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클리셰를 어떻게 쓰는 지 알려주겠다 <구경하는 들러리양>

심지하 | 2020-01-2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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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를 어떻게 쓰는 지 알려주겠다 <구경하는 들러리양>



<구경하는 들러리양>은 엘리아냥 작가의 로맨스 판타지 웹 소설을 원작으로 둔 웹툰이다. 원작 특유의 브레이크 없는 직진 드립력과 특유의 센스를 웹툰으로 고스란히 들고 온, 어쩌면 더 업그레이드하여 가져온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화가인 윰윰작가는 다음 웹툰에서 <여섯 살 엄마>,<왕자의 조건>등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과 특유의 센스로 호평을 받았던 작가로 <구경하는 들러리양>에서도 강약강약을 조절하며 약 빤듯한 전개를 보여준다.


<구경하는 들러리양>의 장르는 흔히 말하는 책빙의물이다. 다만 흔한 책빙의물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책빙의물이 판치는 시대, 주인공은 물론이요 악역, 악역의 엄마, 누나, 동생, 애인, 시녀……온갖 인물들에게 빙의하는 로맨스 판타지 독자들 가운데 <구경하는 들러리양>의 주인공은 특이하다면 특이하고, 흔하면 또 흔한 포지션에 빙의했다. 바로 소설 속 악역 엑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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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할 비중 없이 적당히 어그로나 끌다 주인공을 돋보이고 쓰러지는 엑스트라에 빙의한 작품들은 꽤 된다. 원작의 운명을 벗어나 원작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거나 자신만의 엔딩을 손에 거머쥐는 주인공들, 참 많다만 <구경하는 들러리양>은 또 다르다. 자신만의 엔딩을 거머쥐는 건 맞지만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는 건……글쎄. 제목을 다시 한 번 보자. <구경하는 들러리양>. 맞다. 여기 주인공은 우리와 같은 독자 된 입장으로 판타지 세계를 '구경'한다. 마냥 참신하다고 할 순 없는 소재지만 중요한 건 이를 어떻게 풀어내느냐, 이다. 어지간히 진지한 작품이라면 불가능할 오만가지 드립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것이 바로 <구경하는 들러리양>이다. 흔히들 말하는 '노빠꾸 직진 개그물'은 사실 호불호를 타기 쉬운 장르 중 하나이다. 개그만큼 취향을 타는 소재가 드물기도 하고, 까딱 잘못하면 유치하다는 평만 듣고 사라지기 쉽기 때문이다. 중도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개그물이라고 매일같이 깔깔 대잔치만 하자니 영 아니고, 그렇다고 개그물에서 갑자기 진지해지려니 또 무겁고, 강약강약을 조절하며 스토리를 쓰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클리셰를 팍팍 부수는 것까지 하자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그걸 구경하는 들러리양이 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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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그래서 그 <구경하는 들러리양>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이렇다. 너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덕후 김혜정은 25살의 학원 강사이다. 시험이 끝난 주말을 즐기기 위해 <야수의 꽃> 정주행을 하다가 그만……소설 속 엑스트라로 빙의해버렸다. 그것도 소설 진행 시점이 아닌 한참 어린 시절로.


주인공이 빙의하게 된 <야수의 꽃>은 초특급 인기 로맨스 소설로, 똑똑하고 지혜롭고 이러저러한 유학생 여주인공이 제국에서 세 명의 잘난 물고기들과 노니는 어장관리하는 소설이다. 빼어난 세 명의 물고기들은 다음과 같다. 최연소 천재 마탑의 후계자, 최연소 공작, 황태자. 클리셰 범벅에 뻔한 플래그 투성이 내용이지만 작가님 특유의 필력으로 인기몰이중이었으나 중요한 부분에서 연중을 때려버린 것. 자신이 소설 속에 빠져버렸다는 것을, 그것도 주인공도 뭣도 아닌 악역 엑스트라 (1) 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주인공은 처음에는 절망하지만 결국 현실에 적응하게 된다. 기억하는 작품 내용도 정리하고, 생활에 익숙해지려 노력도 하고, 미리 남자 주인공들을 만나 비중도 쌓아보려 하지만 소설 속 세계가 의외로 철저한 탓에 정해진 시간이 올 때까지 남자주인공은 만나보지도 못하고 세월을 보내는 주인공. 그러나 정해진 대로만 시간을 보낸다면 주인공이 될 수 있을리가. 남자주인공과의 새로운 썸씽을 포기한 주인공은 전직 덕력을 바탕으로 소설 속 세계의 잘나가는 비모르(우리 말로 하면 BL) 계의 거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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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이야기가 끝날 리 없다. 비모르 계의 거장이 된 것을 필두로 우리의 주인공 라테 엑트리, 이름부터 이미 될성부른 싹인 그녀는 차곡차곡 원작을 바꿔나간다. 책빙의물의 주인공이 그렇듯 원작의 전개를 미리 알고 선수를 치거나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제목 그대로, 본래 포지션 그대로 들러리양이 되어 작품을 구경한다. 팝콘까지 야무지게 튀겨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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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원작부터 톡톡 튀는 입담과 드립센스를 보여주긴 했으나 약빤듯한 작화는 소설의 아스트랄함을 업그레이드시키는데 일조한다. 귀여운 인상의 곱슬 금발 주인공의 얼굴 작화는 롤러코스터마냥 오르락 나리락 하기를 반복하며 우리와 밀당하고, 어느 상황에서도 잘생김을 유지하는 남자 주인공들의 얼굴마저 개그요소가 된다. (무슨 소리인 지 글로만 봐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콧구멍에 팝콘을 꽂고도 잘생긴 남자주인공을 웹툰에서 직접 만나보자.) 주인공의 친구가 되어 비중도 늘리고 명줄도 늘리겠다는 야무진 인생 계획은 물론 소설 속에 들어온 독자의 입장을 잊지 않고 신나게 빙의물 특유의 메타발언을 넘나드는 주인공의 바람직한 입담은 독자들의 손을 잡아 채 끌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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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재미난 웹툰에도 장단점은 있다. 첫째로는 작화의 퀄리티가 너무 널뛴다는 것이다. 물론 강약중강약을 조절하는 작가님의 솜씨는 정~말로 탁월하지만 종종 작화가 무너지는 순간이 보인다. 일부러 의도를 가지고 그런 경우도 많지만, 특히 인물 작화와 배경 렌더링 간의 괴리는 종종 작품의 몰입도를 떨어진다. 아니, 어쩌면 이 또한 작가님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인 라테 엑트리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소설'로 인지하고 있다는 무언의 연출……일 수도 있겠지만 종종 너무 따로 노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외에 이게 무슨 로맨스 판타지야! 아무리 판타지라도 시대고증이 개판인 것 아니냐! 라는 의견도 종종 보이지만 글쎄, 이건 어지간한 판타지들의 클리셰를 팍팍 비틀고 쥐어짜고 버무린 소설, 아니 웹툰이라니까. 클리셰를 어떻게 써야 할 지 막막할 때, 남들은 신선한 재료로 잘만 쓰던데 왜 나는 이게 안될까 싶을 때 보면 어느새 정주행을 하고 마는 그런 개그물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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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작품이 개그를 위해 안전벨트 없이 무작정 달려나가기만 하는 작품은 아니다. 인쇄출판이 저렇게 활발한데 전서구로는 새를 쓴단 말이야? 라는 질문이 나오는 세계관일지언정 작중 화자, 그러니까 우리의 주인공 라테 엑트리의 멘탈 하나만큼은 튼튼하다. 작품의 안전벨트가 바로 주인공 본인인 것. 꿀잼유잼팝콘각을 위해 목숨걸고 내달리지만 비윤리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척이나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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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주인공을 향해 일단 직진하는 남자 주인공들의 행태에 휘말리는 일반인들을 위해(여주인공 역시 사실 이쪽에 속하기도 하고) 몸을 내던지는 모습이 어지간한 영웅 저리가라다. 그래서, 결론? 재밌으니까 한번 봐보시라구. <구경하는 들러리양>. 재미를 위해 남자주인공 스포일러는 안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재미있는 웹툰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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