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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 - 사랑은 둘만의 문제

경리단 | 2015-09-03 19:50

 

 

 

타의(他意)에 의해 방해받는 연애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분노를 산다. 다른 사람의 방해가 없더라도 남녀가 눈이 맞아 온전한 사랑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기 그지없는데, 하물며 애정과는 상관도 없는 지루한 이유로 훼방을 놓는다면 얼마나 분통터지는 일인가?

 

독자들의 분노를 산다는 것은 곧 그만큼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들기 쉽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분노는 가장 격렬한 인간의 감정 중 하나이니까. 그러나 독자들의 분노를 제물삼아 몰입도를 이끌어 낸 이야기는 그만큼의 수준이 따라주지 못하면 곧 작중 인물과 전개에 대한 분노는 작가나 작품 자체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다. 신분, 재산, 전쟁, 계시(啓示)된 운명, 하다못해 거주 이전에 이르기까지 애정전선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문제로 틀어지는 이야기의 상당수가 그런 오류를 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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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세렌디피티’ 도 비슷한 이야기의 하나이다.(동명의 영화와는 상관없음) 다행히도, 그런 오류를 범한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참고로 제목 serendipity는 ‘뜻밖의 발견(을 하는 능력), 의도하지 않은 발견, 운 좋게 발견한 것’을 의미한다는데(출처 : 교양영어사전, 인물과사상사) 사실 제목과 내용은 좀 억지로 이어붙인 감이 있다.

 

데이비드는 명문 귀족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이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탓에 대인기피증이 심하다. 사람과의 교류 자체를 극히 꺼리고 방 안에서 동물들과 함께 지낸다. 대형종의 커다란 개, 말, 앵무새, 고양이, 쥐(혹은 햄스터)까지, 그의 방 안에는 다종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고 그런 동물들을 위해 실내에 작은 정원까지 꾸며놓았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데이비드는 동물들과 직접 소통하는 능력까지 있는 것 같다. 대단히 특이한 능력이지만 작중에서 크게 중요한 능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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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는 마을 외곽에서 운영하는 여관집 딸이다. 그림을 좋아하고 미래에 화가를 꿈꾼다. 묘사되는 외향과 다른 인물들의 반응, 그리고 대접받는 수준에서 미루어 짐작하건대 비록 가난한 평민 집안의 여식이지만 상당한 미인인 것 같다. 이런 종류의 로맨스 만화에서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으레 미인이고 평범한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성격은 매우 당당하거나 혹은 집안의 가난에도 굴하지 않는 소위 ‘캔디형’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세렌디피티’ 에서의 루시는 또래의 소녀들처럼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상대의 높은 경제사회적 지위에 기가 죽고 심지어 관계를 끊을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찌 보면 클리셰를 벗어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성격이다. 집안도 가난하지만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있는 수준은 아니다.

 

데이비드는 잃어버린 개를 찾기위해 나섰다가 우연하게(아닐 수도 있지만) 루시의 여관에서 머물게 된다. 루시의 부모님은 데이비드의 남루한 꼴을 보고 - 돌아다니다가 불량배들을 맞아 삥을 뜯겼다 - 그가 가난한 부랑자라고 지레 짐작하여 반강제(?)로 여관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한다. 여관에 머물며 데이비드와 루시는 서로를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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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소개를 읽어봐도 알겠지만, 사실 이 만화는 상당히 전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의미의 사랑싸움이라는, 요즈음에 들어서는 오히려 보기 힘든 고전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데이비드와 루시는 사회적으로 매우 다른 위치에 있고, 데이비드 또한 귀족이자 부자이지만 마음 놓고 보잘 것 없는 지위의 루시와 연애할 입장도 아니다.

 

당연히 많은 장애물이 둘을 가로막는다. 데이비드가 정신을 차리고 가문을 이끌기를 바라는 그의 조모, 가문을 호시탐탐 노리는 신흥부자, 잘 생긴 데이비드의 얼굴에 콩깍지가 단단히 쓰인 귀족가의 여식까지 - 심지어 이 여자는 돈과 권력으로 데이비드의 할머니를 끌어들인다 - 둘을 둘러싼 환경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 만화에서 루시와 데이비드 외의 존재들은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다. 그들은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둘의 사랑을 원치 않지만 동시에 손자이자, 짝사랑 상대, 연적인 데이비드를 배려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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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 혹은 인격파탄자들이 난무하는 창작물에서 그렇듯 루시의 집안을 파괴하지도 않고 데이비드를 억지로 결혼시키거나 그를 알거지로 만들겠다고 협박하지도 않는다. 시대적 배경은 신분의 벽이 견고한 중세와 (일단 명목적으로는)존재하지 않는 현대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해 있어 적절한 ‘신데렐라 로맨스’ 의 형식을 취하지만, 편리하게도 귀족과 평민 사이의 연애는 그렇게까지 금기시 되지 않는다.

 

분명 곤혹스럽지만 삶의 파탄을 각오해야 될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은 배경 속에서, 청춘남녀의 사랑은 가끔은 오그라들고 가끔은 로맨틱하게 이어진다. 데이비드는 초반까지만 해도 바람직한 남자상은 아니었으나, 폐쇄적인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빠르게 나아진다. 루시는 자신의 신분에 위축되어 있지만, 적극적인 구애를 무시하거나 신분을 이유로 무조건 거절할 정도로 답답한 인물은 아니다. 둘은 주변의 '현실적인' 방해를 받지만 굴하지 않고 서로 사랑을 키워간다. 전형적이지만 또 특유의 달달함이 묻어나는 재미가 있다. 웹툰 ‘세렌디피티’ 는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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