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계속되는 절망 속에서도 잃지 않는 희망 〈심연의 하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 2020-11-18 14:00

계속되는
절망 속에서도
잃지 않는
희망

<심연의 하늘>


만화평론가 

최윤석


일상이 무너지고, 지옥이 펼쳐진다.
어른들의 이기심과 잔혹성이 드러날 때,
아이들은 가장 인간다우면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을 한다.


 재난 속에서의 조우

어둠 속, 불빛과 함께 소년이 등장한다. 주변을 가득 메운 시체와 무너진 건물 사이, 펼쳐지는 영문 모를 상황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라며 두려움과 당황함만이 차오를 때쯤, 소년은 우연히 소녀 ‘혜율’을 만난다.


“지옥의 서울에 온 걸 환영해.”, 환영사이자 상황을 명확하게 해주는 혜율의 말이다. 그렇게 소년과 소녀가 지옥 안에 있음을 알리며 이야기의 본격 시작을 알린다. 인류 문명이 거의 멸망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웹툰 〈심연의 하늘〉은 두 주인공 ‘하늘’과 ‘혜율’을 생존이 중심이 되는 재난물이다. 재난물은 쉽게 주인공에게 몰입할 수 있고, 별다른 설명 없이도 캐릭터들의 목적의식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절망스러운 상황들로 하여금 인간 본능 중 하나인 ‘생존’이라는 명확한 동기에 강하게 공감되기 때문이다. 이작품 또한 이러한 장점이 잘 드러난다. 잘 모르는 상황들이 펼쳐져도 생존이라는 목적 아래 ‘하늘’과 ‘혜율’의 시선과 행동에 몰입된다. 그런데 흐름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단순 ‘생존’만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다 의문이 쌓이더니 어느새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스터리로 연결된다.


재난과 미스터리의 조합은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특히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라면 필연적으로 엮이는 부분이다. 다만, 이 작품의 차별적인 부분은 보통 이런 경우 재난이 일어난 원인을 메인 미스터리로 삼는다. 하지만 이 경우엔 두 주인공 자체에 미스터리가 있다. 두 캐릭터는 기억이 온전치 않고, 너무 많은 정보들이 혼재되어 있다. 때문에 극을 이끌고 가는 캐릭터조차 중심을 잡고 나아가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가끔은 독자들도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 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을 잠시만 참고 쭉 따라가다 보면 두 주인공의 만남도 사실은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밝혀져야 하는 사실, 알고 싶은 정보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계속 보게 하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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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연의 하늘〉©윤인환, 김선희



지옥이 된 세상,

희망이란 이름

인류 문명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 배경, 이에 걸맞게 작화는 어둡고, ‘절망’이라는 그 특유의 느낌을 시각화 하여 표현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제한적인 색감의 사용.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검은색, 회색 등 무채색 계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햇빛 하나 들지 않는다는 작품 내 배경 설정과 더불어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아 각 캐릭터들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여기에 작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채도가 있는 색상을 포인트로 사용하는데 그 중 ‘빨강’은 단연 돋보이는 색이다. 작품 내 ‘혜율’의 체육복 색이면서 동시에 사람 피의 색이기도 한 ‘빨강’은 무채색과 대비도 되지만, 임팩트 있는 장면에서도 자주 보인다. 기본적으로 피를 몸에 두른 캐릭터들의 모습에서 표현되는 사람 피의 ‘빨강’은 작품 전반에 공포와 기괴함을 극대화한다. 그런데 이와 다르게 사용된 ‘빨강’이 있다. 바로 그건 ‘혜율’의 빨강 체육복이다. 

사실 작품 내에서 이 체육복은 굉장히 흥미로운 요소이다. 학생이라는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장치이기도 하고, 재난 이전의 물건, 변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혜율’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때, 체육복은 ‘혜율’에게 트라우마이자 엄마와의 유대감을 잇는 장치로 결과적으로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체육복의 활용은 시즌2 마지막 화에서 잘 드러난다.
절망의 끝, 심연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빨강 체육복을 입은 ‘혜율’이다.

사다리를 타고 지상을 향해가던 ‘하늘’은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입고 있던 빨간색 옷을 버리고, 떨어질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 옷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빨강체육복을 입은 ‘혜율’이 나타난다. ‘혜율’이 나타나기 전, ‘하늘’의 아버지는 그녀를 희망이라 불렀다. ‘하늘’이 빨간색 옷을 버린 시점에서 그는 절망하고, 희망을 포기했다. 그런 와중에 ‘혜율’이라는 희망이 새로 나타나 결국 지상으로 가는 것에 성공한다. 바통터치와 같은 방식의 이 연출은 교체되는 ‘빨강’의 색으로 인해 좀 더 명확하고 인상적이게 기억에 남는다. 


겁 많고 서투르지만,

인간적이고 용기 있는

‘혜율’은 희망이다. 그리고 ‘하늘’ 또한 이 세상을 구할 희망이다. 그렇게 작품 속 두 주인공은 ‘희망’이라는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어른이 아닌 학생, 아이들이 이 세상을 구할 희망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쳐버리고, 사람을 해하지만 ‘하늘’과 ‘혜율’은 서투르긴 해도 인간으로의 당연한 선택을 하려 노력한다. 확실히 이 작품 속에선 아이란 어른이 비해 순수하고, 희망의 씨앗처럼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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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연의 하늘〉©윤인환, 김선희




시즌4에 등장하는 부모를 따라 식인을 하던 여자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재난후 아무렇지 않게 식인을 하지만, 시즌4의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창욱’에 의해 끝에는 변화되어 식인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조건이었지만, 같이 있던 어른은 바뀌지 않았고, 그 아이는 바뀌었다. 이는 인간성이 결여된 사회 속에서도 아이의 순수성이라면 변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재난과 미스터리 스릴러,

그 사이

결과적으로 보자면 완성도가 많이 떨어지거나, 재미가 없는 작품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도 아쉬운 지점이 존재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보이는 장르적
인 애매함과 설정의 오류들이 집중을 해치기 때문이다. 장르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재미를 주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던 ‘생존’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중후반부터는 사실상 죽지 않는 주인공들로 인해 이러한 중심이 흔들린다. 물론, 만약 미스터리에 대한 요소들을 적절히 풀어줬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의문들이 제기되는 것에 비해 해소되는 것은 많지 않다. 또한 어떤 의문들은 해소하는 데 너무많은 화수를 소비되는 방식을 계속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보는 이로 하여금 지치게 만든다. 가장 대표적인 게 중요한 얘기를 할 찰나에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전개는 한두 번 정도는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여러 번 반복이 되다 보면 결국 의도적임이 느껴지고, 더 심각한 것은 그렇게 알게 된 사실들이 별 게 없거나, 알맹이는 빼놓고 알려준다는 점이다. 이럴 때 밀려오는 허무함은 작품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이 작품엔 결국 끝까지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몇 있다. 그것은 장르적 맥거핀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꽤 있다. 몇 가지만 열거하자면 시즌3 마지막 화에 왜 ‘하늘’과 ‘혜율’을 향해 핵을 쏘았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그 사실에 이 작품에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다만, 시즌의 엔딩을 그렇게 장식했고 그 전에도 민간인에게 총을 쏘던 군인들을 보여주면서 정부, 중국 정부에 대한 호기심을 쌓아왔었기 때문에 시즌3 엔딩의 의문이 해소되지 않으니 당연히 허무하다.

시즌4가 혹평을 받은 여러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궁금하게 해놓고 전혀다른 이야기를 펼쳐 놓으니 시즌을 따라오던 독자는 의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외에도 작품 내 중요 요소인 ‘시약’에 대한 설정에 모호한 구석이 있다. 부작용에 대한 언급이 분명 있는데, 이 부분만 생각하면 애초에 계획된 플랜들은 모두 실현 가능성이 없다. 2~3개월 후엔 면역력이 과하게 악화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늘’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우주에서 2년이란 시간을 보낸다.
그가 맞은 시약은 특별했던 걸까.

결과론적으론 아쉽지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 짚고 넘어가자면 넘어갈 수도 있는 정도의 설정들이다. 그러기에 아쉽다. 어쩌면 이건 기대치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시즌 초반부만 하더라도 내용적으로 미스터리와 재난의 그 요소가 잘 섞여 흥미로웠다. 그런데, 후반부에 흥미롭게 해줬던 부분들이 매끄럽게 풀리지 않으니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끝나지 않은 절망?

혹은 희망

〈심연의 하늘〉 속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엄밀히 따지면 ‘하늘’과 ‘혜율’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그건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과 연계 된 ‘슈퍼스트링 세계관’ 안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둘은 다른 작품에서 볼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연계를 위해서인지 풀리지 않은 진실들이 있어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흥미로운 캐릭터와 이야기이기에 아직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생긴다.

“심연의 끝에서 하늘을 보라” 알고 보면 스스로에게 하는 말

주인공 ‘하늘’은 용기라는 말로는 차마 다 담을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토록 수많은 절망을 겪고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그가 ‘하늘’이자 ‘희망’이기 때문
이다. 어떤 의미에선 엔딩의 이야기는 끝이지만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하늘’과 ‘혜율’은 진짜 하늘을 보게 된 걸까. 드디어 심연은… 절망은 끝이 난 걸까. 이러한 궁금증과 함께 언젠가 다시 이어질 이들의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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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연의 하늘〉©윤인환,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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