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단지가 돌아왔다 <방탕일기>

심지하 | 2019-12-10 09:25

단지가 돌아왔다 <방탕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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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널 사랑해 ♬
2015년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웹툰, 작가의 필명과 작품의 이름이 같았던 <단지>를 기억하는가? 성별을 떠나 많은 이들의 공감과 눈물을 샀던 단지가 다음 웹툰으로 돌아왔다. <방탕일기>라는 눈에 확 띄는 제목을 들고서.

지난날 단지는 나에게 아픈 작품이었다. 작품을 그저 재미있게 '즐기'려거든 작품과 나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몰입감과는 다른 의미다.) 단지는 손톱 밑 가시처럼 읽는 나를 아프게 했다. 그저 남의 이야기라고 덮어두고 나를 다독여주기엔 내 주위에 단지가, 그리고 내 안에도 단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모두에게 공감과 찬사를 받았던 것이겠지만 한편으론 그러므로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정폭력 이야기라면 영화고 드라마고 그만 보고 싶다며 진절머리를 내던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저 트리거를 유발할 만한 것들,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물리적으로 멀어지고 싶어 했던 친구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무작정 추천하지만은 않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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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새로이 돌아온 방탕일기는 어떠할까. 1화부터 15세 이상 감상을 권장한다는 문구와 함께 시작되는 방탕일기. 우리가 기억하던 빨간 머리에 큼지막한 고양이귀를 단 캐릭터는 어디로 가고, 시크한 은발에 눈보다 작은 귀를 단 캐릭터가 술병을 들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단지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단것을 아주 많이 먹던, 그리고 자주 울지만 한편으론 잘 웃기도 하는 캐릭터였는데. 서른한 살에서 서른 네 살이 되어 돌아온 단지는 색다르다. 주식과 돈과 남자와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단지의 모습에 덧글창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전작 단지가 연재됐던 레진코믹스는 덧글창이 없었던 것에 반해 덧글 소통이 활성화되고 네이버보다 독자 연령대가 높은(카더라, 지만 다들 어느정도 공감하는) 다음인지라 의견들이 참 다채롭다. 기대된다, 반갑다는 덧글만큼이나 잔인하다, 걱정된다, 어린아이들이 보기엔 그렇다 라는 의견도 있다. 어떨까.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일기'인 탓일까. 작중 캐릭터가 하는 모든 행동에 의미가 부여되고 해석과 걱정이 뒤따른다.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한 이상 이후 들려오는 평가는 작가의 손을 떠날 수밖에 없다지만, 단지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면 반응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까지 술을 마시고 돈을 벌고 어린 애인을 만나며 '방탕'하게 '일탈'하는 남자들은 지겹도록 봐왔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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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미 지나간 일이라지만 작가 본인이 등장하는 '일기'인 탓에 작중 소재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 결말을 알고 있는 비트코인에 대한 우려라던가. (그리고 다음 화에서 우려는 현실이 된다) 돈이 뭐냐고, 그걸로 뭘 하고 싶으냐고, 그게 정말 하고 싶은 건 맞느냐고 자꾸만 들러붙는 우울을 떨쳐내기도 전에 떡락한 비트코인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단지. 우울해질 만큼 심각한 돈을 잃고 난 뒤에야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실행에 옮기는 모습은 아름답지도 않고, 존경스럽지도 않고 멋있지도 않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꼭 멋지고 존경스럽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낸 사람만이 자서전은 내야한다는 법은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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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단지>역시 나이 제한이 필요한 콘텐츠라고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 <방탕일기>역시 나이제한이 필요한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단지는 훌륭한 작품이지만 잘 만들었기 때문에 관람이 힘든 작품도 있는 법이다.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한결 위로받고 치료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일을 다시금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지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반드시 덮어놓고 묻어두는 것만이 치료라고 할 순 없지만, 들추어내는 것만으로도 바늘에 찔린 것처럼 아파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방탕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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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감상으로 먼저 방탕일기는 일단 재밌다. 사람 사는 일이 늘 그렇듯 언제나 유쾌하고 즐거울 순 없지만 일단 포텐이 즐겁다. 그럴싸한 펜션에 친한 언니들과 놀러 가서 늦은 밤 도란도란 둘러앉아 술 한잔 까며 하하 호호 깔깔 떠드는 이야기 같다고나 할까. 새벽의 온기와 알콜을 양념삼아 한층 자극적이면서도 적당한 거리감을 둔 이야기를 듣는 시간. 방탕일기는 그런 느낌이다. 덧글 중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별거 아니더라. 하고 웃는 연상의 언니를 보는 기분. 하지만 명심하자, 술자리는? 스무 살 이상 성인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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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성인용 콘텐츠란 단순히 살색이 얼마나 많이 나오느냐로 갈리지 않는다. 요즘 애들은 알 거 다 아는 애들이라지만 언제, 어떻게 어디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도, 미디어가 자아낸 환상과 현실을 가르는 기준도 달라진다. 해봤는데 별거 아니더라, 너흰 그런 거 하지 마. 라는 이야기에 정말 못쓰겠다, 하고 깔깔 웃는 이십 대 후반과 진짜 멋있다, 난 어제 그런 거 해보지? 라며 콩닥대는 십대, 이십 대 초반은 다른 것이다. 물론 '좀 놀아본 언니의 이야기'답게 적당히 충고할 건 충고하고 (원나잇이던 뭐든 피임은 철저히. 라던가.) 줌인할 건 줌인하고, 줌아웃할 건 아웃하는 거리감은 참 좋다. 하지만 이왕 할 것이라면 제대로 성인 걸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나. 은근한 비유가 감질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다 벗어 재낀 어른들의 표현이 보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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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에 <단지>는 작가 본인을 위한 작품이었다. 본인을 위로하고 본인과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작품. 그렇다면 방탕일기는 어떠할까. 위로는 나쁘지 않지만 가장 좋은 건 위로받을 일이 없는 것일 것이다. 단지는 위로가 필요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지만, 방탕일기는 과연 어떨까. 어떤 식으로 '단지'에게 도움이 될까. 그리고 우리를 어떻게 위로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