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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치면 깨질 것 같은 판타지 '저무는 해, 시린 눈'

박성원 | 2021-03-16 10:29

판타지(특히 하이 판타지)나 SF 장르의 팬이라면 대부분 공감하실 것 같은데, 국내 최대의 웹툰 플랫폼인 네이버에서는 해당 장르의 신작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미 연재하고 있는 작품들도 그다지 많지 않고요.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지만 - 장르 자체의 진입 장벽, 웹툰을 그릴 작가 풀이 넓지 않음 등등 - 아무래도 네이버 웹툰의 주요 독자 층에서 그다지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요인이 제일 크겠지요. 그런 만큼 네이버 웹툰에서 판타지/SF를 본다면 꽤 반가운 마음일 것입니다. 또, 소수 정예인 만큼 퀄리티도 어느 정도 확보된다는 인상을 종종 받게 되는데, 이번에 리뷰 할 작품 '저무는 해, 시린 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살펴보지요.

저무는 해 시린 눈 태양의마녀
이야기는 대륙에서 막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모르메리타'와 '북부' 사이의 전쟁에서 북부는 패배하여 그 흔적마저 지워집니다. 북부에서 온 소년(작화상으로는 잘생긴 청년에 가까움) '에르킨'은 약초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잡화상 일을 도우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뛰어난 약초사를 찾는 왕실 기사단 사람들의 눈에 띄어 지원하게 됩니다. 에르킨은 내심 왕국과 북부 사이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신의 가호를 받아 '태양의 마녀'로 불리는 여자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거든요. 에르킨은 어떤 높으신 분이 칩거 중인 궁궐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약재상으로 일하게 됩니다.

저무는 해 시린 눈 남자주인공
스포일러 소개는 최대한 줄였습니다. 대략 5화 정도만 읽어보셔도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한 구조이니까, 스토리는 직접 확인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역시 네이버에서 연재하고 있는 (로맨스)판타지 답게 여러 모로 기본기가 탄탄한 작품입니다. 가장 먼저 제법 본격적인 판타지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오그라들지 않게 녹여내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요.

저무는 해 시린 눈 여자히로인
그 다음으로는 '전쟁' 내지는 '전쟁 이후'를 결코 가볍지 않게, 독자들이 와 닿을 수 있도록 작품 곳곳에서 느껴지는 상처들과 피폐함이 이야기의 분위기를 (항상은 아니지만)무겁게 하고 있습니다. 대륙의 어디를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간에, 그 누구가 됐든지 이 전쟁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느낌. 주인공 '에르킨'이 적국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체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작품의 갈등을 이루는 핵심 구조이기도 하고요.

주인공 '에르킨'이나 '힐데가르'를 포함해서 인물들이 상당히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훌륭합니다. 북부인, 왕국인, 왕국의 기사 등등.. 인물들은 현실에서도 그렇듯 신분과 배경에 제약이 있지만 그 안에서 따뜻한, 사적이면서도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품고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전후라는 배경과 함께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갈등이기도 합니다.

저무는 해 시린 눈 기사단의방문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다 보니까 설명하기가 쉽지 않군요. 일단 장르를 분류하자면 '로맨스 판타지'가 될 것 이지만 로맨스는 리뷰의 제목에서 적은 것처럼 꽤 위태롭습니다. 일단 남자 주인공과 히로인의 관계부터 진실을 모를 때의 감정과는 별개로 쉽사리 이어지기가 어려운 형태거든요. 지금 보이는 달달한 로맨스나 평화로운 듯한 배경과 달리 그 속에 무시무시한 장애물들이 새겨져 있어, 당장이라도 눈 앞에 있는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 듯한 위태로움이 이 작품의 큰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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