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지화면의 정지화면 #.01 해운대 엘레지, 매조지다.

관리자 | 2017-10-20 13:26


“원래 ‘선’이란 캐릭터는 다음 작품을 염두에 두고 그린 거예요. 책 속에는 선의 과거에 대해서 거의 언급이 없죠. 그런데 사실 선에게는 자신만의 생활이 있는 것이거든요. 만화에서는 캣츠비가 선의 유일한 남자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캣츠비는 선에게 여러 남자들 중 하나일 뿐이었어요.”

– ‘채널예스’ 강도하 인터뷰 중


 2006년 <위대한 캣츠비>가 완결을 맞았을 때 이대로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게 아쉬웠던 건 비단 독자들 뿐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웹에서 연재된 <위대한 캣츠비>가 책으로 묶여서 나온 뒤 가졌던 작가의 인터뷰는 캣츠비의 사랑스러운 연인, ‘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핀오프 버전을 기획해두었다고 했다.

 캐릭터는 독자의 시선이 머무는 작품 속에서 비로소 살아 숨 쉴 수 있지만, 레이아웃 바깥 어디쯤에서 밥을 먹고 잠도 자고 다른 관계도 쌓아가지 않을까? 작품에 몰입하고 애정을 주는 캐릭터가 생기면 한 번 쯤 해 봄직한 상상이다.

 이야기는 구상해 두었지만 <캣츠비>와 동의반복이 될까봐 옆으로 치워두고 수년간 새로운 작품들에 매진해 온 작가는 2013년 이른 봄, 독자 앞에 다시 ‘선’을 데리고 왔다.

 <위대한 캣츠비>의 여운을 한 자락이라도 쥐고 있는 독자들은 모조리 충성을 맹세하며 수요일을 기다린다. <아름다운 선>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선과 캣츠비의 이야기,
선과 캣츠비의 이야기, <아름다운 선>

 강도하의 ‘이야기’는 음유시인의 장광설이라고 난해하다는 의견과 청춘의 도발적인 이야기를 심장에 박히는 아름다운 말로 풀었다는 칭송이 엇갈린다. 그러나 그의 그림과 연출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타이트한 주간연재 스케줄에도 한 컷 한 컷이 완벽하게 아름답다.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되는 지역은 철저한 답사 후 3D 렌더링으로 만들어버린다고. 그래서 강도하의 작품 속 배경은 우리 중 누군가는 살아가고 지나가는 현실의 동네다. <위대한 캣츠비>는 서울 성북구 월곡동 재개발예정지, 다세대 주택이 오르막을 따라 질서 없이 다닥다닥 붙어 미로 같은 골목이 있는 동네에서 이야기를 피워낸다.

 ‘스물여섯 해 지난 수컷, 야망 없는 날백수’라 자신을 소개하는 청춘, 캣츠비의 집이 있는 곳.


 6년간 만나던 연인 페르수의 결혼으로 혼자가 된 캣츠비의 앞에 선이 나타난다. 그녀가 어떤 인생을 살아오다 어떤 연유로 결혼정보회사 C등급끼리의 맞선자리에 나오게 됐는지는 베일에 싸여있었다. 일그러진 청춘들 사이에서 홀로 반듯하게 빛났던, 선.

 <아름다운 선>은 몇 번째인가의 실연에 이르러 다짐한다. “물어볼 거야! 나를 사랑했는지.” 누군가는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되물을 법한, ‘옛 연인 찾아 사랑했는지 묻기’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부산으로, 여기서 선은 부산에서 상경한 여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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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 모텔에 여장을 풀고 나섰다. 먼저 연락하지 않은 옛 남자와 드라마틱하게 해운대에서 마주쳤다. 떠나온 선과 달리 여전히 그곳에서 사랑하고 상처받기 두려워 떠나길 반복하며 살던 그, 시안.

 부산지하철 2호선 해운대역부터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을 걸어 본디 떨어진 섬이었지만 장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해운대 백사장의 모래를 실어와 쌓여서 육지와 연결되어버린 섬 아닌 섬, 동백섬 산책로를 걷는다. 흔들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올라 등대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그들은 곱게 풍화되어 이미 사라진 옛 시간을 변명하고 그것이 그래도 한 때 존재했었냐는 질문을 던진다.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겨울바다를 빙 둘러 발걸음을 옮기며 사랑, 두려움에 관한 문답놀이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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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수욕 인파 백만 명이 들어찬 자료화면은 매년 휴가철 뉴스에서 빠지지 않는 장면이다. 백만 명이 토해내는 열기는 부산 토박이들이 해운대를 피하게 되는 이유인 동시에, 그곳이 지닌 수려한 풍광과 매력에 대한 반증이다.


 해운대는 신라시대 학자 고운 최치원의 자字인 해운海雲에서 딴 이름이다. 벼슬을 내려놓고 가야산으로 향하던 길에 이곳에 들른 그는 수려한 풍광에 한껏 매료되어 자신의 자를 바위에 새겨놓았다. 오래도록 해운대에 머물며 질릴줄도 모른 채 바다를 바라보았을 학자는 여기에 누구나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되고, 가야 수로왕과 황옥공주의 로맨스를 형상화 한 인어공주 동상이 세워질 줄 알았을까?

 서기 46년, 인도 아유타국의 허황옥(허왕후)이 왕위에 즉위한지 7년이 넘도록 혼인하지 않고 있던 수로왕에게 온다. 붉은 돛과 기를 달고 먼 바다를 건너서. 수로왕은 직접 황옥공주를 맞이해 부산 명월산 흥국사에서 혼례를 올렸다. 명월산은, 황옥공주의 아름다움을 달에 비유해 수로왕이 직접 이름을 ‘명월’이라 붙였다고 전해진다. 수로왕이 황옥공주를 기다린 망산도(경남 진해 용원)부터 신혼초야를 보낸 흥국사(부산 강서구 지사동), 장유를 거쳐 김해로 간 그 길이 둘의 신행길이었다.


 신행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지 않는가. 해운대 동백섬 바위절벽 어디쯤에 세워진 인어공주 동상은 사연을 모른다면 생뚱맞은데다가 조악하기까지 한 조형물일 뿐이지만, 먼 타국에서 배필을 찾아 부산까지 배를 띄워 결국 사랑을 거머쥐고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신화를 알게 되면 이 아름다운 바닷가에 꽤 어울리는 동상의 자격을 얻어 풍경에 어우러져 보인다. 지금을 살고 있는 수많은 연인들에게 그 바닷길이 그들의 ‘신행길’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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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과 시안은 그곳을 걸은 수많은 연인들만큼의 이야기가 박혀있는 산책로를 걸으며 사랑을 이야기한다. 다만 그것은 둘 사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새로운 사랑을 제대로 하기 위해, 지난 사랑을 매조지려는 선. 선과의 문답을 계기로 사랑할까봐 놓아버린 과거에 안녕을 고할 기회를 얻는 시안. 둘의 ‘해운대 엘레지(비가悲歌)’는 산뜻하게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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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소개

출처 : 에이코믹스 주소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463
윤태호 작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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