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아트 디렉터, 스테판 보장의 사임.

윤보경 | 2020-03-31 10:32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아트 디렉터, 스테판 보장의 사임.

윤보경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내용적 측면은 페스티벌의 아트 디렉터가 이끄는 방향으로 만들어진다. 어떤 작가들을 초청하여 행사를 이끌고 어떤 전시를 진행할지 등의 결정은 페스티벌이 선보이는 그 해 축제 ‘콘텐츠’의 성격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축제 진행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축제를 둘러싼 협회, 공기관, 외주업체의 완력다툼과 축제 분위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2016년 스테판 보장 (Stéphane Beaujean)이 새로운 아트 디렉터로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그가 풀어가야 할 문제들은 내적, 외적으로 산재했었다. 페스티벌 협회와 페스티벌을 운영하는 외주업체 9e Art+, 만화진흥을 위해 세워진 공기관 Cite de la BD (국제만화이미지센터) 사이의 분쟁과 주도권 싸움으로 구겨진 ‘축제의 이미지’를 바로 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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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아트 디렉터, 스테판 보장>


그는 새로 부임한 국제만화이미지센터의 디렉터 피에르 렁게리티 (Pierre Lungheretti)와 협력하여 관계를 개선하였고, 페스티벌의 시스템을 보다 투명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 앙굴렘 축제에서 수여하는 상과 수상 작품들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축제의 내용적인 면에서는 대중성을 강화하고 만화 유산 (클래식 만화)을 재조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잘 알려진 작가들의 전시들은 에르만 (Hermann), 휴고 프라트 (Hugo Pratt), 에마뉴엘 기베르 (Emmanuel Guibert), 카트린 모리스(Catherine Meurisse), 윌 아이스너 (Will Eisner), 배트맨 (Batman), 칼보 (Calvo)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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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있었던, 동물 만화의 클래식이라 평가되는 칼보(Calvo) 전시>

물론 대안만화를 위한 자리도 마련했는데, 아쏘씨아씨옹 (Association) 출판사의 장 크리스토프 므뉴 (JC Menu), 출판사 Flblb, 질 호셰 (Gilles Rochier) 등의 전시들도 선보였다. 
스테판 보장 디렉터가 부임한 이후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유럽 (특히 프랑스) 만화를 중심으로 두고 축제를 진행했던 (유럽 작가 이벤트와 유럽 만화 전시, 유럽 출신의 수상작품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프랑스 만화 시장의 40% 가량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 망가의 자리를 마련했다는 데에 있다. 그가 부임하기 이전에 ‘아시아 만화관’이라 불리던 행사장을 ‘망가관’, 이 다음해에는 ‘망가 시티’로 바꿔 칭하면서 그의 일본 망가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이 변화는 프랑스의 젊은 독자층과 일본 망가 매니아들의 큰 지지를 받았지만, 일본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권 나라들의 항의나 불만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아시아 만화를 ‘망가’라는 큰 틀에 그냥 일방적으로 묶어버리는 것이라 항의하면서, 만화의 다양성에 대해 말하는 유럽의 가장 큰 만화 축제가 아시아 만화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가 부임한 이후, 오토모 가츠히로와 다카하시 루미코가 축제의 그랑프리를 받았고, 공식적으로 초청되어 마스터 클래스를 가진 일본 작가들도 (우라사와 나오키, 마츠모토 타이요, 유키토 키시로 등) 여럿 되었다. 대다수 그들의 작품은 멀리 일본에서부터 가져와 전시하였는데, 일본 출판사의 까다로운 원본 외부 반출 조건을 충족시켜가며 쉽지 않은 전시를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일본 망가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부터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연재 중인 작품들까지 원본으로 선보인 전시는 프랑스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데즈카 오사무, 카즈오 카미무라, 츠게 요시하루 부터 위에서 언급한 세 명의 작가들, 히로 마시마, 츠토무 니헤이 등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까지 전시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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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프리 트로피를 받는 다카하시 루미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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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츠게 요시하루 작가와 스테판 보장 디렉터>


대중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지난 1월, 47회 앙굴렘 국제만화축제를 마치고, 스테판 보장 아트 디렉터는 사임하기로 했다며 자신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이후 드퓌이 (Dupuis)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일하게 될 것이라 밝혔다. 창의적 재능을 가진 작가들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알찬 출판 카탈로그를 만들어 나갈 것에 대해 기대하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행보에, 몇몇 만화 관계자들은 아트 디렉터의 사임 이후 행선지가 항상 대형 출판사인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스테판 보장 디렉터 이전, 2013년~2016년의 아트 디렉터였던 브누아 무샤르 (Benoit Mouchart)는 그의 사임과 동시에 대형 출판사 카스테르망 (Casterman)의 편집장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계속 편집장으로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테판 보장 디렉터의 사임으로, 앞으로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경향과 방향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전혀 예측되지 못하고 있다. 유럽 만화계 인사들은 앞으로 축제가 이끌어 갈 방향이 보다 만화의 다양성을 중요하게 다룸과 동시에, 작가와 작품과 독자의 관계 중심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