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공포 가운데서 자라는 희망을 마주하다 《드래곤 헤드》 vs 〈심해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 2020-12-27 10:29


공포 가운데서 자라는
희망을 마주하다
《드래곤 헤드》 vs 〈심해수〉


임재환(만화평론가)



image.png
▲ 《드래곤 헤드》©미네타로 모치즈키 vs 〈심해수〉©이경탁, 노미영


image.png


수많은 재난만화의 존재

일본은 지형적 특성상 자연재해와 지진재해를 구분할 정도로 지진이 잦아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건물과 도시 공공 인프라의 안전 기준이 높고 고강도 특수 내진설계와 시공으로 대비가 되어 있는 편이다. 그런데 1923년 관동 대지진, 1995년 고베 한신대지진, 2011년 동일본(도호쿠) 대지진을 거치면서 대규모 지진에 대한 대중의 공포심이 만연한 사회이기도 하다. 

지진에 대한 섬나라 일본 사회 전반의 공포심은 대중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3.11 동일본대지진(2011) 이후. ‘재난문학’이라는 독특한 문학 장르군을 지칭하는 용어가 등장할 만큼 재난 시(詩)・하이쿠(俳句)와 같은 운문문학과 희곡문학에서 재해의 아픔을 표현하고 소재화한 작품들이 등장하였다. 3.11 이전에도 지진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 만화, 영화 등이 다수 존재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만화작품이 코마츠 사쿄 의 SF 소설 《일본 침몰》을 원작으로 한 잇시키 토키히코의 만화 《일본 침몰》 (2006~2008)과 미네타로 모치즈키의 《드래곤 헤드》(1994~1999)를 꼽을 수 있다.

《드래곤 헤드》가 《주간 영 매거진》을 통해 장편 만화로 연재되던 당시 비현실적 상황의 공포만화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연재 개시 이듬해에 고베지역 ‘한신・아와지 대지진’(1995)이 발생하자, 현실적인 이야기로 소구되며 더욱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1997년 제 21회 강담사 만화상을 수상하고 누계 발행부수 650만 부를 기록하였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실사영화가 2003년 일본에서 개봉하고 우리나라에는 뒤늦게 2007년에 〈일본침몰2〉라는 제호로 무판권 비디오/DVD가 유통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지진을 소재로 한 콘텐츠로는 TV애니메이션 〈도쿄 매그니튜드 8.0〉(2009), 영화 《일본 침몰》(2006),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절체절명의 도시〉(2002), 만화 《태양의 묵시록》(2002~2008), 만화 《생존게임》(1976~1978) 등이 있다.

우리나라도 지진 재난을 소재로 한 웹툰이 다수 나왔는데,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다룬 손영수과 한상훈의 웹툰 〈삼풍〉(2013~2015), 대지진 상황의 학원물 김숭늉 작가의 〈유쾌한 왕따〉(2014~2016), 윤인완과 김선희의 〈심연의 하늘〉(2014~2018) 등이 있다. 지진 이외에도 노미영과 이경탁의 웹툰 〈심해수〉(2018~)와같이 외계 행성의 충돌로 인한 지구 생태계의 재편과 인류문명의 수몰을 다룬 작품이 있으며, 핵전쟁 또는 좀비와 슈퍼전염병 같은 재난상황은 SF 만화의 단골 설정 소재이다. 〈심해수〉는 《투믹스》에 2018년 3월부터 월간 《투믹스》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으로 파괴된 지구 생태계 속에서 살아남은 인류의 생존을 그린 작품으로 바다 밖에 없는 세상에서 적응하여 생존해 나아가는 인류의 모습을 연출하였다. 이 작품은‘2018 오늘의 우리 만화상’과 ‘2019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재난만화의 서사구조

먼저 《드래곤 헤드》는 절망의 상황 속에서 공포에 대한 인간의 심리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묘사하고 있다. 교토로의 수학여행 귀가길 갑자기 발생한 지진에 의해 주인공이 승차하고 있던 신칸센은 터널 안에서 탈선한다. 터널 양측 출입구는 붕괴되고 외부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상황 속에서 단 3명의 생존자 테루, 세토, 노부오는 구조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지만, 캄캄한 터널 속 시체 투성이의 현장에서 세 명의 인물 사이에서 갈등이 고조되기도 한다.

죽음의 기로에서 극한 상황에 몰린 소년들의 고뇌와 그에 따른 광기와 폭력을 통해 한 순간에 변해버린 황폐한 도시를 배경으로 그려내며 인간이 가진 도덕성의 본질과 궁극의 공포심을 탐구한다. 공포에 질려 두려움을 느끼던 노부오는 본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고 괴롭히던 아이들의 사체를 훼손하여 성적 만족감과 흥분을 경험하고 다른 인격을 가진 캐릭터로 변모한다. 정확한 지진 요인에 대한 묘사를 생략하여 공포 속에 정체를 감춘다.

노부오의 아프리카 원주민을 떠올리는 바디 페인팅은 공포자극으로부터 도피함으로써 일어나는 불안의 감소효과를 도모하고 그 방어적 행동을 강화시키는 행동으로 보인다. 불안과 방어는 공변(concomitant variation)관계로 위협과 공포에 짓눌린 인간의 광기를 노부오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몸에 문양 등을 그려 넣어 주술적인 의미를 가져가고 다른 초자연적인 힘으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믿음은 토테미즘적 경향의 의존형 캐릭터로 보인다 .

노부오는 작품 초반부 주인공의 반대편에 서 있는 적수로서 안타고니스트 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작품의 종반부까지 주인공 테루에게 계속적인 공포의 존재로서 어디를 가든 환영이 보이는 심리적 존재였다. 그러나 작품 종반부 주인공은 노부오의 심리상태가 두려움에 질려서 생긴 이상행동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와 같이 터널의 어두움에서 탈출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여주인공 세토는 부모를 교통사고로 여의고 겪는 기면증으로 작품 초반부 연약하고 여린 소녀로 묘사되나, 점점 정신적으로 강해지는 심리 묘사가 눈에 띈다. 인간과
환경은 상호의존적으로 작용해서 행동의 원인이 되는 인간과 환경 간의 영향을 엿볼 수 있으며, 환경상황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물의 성향 변화는 작품의 긴장을 생성하고 예측불허의 반전을 꽤하며 다양한 복선과 암시를 의미하는 장치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야기 구조를 살펴 보자면, 첫 장면에서 주인공의 특징이 나타나고, 두 번째 장면에서 주인공이 위기에 빠지고, 세 번째 장면에서 주인공이 갈등을 겪고, 네 번째 장면에서는 갈등의 결과를 얻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플롯을 활용한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반복적인 구조가 신칸센 열차탈선 터널 장면, 해상자위대 탈영병들과 대치 장면, 탈영병들과 합류하여 동경으로 이동하는 중의 이즈 지역의 마을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관철되는 규칙적 양상을 보인다. 재해라는 상황 속에서 무한의 행운을 부여받은 주인공은 질긴 생명력으로 끝내 원하던 도쿄에 다다르게 된다.

〈심해수〉는 행성 충돌로 파괴된 지구에서 살아남은 인류와 인류를 생기적 목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심해수의 종간(種間) 대립을 그린 작품이다. 인류문명의 대수몰 이후 100년의 시간이 지나 새로운 군집 단위를 구성하고 적응해온 인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형성하며 조직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인간의 욕망과 갈등 속에서 독자는 자연 환경의 파괴와 생태계의 복원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주인공 보타는 가족공동체를 시작으로 ‘유니온 부산’, ‘유니온 홍콩’, ‘유니온 요코하마’로 이어지는 경험들을 통해 바다의 포식자 심해수를 상대하는 희망의 아이콘이자 영웅으로 성장하고 있다. 작살꾼으로 성장하며, 점점 더 넓은 거시적 세계로 나아가는 동심원적 방식으로 독자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심해수〉에 등장하는 갈등구조는 비단 종(種)과 종간의 인류-심해수의 대치도 등장하지만,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도 많은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공포 가운데서 자라나는 희망을 마주하다

《드래곤 헤드》 작가는 지진과 불기둥이라는 단서 속에서 이렇게 도시가 황폐화된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서사를 진전시켜 나아가며 일어난 현상만을 담담하게 연출하고 있다. 작품의 종반부에 가까워져서야 후지산의 대분화에 의한 큰 피해라는 원인을 밝힌다. 그 이후 주인공 그룹의 생사여부는 어두운 도시의 원경을 비추는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독자는 주인공 테루와 동행하며 심연의 어둠 속에서 두렵고 떨리는 여정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작품 초반부 터널 속은 앞뒤의 출입구가 꽉 막힌 상황으로 나뒹구는 동급생의 사체와 터널 속 열기 등 폐쇄적인 공간구조와 열악한 환경은 이질적인 상황으로 등장인물들의 현실감각을 떨어트리는 무대장치가 된다. 공포에 질린 인간 자신의 내적 압력을 묘사하는 반복적인 클로즈업 샷과 긴박한 외부 환경 요인의 변화를 제시하는 풀 샷의 교차를 통해 작품의 호흡에 긴장감을 가져와 리듬감을 형성하고 있다. 표정에 드러나는 세밀하고 거친 펜선 묘사는 재난 상황에 지친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피로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어둠을 표현하는 거친 펜선의 질감과 스크린톤과 먹칠로 덮여진 공간감은 독자들에게 잿빛의 폐허도시를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중간 중간 등장인물들의 회상 장면으로 연결되는 플래시백 연출효과는 만화의 영상적 표현으로 등장인물들의 어떤 행동을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나, 전후 관계에서의 유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심해수〉에서는 고대 부락사회로 회귀해버린 바다라는 생태계에서 최소 군집 단위인 가족의 테두리에서 살아온 주인공 로타가 다양한 형태의 연대를 경험하는데, 본질적으로 집합주의적인 접근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유니온은 개인의 일탈을 막는 집단의 방식으로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장치로 국가 단위의 지위와 자격을 가지는 독립된 집단이다. 혜성충돌 이후 100여년이라는 세월에 갖춰진 사회 시스템의 재편은 재해 직후로 정부의 무존재성을 강조하는 《드래곤 헤드》와 구별되는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드래곤 헤드》에서는 일상생활의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로 인해 일순간 재난 상황이 벌어진 사회 시스템의 무능함을 폭도로 변한 경찰관, 민간인 여성을 범하려는 탈영한 자위대원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치안은 사라지고 최소한의 도덕을 망각한 채 폭도로 돌변하여 약탈과 폭행을 일삼는 묘사를 통해 자칫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가진 작품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지만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도쿄로 향하는 주인공을 통해 뜨거운 인간의 생존의지와 희망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이미 변해버린 자연환경 속에서 새로운 생활문화 양식과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며 적응하는 인류의 모습은 〈심해수〉를 통해 잘 드러난다. 냉정한 계급사회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작살꾼의 모습과 돈이 없으면 생존이라는 기본권을 보장해주지 않는 차디찬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친절성이 드러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어렵고 힘든 이들을 향한 주인공의 따뜻한 표현행동에서 나타나는 일관성을 통해 국가의 경계, 민족적 차이를 초월하는 보편적 인류애를 느낄 수 있다.

공포에 휩싸여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공포에 짓눌려 광기로 변해 공격성을 드러내는 인간의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재난이라는 상황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이질적 행동들과 설명하기 어려운 심리상태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의무가 없는 인간이 가진 기저심리에 의한 결과이다. “너희들을 괴롭혀 온 괴물이라는 정체는 사람들이 불운이나 불행이라고 말하는 ‘운명’이라는 괴물일거야” 라는 《드래곤 헤드》 속의 대사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재난 상황,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무가지 <지금, 만화>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제공하는 계간만화, 웹툰비평지입니다.


클릭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금, 만화> 페이지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