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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자유로운 '단지'를 보라 - 웹툰 <방탕일기>

조경숙 | 2020-01-30 12:49
최근 차트를 역주행한 노래라며 친구가 음악을 추천해줬는데, 제목도 가사도 매우 독특했다. 알고보니 이 노래는 '탑골지디'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양준일의 <Dance with me, 아가씨>였다. <투유프로젝트-슈가맨>(이하 <슈가맨>) 프로그램을 통해 돌아 온 양준일은 가히 '신드롬'이라 불릴 만 했다. 모두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로드리게즈가 멀쩡히 살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정작 본인도 몰랐던 인기를 누리며 성황리에 공연을 연 것처럼, 양준일도 <슈가맨> 출연 이후 3분 만에 전석이 매진된 팬미팅 콘서트 무대에 섰다.

<슈가맨>이 30년 전의 양준일을 찾아 무대에 세운 것처럼, 많은 사람이 유명한 사람들의 '이후 행보'를 궁금해 한다. 그 궁금증은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겠지만, 그를 굳이 찾아내는 이 '신드롬'에는 어떤 소망이나 바람도 엿보인다. 로드리게즈의 노래가 머나 먼 이국의 땅에서 억압 받던 이들의 해방가가 되었던 것처럼, 예술을 통해 그들이 받아 안은 희망을 다시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것들. 아마도 그건 웹툰 <방탕일기>로 돌아온 '단지' 작가에게 쏟아진 독자들의 환호와도 일면 맞닿아있지 않을까.

단지 작가는 가정폭력의 이야기를 담아 낸 웹툰 <단지>로 2017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웹툰 <단지>는 그저 가정폭력 서사를 드러낸 데에 그치지 않고, 가정폭력를 겪고 있거나 여전히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다른 '단지'들의 마음을 모으는 역할을 했던 작품이다. 독자들은 팬레터에 자신이 겪었던 폭력을 적어 보냈고,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에 더해 독자들의 이야기도 작품으로 만들어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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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사연을 연재했던 단지 시즌2 (출처: 레진코믹스)


후속작 <방탕일기>는 이전의 작품 <단지>와 완연히 결이 다르지만, <단지>만큼이나 새롭고 재미있는 시도를 보여준다. '방탕일기'라는 제목부터 그렇다. 사실 '방탕함'이야말로 남성들의 특권처럼 전유되어 온 속성이 아닌가. 돈 조반니(실존인물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파블로 피카소, 조지 고든 바이런 등 세기의 방탕아라고 불리던 이 남성들은 사람들로부터 지탄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방탕하다는 사실 자체를 예술가의 천성으로서 암암리에 인정 받곤 했다. 방탕한 여성은 성적인 면모만 과하게 들춰져 음란한 여성이라 불리며 배제된 한편, 이들 방탕아는 언제나 사교 커뮤니티의 중심에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단지의 <방탕일기>는 제목부터 내용까지 매우 전복적인 만화다. <방탕일기>의 주인공인 '단지'는 <단지>를 통해 이미 한 번 성공한 여성일 뿐 아니라, 그를 통해 얻은 물질적 부유함을 쥐고 여러 남성을 만나면서 자신의 욕망을 찾아 나선다. 만화에 그려지는 '방탕한 생활'이라봐야 사실 세기의 방탕아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마음껏 술 먹고, 춤 추고, 섹스하고, 살고 싶은 데에 살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여성의 모습을 보는 건 그 자체로 즐겁고 재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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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방탕일기의 메인 썸네일 이미지 (출처: 다음웹툰)


<방탕일기> 초반에서 단지는 <단지>의 성공으로 벌어들인 돈을 주식이나 비트코인 등 여러 군데 투자를 하며 몸집을 불리다가, 비트코인 폭락으로 인해 도망치듯 자신의 위시리스트로 방향을 순회한다. 클럽에 가기, 원나잇해보기, 부산에서 살기 등 단지가 적어놓은 소망들은 사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목록이다. 그러나 이 목록을 하나씩 지워가면서도 단지는 매번 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느닷없이 나타나는 내면의 목소리와 실랑이를 벌인다. '방탕함'을 선언했음에도 단지가 스스로를 억제하며 고삐를 쥐려 하는 이러한 순간들이 <방탕일기>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웹툰 <방탕일기>는 어디로 갈까. 사실 '방탕함'이라는 건 늘 그 끝이 정해져 있는 수식어지만, <방탕일기>는 다른 방탕아들과 그 시작부터 다른 만큼 마지막도 다르리라 기대한다. 적어도 단지는 누구도 착취하지 않으며, 스스로 쟁취한 자유를 한껏 만끽하는 데에서 방탕생활을 시작하고 있으니 과거의 탕아들처럼 꼭 망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누구보다도 '단지'의 방탕이니, 그 끝까지 응원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