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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여자일까? - [스포] 독신으로 살겠다.

므르므즈 | 2016-10-02 15:24


[웹툰 리뷰]독신으로 살겠다 - 선정성



   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은 취향이 아니다. 연애 만화를 감정선 탓에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의 이유다. 한 번은 로맨스 소설의 대가라 불리는 작가의 작품을 읽은 적 있었다. 불치병에 걸린 여자가 남자와 사랑했지만 가문의 반대에 부딪혀서 남자와 함께 동반 자살하는 이야기였다. 참 대사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는데 주인공이 말 한마디 한다 치면, "너의 그 불합리한 행동은 나의 감정에 격정을 불러일으켰고 너와 나의 상호작용에 새로운 화학반응을 만들어냈어. 규정되지 않은 이런 감정을 합리화하려드는 내 자신이 두려워."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작품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현학적으로 대화하는 친구들을 싫어합니다. 원래 사람들이 대화하는 장면은 내가 그 대화를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어야 되거든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누가 내 앞에서 저렇게 개념어를 써가며 논리정연하게 감정을 털어놓는 장면이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독신으로 살겠다> 역시 이런 어조로 캐릭터들이 대화한다. 19살 먹은 고등학생부터 35살 어른에 환갑이 다 된 할아버지까지 어조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다. 매 주제가 오고갈 때마다 캐릭터들이 자기 의견을 장문으로 펼치는 데, 이런 텍스트가 극에 달하는 초반부는 몰입하기 힘들었다.

  텍스트 때문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고 말했지만 사실 텍스트 외에도 몰입하기 힘든 요소는 많이 있었다. 일단 프롤로그부터 대놓고 난 어린 애를 꼬셔서 어떻게 해보겠다고 말하는 주인공이나 폐경에 이른 여자들의 고민까지 내용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기 보단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런 요소를 버무려 놓은 팝아트들을 제외하고 웹툰 전개만 이야기 해보자. 음, 그래도 공감이 안 된다.


  작품은 수많은 일들을 겪고 독신으로 성장해나가는 주인공의 나름 '현실적인' 연애담을 그린다. 남자들에게 시달리다 한 사람의 당당한 싱글 여성이 된다는 내용인 것이다. 말하자면 나름대로 우먼파워를 과시해보겠다 이런 작품인 셈이고 다른 말로 하자면 여성을 위한 만화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작품은 당당하게 사는 독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에게 휘둘린다. 매 작품이 시작할 때 마다. 남자 별거 아니야~ 우린 혼자서 살아갈 수 있어~ 이렇게 말하며 독신의 당당함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당당한 독신은 남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주인공을 보자. 주인공은 처음부터 남자 주인공에게 일방적으로 다자 연애를 통보당하고 결국 남자의 결혼으로 일방적으로 헤어지자고 통보 받는다. 나중에 가서 너를 놓아 주겠다 어쩐다 말하며 H와 나의 사랑 이야기를 쓰든 말든 이 주인공은, 차였다.


  다른 등장인물들이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다. 어떤 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에게 의존하고 남자에 의해 구원받으며, 다른 인물은 직장을 잃었지만 헤어진 남자와 다시 엮이며 나자의 도움을 받는다. 게다가 평생 독신처럼 살 것 같던 인물은 결국 남자만나서 결혼하게 된다. 등장인물의 어떤 면면을 보아도 남자에게 휘둘리지 않는 장면이 없다. 거기다 제목과 다르게 결국 독신으로 사는 건 주인공뿐이고 이 독신 생활도 남자에게 차여서 그렇다는 걸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독신주의자에 대한 지나친 모욕이 아닌지.

  작품은 노선도 제대로 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초중반부는 독신에 대한 조롱과 풍자로 시작되는 듯하더니 중반에 들어선 진지하게 사람과 사람 사이가 반드시 결혼으로 매여야 하는 지 묻는다. 그러더니 후반에 가선 독신으로 사는 주인공도 나쁘지 않다고 외친다. 작품에서 주인공이 정신적으로 성장했든 안했든 남은 건 1화와 똑같이 검버섯과 눈 아래 삼지창, 그리고 해마다 먹는 나이일 뿐인데 작품은 얼렁뚱땅 독신도 괜찮다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만족스러운 결말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그 독신 생활을 주인공이 자주적으로 선택했어야 했다.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려다 차인 여자가 '여러 사람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라고 말하는 게 성장인가?


  <독신으로 살겠다>는 제목과 도발적으로 이런 저런 만남을 가지는 여성을 소재로 했다면 평범한 연애물과 다른 어떤 무엇인가를 보여줬어야 했다. 남성에게 덜 의존적이고, 더 당당한 여성을 보여줬어야 했다. 흔한 연애물의 여성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와서 약간의 시련을 입히는 것을 작품은 ‘성장’이라 말한다. 성장을 거치고 나온 캐릭터는 여전히 변함이 없고, 남은 건 남자에 의한 이별 경험과 그것을 통해 번 돈으로 이루어진 독신 생활 뿐인데 이를 진짜 독립이라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여전히 캐릭터는 과거에 얽매여 있다. 결국 독신 생활 조차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다. 독신으로 살겠다가 단순한 캐치프레이즈로 남았기에 작품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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