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홍도 - 동양 판타지의 갈등을 채워주는 작품

경리단 | 2015-09-03 22:49

 

 

 

판타지를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든 동양 판타지의 부재를 한 번쯤 아쉬워했을 것이다. 한국은 명백히 ‘동-서양’의 분류에서 동양에 속하는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대중매체에서 흔히 다뤄지는 판타지는 대부분이 서양 판타지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독자라면 동양 판타지가 보고 싶을 것이고, 작가라면 직접 창작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양 판타지를 그려내는 것은 서양 판타지에 비해 어려운 일이다. 물론 동양이 서양에 비해 차용할 만한 신화적, 전기적 모티브가 더 적기 때문은 아니다. 동양에도 무수히 많은 신화와 전설, 괴담이 널려 있다. 그러나 이를 대중적인 창작물로 만들려면 쓸 만한 것들은 적절히 변형해서 사용하고 필요 없는 것들은 덜어내는, 일종의 거르는 과정이 필요한데 매우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모티브가 될 만한, 우습지만 동양인들에게도 낯선 동양 신화나 전설을 수집하는 것부터가 몹시 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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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서양 판타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대가(大家)들이 다져놓은 훌륭한 기반이 있다. 톨킨에서 던전 앤 드래곤, 슬레이어즈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세계관과 클리셰는 그것이 옳은지 여부와는 별개로, 동양 판타지를 창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지난한 과정을 생략할 수 있도록 해준다.

 

‘홍도’ 는 가시밭길을 걷기를 자처한 웹툰이다. 배경이 되는 가상의 나라 교국(曒國)은 개화기의 중국을 연상케 하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능력자들은 두터운 갑옷을 걸치고 빛나는 검을 휘두르는 기사나 로브 차림의 마법사가 아니라, 귀신과 요괴를 다루는 주술사다. 깊은 숲이나 큰 강에는 요정이나 마녀 대신에 터주신이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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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세계관이 동양 배경이라고 해서 단지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유감스럽게도, 동양 판타지라는 ‘신선함’을 무기삼아 나서는 창작물들의 절대다수는 그 신선함이 전부이며 심지어는 껍데기만 동양의 탈을 썼을 뿐 주술사를 마법사로, 검객을 기사로 바꾸면 전혀 다를 게 없어 진부하기조차 하다.

 

홍도는 설정에서부터 그 설정을 표현하는 방식, 일상 속의 여러 사물들 - 인물들의 의복, 거리의 건물들, 등장하는 단체들까지 - 동양 판타지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엿보인다. 배경이 동양인지 서양인지를 떠나서 세계관의 짜임새도 훌륭하다. 현재까지 연재된 분량 속에서 드러난 설정이 적지 않고 제법 복잡한데도 독자들은 세계관의 광대함에 즐거워하면서도 엉성한 설정구멍이나 모호한 배경에 불만을 느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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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작화력과 전투 장면의 묘사, 그리고 컷 하나하나의 퀄리티에 비하면 정말이지 놀랍다고밖에 할 수 없는 많은 분량은, 설정에 대한 고찰 이전에 독자들을 좋은 의미에서 압도한다. 배경과 인물의 세세한 묘사는 환상이 판치는 세계에 독자들을 보다 몰입시킨다. 특히 전투 장면의 절정 부분에서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그림은 차라리 한 컷 한 컷이 소설의 삽화에 비견할 만하다.

 

인물 조형은 비록 그렇게까지 신선한 편은 아니지만 앞서 언급한 빼어난 작화력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충분히 독자들의 애정을 느낄 만하다. 비교적 적은 횟수와는 별개로 한 편의 분량이 워낙 많아 내용이 결코 적은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방대한 세계관 탓인지 아직까지 독자들에게는 명확히 밝혀진 것이 많지 않다. 진행된 사건도 수박 겉핥는 정도에 불과해서, 앞으로 어떤 전개가 이어질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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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광활한 세계관의 판타지라는 것은 그 세계관이 얼마나 정합성 있고, 신선하고, 뛰어난지 여부와는 별개로 그것을 이야기 속에 녹여내고 독자들을 안내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이야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신규 독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에 지치기 마련인 바쁜 독자들을 끌어들이려면 미끼가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평자의 입장에서도 웹툰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화력과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홍도’는 추천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는 몇 안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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