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소녀 VS 절망 - 절망을 마주보다

경리단 | 2015-11-03 23:31

‘절망vs소녀’라는 웹툰에 대해 평하려면, 먼저 제목의 ‘절망’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될 것이다. 인간은 많은 것들을 욕망하고 필요로 하는 존재인 만큼, 절망에도 무수히 많은 종류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압도적이고 파괴적인 절망을 꼽으라면 역시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은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 말 그대로 ‘세계’의 종말이자,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완벽한 끝이기 때문이다.

 

여기, 바로 그 절망에 처한 가련한 ‘소녀’가 있다. 소녀가 어떤 죄를 지었던 걸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지라도, 과거에 어떤 큰 잘못을 저질렀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소녀에게는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이름의 불청객은 경우에 따라서 지극히 가치중립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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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으로 무장한 채 은행을 턴 네 명의 사내. 특별히 범죄를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아닌데도, 죄 없는 사람들을 심심풀이 삼아 쏴 죽이는 악한들이다. 현실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작품 안에서는 주도면밀하기 짝이 없다. 이들이 공권력에 의해 처벌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소녀는 그저 우연히 그들이 목표한 은행에 있었을 뿐이지만, 불행하게도 남자들의 눈에 띄었으며, 인질, 혹은 성노리개로 납치되어 은신처로 끌려간다.

 

소녀가 처한 상황은 지극히 ‘절망’적이다. 코앞에 닥친 죽음에 비하면, 어쩌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관자놀이에 맞닿은 권총의 방아쇠가 당겨진 순간, 칼날이 심장을 파고든 순간에 비하면 말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조건을 따져보면, 단지 약간의 여유시간이 있을 뿐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점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며칠, 몇 주, 혹은 몇 달 정도는 살아있을지도 모르지만, 죽음은 확실히 예정되어 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소녀, 혹은 작품에서 종종 불러주는 별칭, ‘세계최강의 인간’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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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절망vs소녀’를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하나는 수차례의 경험으로 단련된 소녀의 정신력, 혹은 생존에 대한 의지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한계이다.

 

소녀는 강하다. ‘세계최강의 인간’이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을 지경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절망’이라고 부를 만한 위기가 눈앞에 닥쳤을 때, 그것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한다. 인간의 의지와 정신력은 생각만큼 강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헛된 희망을 품고, 다른 누군가에게 의미 없는 저주와 원망을 퍼부으며, 불가능한 방법으로 생존을 시도하다가, 결국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절망, 바로 ‘죽음’을 맞이한다.

 

소녀는 그러지 않았다. 귀중한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았고, 울고 불며 떼를 쓰지 않았으며, 당장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연적인 죽음을 향해 돌진하지도 않았다. 가장 먼저 자신에게 닥쳐온 절망을, 죽음의 문턱에 위치해 있음을 받아들였다. 이유를 묻지 않았고 당위를 따지지 않았다. 극한의 공포와 불행한 운명에 괴로워하지만, 정말로 짧은 순간일 뿐이다. 그 모든 어리석은 일들 대신에 소녀는 빠르게 현실을 인식하고, 생존을 도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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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강철 같은 정신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죽음과 맞닿았던 수차례의 경험들. 시련이라는 망치질이 소녀의 정신을 담금질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소녀와 같은 정신력을 타고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소녀는 아니었다. 분명히 평범한 정신의 소유자였을 소녀는, 여러 차례 반복된 죽음의 위기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면서, 절망을 극복하는 의지를 ‘체득’할 수 있었다.

 

어떻게 단 한 사람에게 이런 불행과 위기가 중첩되고, 또 어떻게 그런 위기에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지 의문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행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고, 불행을 극복한 사람이 하나도 없으리란 법은 없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수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해서, 당첨된 극소수의 복권이 거짓이 아니듯, 소녀의 존재 또한 만화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에서도 충분히 실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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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관통하는 다른 하나의 키워드는 인간의 한계이다. 정확히는 인간의 신체가 가지는 한계이다.

 

소녀가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자. 그녀는 납치당해서 감금되어 있다.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단순한 해결책은, 기회를 노려서 도망치는 것이다. 실제로 소녀에게는 마치 작은 상처럼 짧은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도주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단지 체온이 1도가 조금 넘게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죽어버린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 속 깊은 산장에서, 마땅한 방온 장비도 없이,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는 밖으로 나가는 것은 자살행위다. 어찌어찌 추위를 막을 방법을 찾았다고 해도, 차를 가진 남자들의 추격을 걷거나 뛰어서 뿌리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체로 인간의 몸은 발달된 문명의 이기와 경쟁할 수 없다.

 

소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를 노리는 남자들을 모두 해치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로 어려운 선택이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생물학적으로 약하다. 신체 발달이 끝나지 않은 어린 여성은 더더욱 그렇다. 성인 남성은 어린 소녀를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다. 일대다수의 싸움은 한 명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2:1만 되어도 어지간해서는 다수를 이길 수 없다. 4:1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흉기를 소지하고 있는지 여부, 그리고 흉기의 종류는 싸움의 결과를 거의 확실하게 결정짓는다. 짤막한 일자 드라이버와 권총 사이에는 까마득한 격차가 존재한다.

 

이 모든 악조건을 소녀는 동시에 이겨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에게 한 가닥 희망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모든 인간이 약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녀는 남자들에 비해 훨씬 더 약하지만, 남자들 또한 같은 인간이기에 소녀의 기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만큼 약하다. 급소에 치명적인 공격을 당하면 상대가 누구든, 어떤 도구를 썼든, 내가 뭐하는 사람이든 간에, 반드시 죽는다. 어떤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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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키워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어떤 기회가 있든 간에 그것을 끄집어낼 의지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정신력이 아무리 강인한들 눈앞에서 발사된 총알을 피할 수는 없다. 비록 위태롭고 미약하기 짝이 없지만, 소녀에게는 의지도, 기회도 있었다. 그래서 소녀는 빈틈을 찾는다.

 

힘없는 여자아이라는 약점을 장점으로 뒤집고, 그녀가 얼마나 단단한 의지의 소유자인지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방심을 후벼 판다. 육체적으로 완벽히 제압된, 정신적으로 붕괴해버린 상태를 연기해서 허점을 이끌어낸다. 겁에 질려 무모한 도주를 감행한 것처럼 위장하여 황금 같은 시간을 번다. 인식의 허점을 파고드는 몇 안 되는 협소한 공간에 몸을 숨긴다. 미약한 단서만으로 상대의 성격과 약점을 분석한다. 제정신인 인간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간에서 암습을 가한다.

 

물론 소녀가 모든 수를 쥐어짜도 여전히 그녀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불리하다. 객관적인 전력의 차이가 너무 압도적인 것이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치명적인 위험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소녀는 절망하지 않는다. 한계를 호소하는 육체와 정신을 다그치고, 실낱같은 가능성이 통하기를 기도하며, 죽음의 공포에 몸을 떨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필사적으로 기회를 갈구한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단숨에 해치울 수 있는, 치명적인 급소에 날카로운 쇠붙이를 찔러 넣을 단 한 순간의 기회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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