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웹툰 시대에 순정만화가 평가절하 당하는 문제

최근 SNS상에서 순정만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2월 12일 한겨레에 올라온 만화 관련 기사 중 ‘여혐.성희롱.폭력...’ 여자가 그린 여자 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순정만화에 갇혀있던 여성 작가들 자의식 성장하며 대안만화 그려내’라는 발언이 나와서 그게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기사에 나온 말 중에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순정만화에 갇혀 있던 여성 작가가 자의식이 성장하면서 대안만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탐구를 이뤄냈다’란 말과 ‘일상툰을 벗어나는 작가적 자의식이 두드러진다’라는 말이다.
이것은 순정만화와 일상툰 두 개를 동시에 폄하하는 뉘앙스의 말임과 동시에, 현재의 여성 작가들이 순정만화와 일상툰을 그리면 자의식이 성장하지 않는 것처럼 몰아가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대안 만화를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어서 특정한 장르를 강요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일단, 순정만화와 일상툰 둘 다 그렇게 폄하 받을 정도의 장르는 아니다.
순정만화는 70~80년대 남성 독자의 전유물이었던 한국 만화 시장에서 여성 작가를 주축으로 순정만화를 그리기 시작해 시대의 유행을 만들고 이끌어나간 장르로서, 대여점 시대로 접어들어 출판 만화 시장이 몰락하면서 침체기에 들어갔다고는 하나. 그 장르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인정해줘야지 그 틀에 갇혀 있다 마다하는 말은 문제의 여지가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웹툰 플랫폼에서 기획한 옛날 만화 거장전 등이 주로 소년만화 위주고 순정만화 대상으로 한 기획전이 전혀 없다는 걸 생각해 보면, 순정만화가 장르적으로 한국 만화 시장에 세운 업적에 비해 너무 평가절하 받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 틀에 갇혀 있다는 말로 폄하하고 요즘의 최신 여성 작가는 리얼리즘 만화만 그려야 한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현실을 보면 씁쓸하다.
물론 여성 작가들의 리얼리즘 만화가 최근 두각을 나타낸 새로운 장르고 요즘 같은 시대에 나와야 한다는 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옛 시대의 장르와 작품을 구태로 여기면 안 될 일이다.

일상툰 같은 경우는 작가의 개인 사생활을 소재로 삼아서 그리는 작품이다. 이에 따라 작품에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어 그 어떤 장르보다 작가의 자의식이 진하게 묻어나 있는데 일상툰을 벗어나서 두드러진다는 작가적 자의식이 뭔지 의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상툰 역시 실제 있었던 일을 베이스로 하고 있기에 리얼리즘에 속하는데 사회 고발적 리얼리즘 만화만 작가적 자의식이 두드러진다고 하는 말 자체가 어폐가 있다.
거기다 일상툰은 웹툰 초기 시절 독자들을 끌어 모아 한국 웹툰을 지탱한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 장르고 남녀 구분하지 않고 다 활발하게 그리는데, 왜 굳이 성별 프레임 안에 집어넣어 안 좋게 해석하는 건지 모르겠다.
순정만화 안에서도 다양한 장르와 시도가 있어 왔고, 또 남녀 성별의 의미가 무의미할 정도로 작가들이 여러 장르를 두루 섭렵해 만화를 그려내고 한국 만화 시장 발전에 공헌했는데.. 여성 작가의 자의식이 순정만화의 틀에 갇혀 있다는 말은 그 모든 업적과 성취를 무시한 발언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애초에 순정만화가 됐든, 일상툰이 됐든. 작가가 무엇을 어떻게 그리던 그건 작가 마음이다. 그게 창작의 자유로서 보장되어야 할 일이다. 리얼리즘 만화가 흥하는 추세라고 해도, 요즘의 여성 작가가 리얼리즘 만화를 그리지 않으면 순정만화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이고 자의식이 없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건 지양되어야 할 일이다.
지금 현재의 웹툰 시대에 평가절하 당하는 순정만화의 재평가에 대한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