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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 - 기대하지 않는 소년과 포기하지 않는 거북이

지나가던사람 | 2016-09-28 00:44

 

 

 

웹툰 ‘비산’의 제목은 한자로 飛山, 이름 그대로 날아가는 산이다. 순우리말로 표현하면 ‘날뫼’. 대구의 비산동 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은, 다소 황당하다 싶을 정도로 맥락이 없는 설화의 원전을 참고삼아, 담백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주는 단편을 그려내고 있다.

 

산이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날아가고 있다면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엉뚱할 수 있는 질문은 가장 보편적인 정답에 도착한다. ‘산이 발이 달리지 않은 이상, 움직이고 있다면 누군가 옮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등에는 거대한 산을 올린 채로 하염없이 떠도는 거대한 거북이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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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피부의 거북이는 태어날 때부터 누구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의 손바닥처럼 몸이 아주 작을 때도, 거대한 산을 등에 지고 다닐 정도로 크게 자란 뒤에도 마찬가지다. ‘흙’을 제외하면 어떤 물질도 그와 ‘닿을 수 조차’ 없었다. 눈 위를 걸어도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돌멩이를 던져도 슥 통과할 뿐이다.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실재하는지조차 모호한 생물. 그것이 거북이였다. 전혀 인식되지 못하는 현실이 서러워 등에 흙을 올리고, 그 흙에서 싹이 터 마침내 높은 산을 이루었다. 거북이는 자신을 볼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 끝없이 걷고, 또 걷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날아다니는’ 산을 두려워하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날 뿐이다. 그는 태생적으로 세상과 유리되어 절대적인 고독에 휩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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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산’은 반대로, 태어날 때부터 많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라왔다.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는 작은 사회, ‘가정’에 형제들이 여럿 있다는 것은 사람에 둘러싸여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소년 또한 외로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독한 가뭄이 덮친 땅에서는 사람 사이의 인연 이전에 기본적인 식생활조차 충족되지 못한다. 정(精)은 말라가고, 사람들은 서로를 불신하며, 종국에는 입을 하나라도 덜어내고자 극단적인 선택을 주저하지 않는다.

 

소년은 살기 위해서 도망쳤다. 어린 나이에, 홀로 아사자(餓死者)까 넘쳐나는 어려운 시대를 견뎌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소년은 어른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가장 의지할 수 있는 가족에게서 배신당하고, 삶을 위협받았기에, 인간에 대한 신뢰 자체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거북이가 고독에서 벗어날 그 어떤 기회를 단 한 번도 접하지 못했다면, 소년은 몇 번의 참을 수 없는 상처로 인해 모든 기대를 포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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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소년과 거북이의 만남은 우연일 수도, 필연일 수도 있다. 지독히도 가무른 대지에서, 갑자기 나타난 우거진 녹음. 소년은 당연히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산을 짊어지고 있는 창백한 몸뚱이의 거북이를 발견한다. 둘은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된다. 정확히는, 소년이 거북이의 몸 위로 올라탔지만 말이다.

 

소년과 거북이는 외로움이라는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지만, 그 감정에 대한 인식에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미 사람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버린 소년에게 있어, 태어날 때부터 모든 다른 살아있는 이들과 철저히 차단되어, 그나마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얻고자 쌓아올린 산으로 인해 반대로 괴물처럼 취급을 받고 있는 거북이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그의 커다란 두 눈은 여전히 대화하고, 마주볼 수 있는 누군가를 갈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년이 거북이라면 절대로 그러지 못할 것이기에, 소년은 그보다 훨씬 덜 고통스러운 경험만으로도 모든 것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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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굳이 소년의 말에 반박하지 않는다. 싸우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년의 존재 자체가 소년의 비난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여정 중에 만난 소년, ‘산’의 존재가 말이다. 마침내 목적을 달성한 거북이는 이제 소년을 위해 짧은 길을 떠난다. 지금껏 거북이가 걸어온 거리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그러나 그의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길동무와 함께 오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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