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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칼럼] 웹툰의 장르/소재 이야기: TRPG

잠뿌리 | 2016-11-29 00:22

TRPG. 테이블 토크 롤플레잉 게임(Table-Talk Role Playing Game)의 줄임말로 실제 테이블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특정한 룰에 따라서 각자 분담된 역할을 연기하면서 대화를 통해 진행하는 게임이다. 

룰북, 필기구, 주사위 등을 사용하는 게 기본이며 외국에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현대 TRPG의 기본이 된 것은 약칭 D&D라고 불리는 던전 앤 드래곤(Dungeons and Dragons)으로 1974년에 TSR에서 발매했는데, D&D 이외에도 겁스, 소드 월드 RPG, 크리스타니아 RPG, 월드 오브 다크니스, 요마야행, 여신전생 TRPG, 페이트 등등 수많은 룰북이 출시된 바 있다. 

한국에서는 국내 게임 잡지 게임 매거진의 창간호부터 D&D가 소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D&D 한국어판 박스 팩키지가 발매됐다. 

필자는 중학생 시절 게임 매거진을 보면서 D&D 한국어판을 구입해 TRPG를 처음 접해봤지만, 당시엔 제대로 플레이를 해본 적이 없고 그때로부터 십 수 년의 시간이 지난 뒤. PC 통신 시절의 나우누리와 그 이후의 IRC 시대 때 온라인을 통해서 지인들과 D&D, 겁스, 요마야행 등을 플레이 했었고, 서너 개의 캠페인은 무사히 엔딩까지 도달했다. (똑같은 룰을 사용하지만 인터넷 채팅을 기반으로 플레이한 것이라 ORPG라고 불렀다 

본론으로 넘어와서, TRPG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웹툰의 소재로서의 TRPG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앞서 웹툰의 장르/소재 칼럼으로 가상 현실 게임 판타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TRPG는 가상 현실 게임 판타지와 같으면서도 전혀 다르다. 

정확히는, 판타지 배경의 게임이란 점에 있어서 공통점이 있지만 플레이 방식과 스타일, 지향하는 점이 정반대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가상 현실 게임 판타지는 근미래 혹은 미래 배경의 최첨단 가상 머신 기술이 도입되었고, TRPG는 반대로 책과 주사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라 우주 시대와 중세 시대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필자가 본 한국 웹툰 중에서 TRPG 소재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2010년에 환상거북 작가가 다음 만화속 세상에서 연재했던 환상주사위2013년에 루리웹 창작 만화 게시판에서 不死辛 유저가 연재했던 흔한 TRPG 만화 

환상주사위는 TRPG 역할극을 기본 베이스로 해서 팀원들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학원 드라마에 가까웠고, 흔한 TRPG 만화는 보드 게임 동아리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TRPG를 플레이하는 게임 만화였다. 

가상 현실 게임 판타지는 등장인물이 곧 게임 속 캐릭터가 되기 때문에 역할연기가 필요하지 않지만, TRPG는 반대로 현실에서 게임 속 캐릭터의 역할을 맡고,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게임 사이의 간극에서 한편의 드라마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TRPG 웹툰 중, 환상주사위가 거기에 포커스를 맞췄다.

TRPG 소재는 현실과 게임을 분명히 구분하기 때문에, 가상 현실 게임 판타지와는 지향점이 완전 다르다. 

가상 현실 게임 판타지의 일반적인 전개가 주인공이 게임 속에서 강해지고 게임 플레이를 통해 얻은 부를 현실에서 가지고 와서 셀프 보상을 받아 인생역전에 성공하는 걸 생각해 보면 TRPG의 보상은 게임 플레이를 통해 느낀 순수한 재미와 게임 플레이를 마친 후에 얻는 만족 밖에 없다. 

똑같은 전투 위주의 전개라고 해도 TRPG에서는 물리적으로 한 번에 강해질 수 있는 정도의 한계가 명확히 있어서 가상 현실 게임 판타지처럼 광속으로 레벨업을 하거나, 기연을 얻어 갑자기 확 강해질 수는 없다. 

룰에 따라 차이가 있고, 그 룰을 가지고 게임을 진행하는 마스터의 재량에 따른다고 해도 캐릭터 강해지는 감각이 컴퓨터 게임과는 다르다. 

TRPG는 게임 플레이를 진행하는데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대화선택이며, 이건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재량에 맡기는 것이라 어떤 대화. 어떤 선택이 나와서 어떤 결과에 도달할지는 마스터는 물론이고 같은 동료 플레이어도 모른다. 

컴퓨터 게임에서는 흔히 선택지가 존재하고 어떤 것을 고르냐에 따라 미리 정해진 결과가 나오는데, TRPG는 룰을 준수하는 것과 별개로 대화/선택에 의한 결과가 변칙적이라 높은 자유도를 보장하며 그게 곧 TRPG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만화의 소재 관점에서 볼 때 극적인 장치 혹은 연출을 넣기 딱 좋고. 실제로 앞서 언급한 TRPG 만화 중, 흔한 TRPG 만화에서 그런 걸 매우 잘 살렸다. 

그밖에 기존에 존재하는 룰을 사용하거나, 본인만의 새로운 룰을 만들어 쓰는가 하면. 이미 완료된 모험의 기록을 재생하여 리플레이 방식으로 진행하거나, 즉석에서 플레이를 시작한 시점에서 끝까지 진행을 하는 것 등등. 룰의 선택, 추가, 적용 방식에 대한 자유도가 높아서 오히려 가상현실 게임 판타지보다 더 유연한 구석도 있다. 가상현실 게임 판타지는 온라인 게임을 기반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룰 적용과 스토리 진행 방식 부분에 있어선 뻣뻣한 구석이 있다. 

TRPG는 아는 사람만 알고, 하는 사람만 플레이하는 게임이라 인지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외국 사람들이 가상 현실 게임 판타지를 신선하게 느끼며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반대로 한국 사람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올 여지가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디지털은 구현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있기 마련이고 TRPG는 그걸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레트로 소재로서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다음 만화속 세상에 계란계란 작가가 연재했던 헌티드 스쿨은 크라우드 펀딩을 받아 새비지 월드 룰 기반의 TRPG 룰북도 나온 바 있다. TRPG 소재로 웹툰을 그리는 것 이외에도, 웹툰 원작을 기반으로 한 TRPG 룰이 만들어지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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