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포] 작품을 스스로 추월하다. - 꽃들 속에 숨다.

므르므즈 | 2016-09-23 17:37

[웹툰 리뷰]꽃들 속에 숨다 - 김계후


     뭘 그리고 싶던 간에 욕심이 작품을 넘어서면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리 <햄릿>의 비극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들 <말광량이 길들이기>의 독자에게 떠들어선 안 되는 것이다. 그 친구는 아직 햄릿을 읽지 않았다. 나는 이제 희극의 첫 페이지를 넘겼을 뿐인데 당신은 비극의 전환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는 대화할 수 없다.


  꽃이 만발한 학원의 학생인 바넬라는 같은 학원의 동급생 키이라를 짝사랑한다. 짝사랑을 어떻게든 전해보려 달달한 전개를 뻗어가는 동안 그녀에겐 많은 친구들도 생긴다. 1부 바람 술사 에피소드는 산뜻한 친구들과 함께 먹먹한 감동을 전해 주었다. 주인공의 비중이 주객전도 됐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아름답게 끝난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옳은 법이고 비극은 약간의 아쉬움을 달래줄 좋은 감미료다.


  만일 2부가 재밌었다면 훌륭한 애피타이저이자 멋진 전환점이라 할 수 있었겠지만, 이게 웬걸, 2부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메인 디쉬가 나왔는데 웨이터가 접시를 맨발로 밟고 첨벙 소리를 내면서 스케이트를 타고 온 기분이랄까. 1부의 조리 과정과 전혀 상관없이 호감도가 같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2부에선 등장인물들의 과거사와 지금까지 나왔던 떡밥들을 풀며 결말을 향해 달려 나간다. 그런데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우리에게 일체의 여유도 주지 않는다. 몇 세대에 걸쳐서 실험체로 살아온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은 기억을 되찾으면서 지금껏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데, 그걸 기억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린다. 근데 우리는 이 친구가 사랑받는 과거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심지어 이 친구가 무슨 실험에 동원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 등장인물들이 자신들만 아는 수신호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감동적으로 헤어진다. 현실도 아닌 픽션에서도 여성에게 소외감을 느낄 줄은 몰랐는데 정말로 만화와 단절된 기분을 전해줬다.


  다른 전개도 마찬가지다. 뒷공작을 하던 이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녀의 동기는 무엇이었는지는 대강이나마 설명해주지만 그녀를 물리치는 장면은 갑작스럽다. 이처럼 엔딩으로 다가가는 모든 장면이 앞 뒤 다섯 컷 내에서 간략하게 규정되고, 그걸 납득하라고 강요한다.


  때로 판타지 작품은 우리가 모르는 설정을 한 에피소드의 메인 소재로 사용할 때가 있다. 이 경우 소재에 대한 설명이 말미에 붙기 마련이다. 예컨대 ‘마르미자르’에 대해 실컷 다룬 다음 마지막에 설명문을 붙이는 것이다. 마르미자르 = 말미잘 이렇게. 이런 전개는 세계관의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끌어올릴 수 있어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미 세계관에 대해 설명이 되어 있고 에피소드에서 다루는 소재가 스토리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 그게 ‘마르미자르’여선 안 된다. 후에 말미잘이라고 설명을 해준다고 해도, 몇 컷 전에 이게 말미잘이라고 설명을 하더라도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마르미자르여선 안 되는 것이다. 적어도 말미잘이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약속된) 방식으로, 우리가 아는 단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도록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그림과 독특한 세계관은 흥미롭다. 캐릭터들이 서로 사랑을 속삭이는 과정도 보기 좋다. 하지만 작품에 욕심이 많다. 이야기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작품은 템포를 앞지르고 말았다. 욕심을 버릴 필요가 있다. 느긋한 풍채와 용모를 가진 작품에게 이런 속도는 어울리지 않았다. 말을 타고 거닐면서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했다. 옛 성현들도 그러셨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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