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실에 ‘좋은 웹툰’이 필요한 이유

한국콘텐츠진흥원 | 2020-01-06 17:03

교실에 ‘좋은 웹툰’이 

필요한 이유


문화 권력을 잡은 매체가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 

학교 수업과는 비교도 안 되게 세련된 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글 이신애




10월 15일. 우리 반 학급문고 책꽂이에 꽂힌 만화책이 100권을 넘겼다. 한 권 두 권 사들인 책이 반년 만에 100권을 넘기다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웹툰을 미끼로 책을 넘겨보는 경험을 제공하고, 책이라는 매체 자체에 익숙해지게 만들어서 글로 된 책에까지 접근하게 만들겠다는 백색 음모의 결과다. 사실은 아이들이 만화책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그렇게 됐다. 한 권씩 늘어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이것은 전부 선생의 사비로 채워 넣은 것임을 꼬박꼬박 생색냈다. 칭찬받는 게 좋아 공부를 열심히 하던 어린이는 교대에 들어갔고, 학생들한테도 칭찬받고 싶어 하는 선생으로 자라났다. 


학급문고에 웹툰 단행본을 꽂게 된 계기는 시간을 거슬러 초임 시절로 올라가야 찾을 수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고 싶어지려면 와서 재밌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체육은 젬병이라 몸으로 때우는 건 글렀고, 뭐라도 미끼 상품을 만들려면 돈을 써야 했다. 보드게임을 샀다. 젠가와 할리갈리로 시작해서 달무티, 루미큐브, 다빈치코드 등등 인기 있는 게임들을 살 땐 좋았다. 물론 애들도 좋아했지만, 자꾸 아이들에게 화를 내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들이 종 친다고 “앗, 종 쳤네. 정리하자!”하고 후다닥 정리해서 착석할 수 있을 리가. 선생 1년 차 땐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당장은 보드게임방 운영은 좀 무리 같았다. 그래서 학급문고를 좀 잘 구성해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나는 취미란에 당당하게 독서를 써넣을 수 있는 유서 깊은 독서왕이었고, 내가 초등학생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을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 기준’ 으로 재미있는 책들을 가져다 꽂아 넣었다. 그리고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고심해서 꽂아 넣은 책들은 새 책처럼 말끔한 상태로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책 말고도 재미있는 게 너무 많은 뉴미디어 시대의 아이들한테 내 세대의 ‘유잼’ 콘텐츠를 들이대는 것은 오판이었다. 그래도 만화책을 꽂아 넣을 생각은 못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디어 교육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내게 웹툰은 ‘아이들이 이런 것을 보게 내버려 두어도 괜찮은가?’의 영역이었다. 


인터넷 개인 방송의 유해함이 연일 보도되던 시점이었고, 학교 폭력과 일진을 미화하거나 여성혐오를 셀링 포인트로 삼은 작품들이 주요 플랫폼의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혐오 표현과 폭력을 콘텐츠로 내세우는 크리에이터의 영상이 학생 놀이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학생 보호자와 상담할 때 주요 화제 역시 이런 부분이었다. “아이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할까요?”, “유튜브나 웹툰을 보지 않도록 지도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교직 경력은 짧지만 20여 년 동안 성실하게 프로 네티즌의 길을 걸어온 덕분에 상황 판단이 빠르게 섰다. 못 보고 못 하게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학급문고를 재정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애들이 볼 책을 꽂아 넣자. 웹툰 단행본은 무조건 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아이들도 좋아해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한 권, 두 권씩 채워 넣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책꽂이를 채운 책은 하일권의 〈삼봉이발소〉 와 돌배의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이었다. 매우 의도적인 선정이었다. 한창 외모를 주제로 국어 프로젝트 수업을 이끌고 있을 때였고, 체육 시간에 스탠드를 지키는 여학생들에 대한 근심이 깊을 때였다. 뒤이어 박수봉의 〈야채호빵의 봄방학〉과 허5파6의 〈여중생 A〉가 들어왔다. 영화 〈우리들〉을 보고 나서 얼마 후였다. 아이들이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길 바랐다. 내 바람을 알아차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들여온 책들은 모두 인기가 좋았다. 


특히 〈야채호빵의 봄방학〉은 초반에 꽂아 넣은 책이지만 여전히 가장 잘 나가는 책이다. 학급문고 인기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여학생들이 좋아할 거란 생각을 했었는데 성별 구분 없이 모두 좋아했다. 취향에 성별 구분을 하고 있던 나 자신도 돌아봤다.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 〈그대를 사랑합니다〉, 〈26년〉, 〈바보〉와 주호민의 〈신과 함께〉 시리즈를 한번에 들여놨는데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다. 


단행본이 스무 권을 넘겼을 때쯤부터 제대로 된 관리가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여러 아이의 손을 타다 보니 표지가 찢어지는 일이 생겼다. 반납하지 않고 책상 속에 넣어둔 채로 하교하는 아이들 덕분에 정리도 잘 안 됐다. 학급문고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전부 다 빼버리겠다는 엄포를 놓을까 하다가 안 그랬다. 여럿이 읽다 보면 찢어질 수도 있고 망가질 수도 있는데 안 혼낼 테니 무조건 그때그때 선생님에게 가져오라고 말했다. 책날개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고정하고, 미술 시간에 책갈피 만들기를 시켰다. 라벨지에 번호를 인쇄해 책 등에 순번을 붙여 놓았다. 학급문고 관리를 담당하는 아이를 뽑았고, 번호대로 정리해두게 했다. 대출기록부를 만들어서 자신이 빌려 가는 책을 또박또박 쓰게 했다. 무슨 책이 없는지 바로 보였고, 집에 가기 전에는 책을 꼭 반납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렇게 정리를 시작한 뒤부터는 잃어버리는 책도, 망가지는 책도 없었다. 읽을 책이 충분히 많으니 허겁지겁 달려가서 뽑아오는 일도, 누가 먼저 잡았느냐로 싸우는 일도 없었다. 


그 후 초의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엘렌 심의 〈환생 동물학교〉, 〈고양이 낸시〉, 스노우캣의 〈옹동스〉, 즈세의 〈카페 OK〉가 들어왔다. 친구들과 함께 읽을 책을 가져와도 좋다고 했더니 유리의 〈뽀짜툰〉을 가져온 학생도 있었다. 실과 시간에 반려동물 기르기 수업을 하던 때였다. 동물을 키우지 않는 아이들도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길 바랐다. 실제로 아이들은 2학기에 열심히 진행하고 있는 동물권리 찾기 프로젝트 수업도 잘 따라온다. 영향이 없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한편 입에 ‘남자가~’를 달고 다니며 우는 친구를 놀리던 아이가 쉬는 시간에 〈환생동물학교〉를 읽으며 몰래 눈물을 훔치는 걸 보았을 때는 약간 놀리고 싶었는데 간신히 참았다. 이때부터 책에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다. 이 책을 읽을 다음 친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쓰게 했더니 책 위로 살짝 솟은 포스트잇이 책 사이사이로 보였다. 


조심스레 꽂아 넣은 수신지의 〈며느라기〉가 반응이 좋았다. 명절 장면이 담긴 페이지에 ‘우리 집도 그럼ㅋ’ 이라는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가족 권리 선언 수업을 할 때 참고자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여성 서사에 대한 욕심으로 김정연의 〈혼자를 기르는 법〉, 돌배의 〈계룡선녀전〉 도 꽂아 넣었다. 건의사항 게시판에 ‘〈계룡선녀전〉 3권 나왔어요 사주세요’라고 적힌 걸 보고 신간이 나온 걸 알았고 3, 4, 5권을 샀다. 웹툰은 아니지만 제이미슨의 〈롤러 걸〉도 꽤 수요가 있다. ‘아이들이 읽어도 괜찮으려나?’ 하며 꽂아 넣은 시니·혀노의 〈죽음에 관하여〉를 예상했던 것보다 진지하게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읽는 아이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음에도 좋은 웹툰을 추천하는데 그치지 않고 단행본을 사서 학급문고에 채워 넣은 것은, 학교에 오고 싶게 만드는 미끼 상품 전시의 목적만은 아니다. 웹툰의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여성혐오나 폭력적인 면은 소년만화의 유구한 클리셰를 그대로 이어받아 생긴 문제이지 웹툰 매체만의 문제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주목해야 할 것은 댓글 문화다. 댓글 시스템은 작품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나, 혐오에 동조하고 혐오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다수라는 확신을 하게 만든다. 서사에 대한 타인의 판단을 자신의 판단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타인의 평가와 의견에서 의도적으로 차단되는 경험이 필요하다. 단행본으로 읽으면 그걸 경험할 수 있다. 


청소년의 향유 문화는 언제나 사회의 문제였다. 나 역시 그런 사회 문제의 당사자였던 청소년 시절이 있었다. 그 문제 안에서 나름의 길을 찾아냈었고, 아이들 역시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 반에도 혐오를 메인 콘텐츠로 삼는 유튜브를 구독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들의 유행어를 사용하고 웃었으며, 폭력과 여성혐오가 서사의 주요 골자인 웹툰을 재미있게 본다고 답했다. 그거 보면 안 된다고 하기 전에 나와 아이들이 터놓고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그 안에서 자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담임은 너희 편이란다. 그 메시지가 필요했다. 


웹툰 단행본으로 학급문고를 채우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었을까? 대출록을 만들고 운영한 학급문고는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줄 서서 책을 빌려 가는 공간이 되었다. 나 혼자 만족하나 싶어서 설문 조사도 실행해봤다. 학급문고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21명 중 17명이 매우 만족, 4명이 만족이라고 답했다. 책의 종류, 책의 양에 대한 만족도 역시 5점 만점에 평균 4.6의 점수를 받았다. 혹시 아이의 보호자 분들이 만화책이 가득한 학급문고를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반 학급문고는 내가 책을 대하는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라는 질문에 대해 ‘만화책을 읽다 보니 글 책에도 관심이 생겼다’, ‘책은 그냥 다 싫었는데 약간 생각이 바뀌었다’, ‘웹툰은 다 이상한 거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감동적인 작품이 많다는 걸 알았다’는 답이 가득한 것을 보니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좋은 웹툰이 더 많아지고, 단행본으로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웹툰처럼 아이들한테 메시지를 전달하기 좋은 매 체는 별로 없다. 반려동물 수업을 할 때 동기유발 자료로 올드독의 〈노견일기〉를 가져왔다.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을 보고 태권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여학생이 있었고, 〈여중생A〉 주인공 미래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남학생이 있다. 문화 권력을 잡은 매체가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 학교 수업과는 비교도 안 되게 세련된 형 태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하진의 〈카산드라〉가 단행본으로 나와 있으면, 연재 중단이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제목만 보고 ‘이건 걸러야지’ 생각했던 이연의 〈화장 지워주는 남자〉는 진작 보지 않은 걸 후회할 정도로 꾸밈 노동과 외모 압박에 대한 사회 구조를 제대로 다룬 작품이었다. 


좋은 웹툰을 아이들과 함께 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폭력이 난무하고 여성혐오를 밥 먹듯 전시하는 웹툰에 대한 비판도 더 쉽게 나왔다. 내부에 저항감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좋은 방향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웹툰이 필요하다. 보수적이기 그지없는 학교 교실 안의 책장에 당당하게 꽂아 둬도 전혀 꿀릴 것 없는 작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과서 안에서조차 차별적인 요소와 성별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내용과 삽화를 너무나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트렌디한 보조자료 없이는 제대로 된 인권 감수성을 길러줄 방법이 없다. 그러니 학생과 교사가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웹툰이 계속해서 필요하다. 좋은 작품의 목록이 계속해서 갱신되고 있으니 내년 즈음에는 책꽂이를 하나 더 장만해야 할 듯하다. 




◆ 이신애 | 페미니스트 교사고, 수업자료 만드는 것이 취미입니다. 수업자료 만들기 좋아하는 거 진심입니다. 생산해낸 자료는 http://rocketrracoon.blog.me에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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