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내가 여기 있어도 된다는 말 <사귄 건 아닌데>

심지하 | 2020-05-18 09:57

내가 여기 있어도 된다는 말: 사귄 건 아닌데사귀는건아닌데.jpg

"넌 그런 느낌 들 때 없어? 여기가 나를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

"다들 서울 서울 해대니까 도대체 거기가 얼마나 대단한 곳인가 싶어서 나도 그냥 호기심에 올라 와본 건데.. 요즘은 그 호기심이 주제 넘게 느껴지더라. 너무 순진했나봐."

"상처받았던 것 같아. 인정하려고. 못 섞여서 상처받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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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인구 절반 이상이 서울에 거주한다는 말이 들려온다. 거창한 사회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고, 또 그럴싸하게 들리는 이야기다. 왜일까? 당장 주변을 보더라도 사람들은 큰일을 하려면, 꿈을 이루려면, 이런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혹은 '뭐든 해보려거든' 이유로 서울에 간다. 누구 하나, 어느 개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모두의 이야기이고, 그러니까 내가 잘못해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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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같은 아이돌>, <소년 가라사대>, <박살 소녀> 등등. 일찍이 유려하고 개성 넘치는 그림체로 인기를 끌었던 민홍 작가의 <사귄 건 아닌데>는 화려하고 독특한 이전 작들에서 보여준 개성을 그대로 가지고 오면서도 어딘지 감성 넘치고 아련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도입부에서는 타지에서 버티는 2~30대 사람들이라면 공감할법한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내가 나고 자랐던 고향이 아닌 전혀 낯선 땅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문득, 의문이 들고 외로워지는 때가 오는 그 순간. 무슨 큰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평상시와 다름없는 한 때를 보냈다고 생각하다가도 어제, 오늘, 지난달, 작년. 의식치 못한 일들이 쌓이고 쌓였다가 툭 터지는 날. 내가 원해서, 내가 좋아서,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내가 나를 믿어서 해온 일이라 누구를 원망하지도, 그렇다고 놓아버리지도 못하고 꾹꾹 쌓아온 것들이 터지는 날. 주변에는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뿐이라. 공감이 곧 위로가 될 때도 있지만 불안이 되기도 한다. 나를 걱정해서, 염려해서 해준 말들이 때로는 나를 가시처럼 찌르기도 하고. '그러려던 게 아닌데' 서로 악의 없이 건넨 말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후회하고 사과해도 구겨진 마음에는 자국이 남는다. 어떻게든 해보고 싶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막막해지는 날. 단 하나 확실한 단어를 찾다 보면 '외롭다'는 결론이 나오는 날. 처음 여기에 왔던 때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불안한 건 마찬가지인 것 같고, 그렇다고 그때로, 혹은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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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귄 건 아닌데>는 '그런 날들이 있지. 조곤조곤,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그저 덤덤하게 이야기하면서 거기에 만화적인 두근거림과 환상을 한 스푼씩 넣어 독자들에게 건넨다. 한 마디로 끝나지 않는 불안감과 외로움이 어떻게 해야 해소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공감이 도리어 불안이 되어 초조해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힘을 주는 웹툰, <사귄 건 아닌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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