품을 주요 포털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반갑다. 이런 작품을 더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