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을 죽이는 방법>, 시뮬라크르 시대의 신화란 무엇인가

한국콘텐츠진흥원 | 2020-01-14 09:51

<신을 죽이는 방법>,

시뮬라크르 시대의 신화란 

무엇인가


신화가 일종의 장르 관습처럼 소비된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신화와 현실의 구분이 모호할 정도로 거대한 시뮬라크르의 시대에 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글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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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을 죽이는 방법> (글 나락, 그림 바밤. 네이버웹툰 연재)


신화(myth)는 전승(구전)되어오는 권위 있는 말이나 이야기를 의미하 는 ‘뮈토스(mythos)’를 어원으로 한다. 그래서 신화를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인정받은 권위 있는 이야기’라고 정의하는 것은 본질에 가장 근접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우리는 신화가 오랜 세월을 거쳐 중첩되어 온 집단의 무의식을 담보로 대중성을 확보하는 요소라고 정의해 왔다. 


하지만 우리가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소비하고 있는 신화는 이러한 미학적이고 구조적인 의미보다 오히려 관습적이다. 관습적인 소비 형태에서 신화는 이미 하나의 세계관을 열어주는 기재다. 그것은 그동안 신화를 활용한 수많은 에피고넨(epigonen, 아류)의 소비 경 험이 축적된 현대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는 이미 하나의 세계관이 되었다. 그것들을 소비할 때 우리는 더는 캠벨이나 보글러, 프로프가 정언한 의미적 맥락들을 의 식하지 않는다. 그저 복제된 이미지로서 다양한 시뮬라크르 세계로의 진입을 용이하게 하는 관습으로 작용할 뿐이다. 현재 신화란 더는 집단의 무의식에 작용하는 구조가 아니다. 물론 그러한 맥락들이 여전히 기저에서 작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소비의 입장에서는 그저 하나의 세계관에 지나지 않는다. 신화 속 영웅들도 장르적 관습을 수행하는 캐릭터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모든 것들을 그렇게 소비해 버리는 시대이고, 신화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웹툰 <신을 죽이는 방법>은 신화를 장르적 관습에 따라 소비할 때 나타나는 특징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신화를 철저하게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한다. 신들과 공존하고 있는 세계를 설정하면서 다양한 문화권 내에서 발생한 신화들을 자유롭게 섞어놓는데, 이는 다양한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을 위해 활용될 뿐이다. 때문에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 인도 신화나 이집트 신화와 같이 동서양을 막론한 지역 기반의 신화뿐 아니라 기독교와 불교, 힌두교의 신화와 같이 종교를 통해 형성된 신들까지도 아무런 경계 없이 포섭된다. 


<신을 죽이는 방법>의 주인공 주하나는 신화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고고학과 대학원생(조교)이다. 그는 현실 세계에서 인간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신들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사들의 집단에 들어간다. 그것은 신의 이름을 명명하고 부정함으로써 신의 존재를 멸할 수 있는 니체라는 캐릭터의 능력 발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단순히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신화에 대한 지식은 거대하게 뒤섞여 있는 설정의 덩어리에서 이야기에 적합한 요소들을 소환하는 역할을 한다. 주인 공의 특징을 통해 신화의 데이터들이 이야기 안으로 소환되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가장 큰 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인공의 설정은 <신을 죽이는 방법>이 신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소비하고 있는지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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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최강의 신살자 롱기누스는 예수를 찌른 롱기누스 창 신화를 모방하고 재창작한 캐릭터다.


이렇게 신화가 일종의 장르 관습처럼 소비된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신화와 현실의 구분이 모호할 정도로 거대한 시뮬라크르의 시대에 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신화는 캠벨의 이야기처럼 보편화된 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상에 산다. 특히 사이버스페이스의 일상화는 가상과 현실의 구분 필요성과 가치의 차등을 서서히 풍화시키고, 이전에는 꿈이 현 실을 모사하여 불가능한 것들을 염원하였던 것이라면 이제는 현실이 그러한 꿈의 세계들을 모사하여 구축되기도 한다. 


또한 현재 신화는 원전에 대한 접근보다는 2차 창작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우선 소비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원전을 통해 신화의 주인공들을 만나기 전에 그것을 데이터베이스로 해서 모방하고 재창 작한 캐릭터들을 우선 소비한다. 그렇게 신화의 의미를 활용한 창 작이나 의미 맥락에 깊게 관여하기를 원한 경우에야 비로소 원질 신화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러한 경험의 층위 변화는 기존의 신화가 가지고 있던 의미의 재고를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물론 여전히 신화를 구조적인 의미에서 차용하고 있는 작품들 역시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웹툰 <신과 함께>가 그에 해당할 것이다. <신과 함께>는 한국의 전통적인 내세관인 불교의 세계관과 제주도의 설화 요소를 도입해 스토리로 복원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들은 그와 같이 신화를 복원한 작품들을 다양하게 양산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렇게 집적된 데이터베이스를 자유롭게 활용하여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해야 한다. <신과 함께>가 열어놓은 불교 기반의 내세관은 이제 새로운 데이터베이스가 되었다. 이후에 <야수의 노래>와 같은 작품들이 발표되고 수용될 수 있었던 원인도 이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베이스 소비 형태의 신화 활용은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구조적인 의미가 있는 신화를 표피적으로밖에 활 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고정된 가치가 무너지고, 의미가 파편화되어 재맥락화되고 재의미화되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인류가 이제까지 집적해온 집단 무의식들이 어느 한순간 전복될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때문에 <신을 죽이는 방법>에서 니체에 대한 설정들이 다소 유치해 보이고, 올림포스 신들이 제우스에게 아버지와 아들의 도를 이야기하는 전혀 신화적이지 않은 설정을 구사하더라도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 신화마저도 데이터베이스로 삼아 수없이 많은 에피고넨을 양산하면서, 그것들로 존재에 대한 인정 투쟁을 벌이는 거대한 장의 한가운데에 있다. 시뮬라크르 시대, 신화는 이야기를 존재하게 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과감하고 활발하게 직접 데이터베이스들을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다 보면 마블 코믹스나 디즈니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이후 새롭게 향유하게 될 새로운 현대 신화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이야기를 자아내는 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부분이라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지용 | SF 비평가, 연구자, 장르비평팀 텍스트릿 소속,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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