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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에 대하여 -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유에 대하여

경리단 | 2015-11-03 23:38

사랑이라는 주제는 거의 모든 종류의 매체에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통해 다루어져 왔다. 그 끈질긴 생명력의 가장 큰 원천은 보편적인 감정으로서 사랑이 가지는 호소력에 있겠지만, 동시에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다층적인 면모 또한 각광받는 주제로서 남아있는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두 사람이 조금씩 친해지고, 우정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며, 연인으로서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변해가고, 결국에는 헤어지거나, 인생의 동반자로서 끝까지 함께하는 일련의 과정은, 하나하나의 시기가 모두 전혀 다른 감정, 기분으로 임한다고 해도 과언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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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범인에 대하여’는 사랑, 그중에서도 마모되고 있는 사랑을 다루고 있다. 화사한 그림체와 천천히 가라앉는 분위기의 이야기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주인공 A와 B는 1년 가까운 시간을 사귀어 온 연인이다. 작중 언급과 묘사를 보면 소위 ‘선남선녀’ 커플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꼬집어 지적할 만한 모난 것이 없는 평범한 연인 관계다. 직장과 학교를 바삐 오가며 각자의 일상에 충실하고, 그 속에서 안부를 주고받으며, 바쁜 상대의 건강과 기분을 염려하고, 시간이 날 때면 커피를 마시거나 같이 쇼핑을 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괜찮아 보이는 둘의 관계는 명백하게 어긋나고 있다.

 

정체모를 여자 C. C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없다. 심지어 이 여성은 만화 속에서 이목구비가 제대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텅 빈 얼굴에는 입술만이 움직일 뿐. 하지만 A가 그녀에게 푹 빠져있는 것으로 보아 아름다운 여성이 아닌가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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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B와 사귀고 있지만 정신은 온통 C에게 가 있다. 여기서 C가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C는 A가 상상한 자신의 완벽한 이상형일 수도 있고, 과거에 그가 만난 다른 여자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바로 얼마 전에 만난 새로운 여성일 수도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이 시점에서 A와 B가 연인 관계이며, B는 여전히 A의 애정을 갈구하지만 B의 마음은 떠나버린 지 오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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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직감은 무섭다고들 한다. 사실 여자뿐만 아니라 아주 잠시라도,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아꼈던 커플이라면, 그 사랑이 식어버렸을 때 눈치 채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한 쪽은 여전히 따듯하게 데워진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다.

 

A는 겉으로는 B를 평소와 다름없이 대하는 것 같지만, 그 미묘한 태도의 변화와 무성의한 반응,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A의 행동에 B는 모든 사실을 깨닫는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어느 한 쪽이라도 애정이 무뎌진 이상 서로 깔끔하게 관계를 정리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디 이성, 원칙에 따라 돌아가던가. A나 B나 이미 돌이킬 수 없음에도 불필요한 충돌과 감정의 소모를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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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더 이상 B를 사랑하는 이로서 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스로의 감정을 확신하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 이미 상처를 주고받고 있는데도, B와 끝을 내며 입게 될 아픔이 두렵다. B는 직감적으로 A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A를 사랑한다. 어떻게든 관계를 복원하고, 지속하고 싶지만, A에게 사랑하던 그때를 기대해도 돌아오는 것은 실망뿐이다. 일방통행 하는 감정, 그것도 한때 같은 입장에서 마음을 나누던 상대에게 짝사랑을 호소하고 있을 때, B는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제목 ‘범인에 대하여’에서 범인은 犯人이기도 하고 凡人이기도 하다. 아름다웠던 사랑이 계속되지 못하고 삐걱거릴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과연 그 소재를 가릴 수가 있는 것인지. 또 시간이 갈수록 깎여나가는 감정과 관계는 A와 B가 특별히 이상한 것일까. 제목은 두 가지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알콩달콩한 연애담에 어울릴 법한 밝은 그림체. 하지만 정작 그 그림이 담아내고 있는 것은 풍화되는 사랑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때때로 성격이 전혀 다른 친구가 죽이 잘 맞는 것처럼, 반대되는 성향의 그림과 내용은 절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분명 시작할 때는 누구나 이렇게 밝은 사랑을 했을 텐데, 그림이 변하지 않는 것과 다르게 감정은 쉽게 상해버리고 만다.

 

도전만화란에 위치해 있는 작품이다. 댓글도 회당 100개가 넘지 않는 수준이지만, 당장이라도 정식 웹툰으로 승격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준수한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다. 프로의 작품이 아니라는 편견을 벗어던지고, 일독을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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