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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복만 입으면 로맨스가 펼쳐지는 줄 알았다,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

나예빈 | 2021-05-2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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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중학교 시절은 참으로 재밌을 줄 알았다. 교복만 입으면 무슨 로맨스라도 펼쳐질 것 같았거든. MP3에 넣어서 몰래 보던 럽실소와 인소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키도 크고 잘생긴 그런 오빠들. 게다가 목소리도 너무 좋아서 내 이름이라도 한번 불러준다면 눈망울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뒤돌아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오빠들. 그게 아니라면 평소에는 앞머리가 별로네, 화장 못 하네 장난을 치다가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내 친구. 축구 하는 거 구경하러 나와주면 골 하나 넣고는 나에게 달려와 주는 그런 친구! 나는 그런 장면들을 기대했다. 로맨스를 기대했다고. 그런데 현실은 입시 호러 전쟁 물이었다. 대체 왜? 주인공 미애 역시 나와 같은 삶을 사는 모양이다. 고교평준화가 안 되어서 중학생 신분으로 입시를 치러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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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미애 앞으로 고구려중 대마왕이 전학 온다. 키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또래보다 키가 작은 미애의 눈에는 거인처럼 보일 지경이다. 아이들이 전해준 소문에 따르면 대마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아이가 고구려중에서 누군가를 때려 강제 전학을 왔다고 하는데. 사실 미애는 이 아이를 안다. 아빠 친구 친한 사람의 가족이라는, 멀지만 또 멀지도 않은 관계로 시작한 두 집. 어렸을 적에 종종 피서지로 그들의 집에 놀러 간 미애네 가족이기에 미애는 대마왕을 잘 알지는 못해도 일단 알기는 안다. 당시에도 과묵하고, 과묵한 것을 넘어서 말도 걸지 말라던 대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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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을 앞두고 몰래 하늘을 지켜보던 미애. 미애는 비행기 천 개를 모으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왜냐면 천 개를 모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그랬거든. 정확히는 납치해서 가지고 있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천 개 세기. 문제가 하나 있다면 매번 몇 가지 세었는지를 까먹는다는 거고. 여느 때처럼 창문에 대고 망원경을 들이밀던 미애. 낡은 서랍장을 밟고 있었던 탓에 몸무게로 눌러 부수어버리고 말았다. 미애는 다치고, 안에 있는 것들은 전부 쏟아져 나오고. 그러다가 만화책을 들켜 엄마한테 혼났다. 울면서 강아지랑 산책하다가 대마왕을 만났는데 대마왕도 울고 있었다. 미애는 착한 소녀답게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그만 강아지가 짖어버렸고, 대마왕은 놀라 도망치다 신데렐라처럼 운동화 한 짝을 두고 가버렸다. 더 문제는 뭐냐면, 둘이 한 반이 되어버렸어. 아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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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왕이라는 소문이 맞는 것인지 아무랑도 친해지지 않았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그 날카로운 눈빛을 여과 없이 드러냈고. 얼마나 무서운지 다들 철이와 미애라고 엮어 놀리는 선생님의 장난에도 웃지 않았다니까. 그렇다고 사고를 친 것도 아니었지. 그저 공부만 미친 듯이 하고 다니던데. 주변에서 시비를 걸어오는 형아들이 있긴 했는데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고. 하긴 원래 그렇다. 내가 본 로맨스 소설에서도 가장 센 애들은 말이 없고 과묵해.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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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마왕도 그렇게 속이 편하지는 않았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전학 오기 전에 추억이 그립거든. 하하 호호 계곡 근처에서 모여 놀던 그 시간이 말이야. 이사 오던 날, 방을 정리하면서 추억이 담긴 물건을 내다 버리던 중에 눈물이 터져버렸고. 눈이 왜 그러냐며 친절하게 자신에게 달라붙는 미애는 따뜻하면서도 자신을 두렵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숨기고 싶은 나, 약해진 나. 그걸 알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려움으로 몰아넣는 거지. 인간에게 있어서 솔직해진다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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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을 모르는 미애는 대마왕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아니 그렇잖아. 완전 재수탱이야. 다른 애들은 소문만 듣고 무서운 애니 어쩌니, 하는데 미애만은 편견 없이 봐주려고 했다니까? 그러면 고맙다고 해야지. 그러기는커녕 뭐라는 줄 알아? 친한 척하지 말래. 친한 척하지 말래! 역시 현실은 시궁창인가보다. 로맨스는 무슨 잘해려주려던 애한테 면박이나 당하고. 나라면 민망과 서운함에 다시는 쳐다도 안 볼 것 같은데 단단한 미애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조금 열 받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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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소녀의 팍팍한 삶에도 빛은 온다고. 교실에 등장한 바선생을 잡게 된 미애. 아, 그게 빛은 아니고. 선생님은 신발까지 날아갔으면서 양말만 신은 채 바 선생을 잡아준 미애에게 수업 시간에 밖으로 나가 씻고 오라는 선물을 주신다. 알잖아. 수업 시간에 보건실 가고 화장실 가는 게 얼마나 가뭄에 단비 같은 일인지. 그렇게 발을 벅벅 씻고 있는데 선배들을 보게 된다. 그 선배가 얼마나 잘생겼냐면, 인기 아이돌을 닮았어. 아니, 어쩌면 인기 아이돌보다 더 잘생겼을지도. 친구들은 미애의 이야기를 듣고 조선 시대였으면 결혼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떤다. 엉엉, 날 가져요.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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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오빠를 만나도 여전히 대마왕이 마음에 걸리는 미애. 얼마나 착해. 나라면 재수탱이라며 꿀밤 한 대를 먹여줬을텐데. 미애는 대마왕에게 집도 가깝겠다 같이 공부를 하자고 제안을 내민다. 계속해서 튕기던 대마왕도 그런 저돌적인 모습에 어쩔 도리가 없었는지 알겠다고 말을 하지. 미애 인생은 워낙에 우당탕탕이라 그 자리에서도 쏟은 물을 밟고 넘어진다는 대형사고를 치고 말지. 또 대마왕은 그런 미애를 구하겠다고 이상한 자세를 취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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