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직도 읽지 않은 당신이 부러워 <야화첩>

심지하 | 2020-02-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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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읽지 않은 당신이 부러워 <야화첩>

아직 야화첩을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정말 너무 부럽다. 처음 읽었던 그 때처럼 다시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읽고 싶은 그 BL만화, 야화첩. 물론 다시 읽어도 재미있고, 정주행을 몇번이나 해도 아깝지 않은 작품이긴 하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그러니까 같이 읽자, 야화첩.


1. 자고로 갓 쓴 양반 싫어하는 여자가 드물더라. 거기에 잘난 작화가 더해지면 금상첨화.

BL물 좀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난 그 작품, <야화첩>. 제목과 썸네일에서 느껴지듯 무려 조선시대 BL 되시겠다. 물론 조선시대 BL물이 드문 것은 아니다. 상투와 갓, 멋들어진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잘생긴 양반 나으리는 BL만화는 물론이요 온갖 사극, 순정만화에서 뭇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고전 요소였다. 하지만 그것만이 야화첩의 매력이라고 하자니 어딘지 부족하다. 대체 무슨 연유로 이렇게 인기몰이를 하는 걸까. 국내 팬들에게만 인기를 끄는 것도 아니고, 해외 독자들마저 열광하는 걸 보면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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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화첩의 매력 중 첫째를 따지자면 당연 고퀄리티 그림체다. 붓으로 그린듯한 선이며 색채는 물론이요 BL물의 미덕인 주인 공&수의 얼굴 역시 끝내준다. 이런 고퀄리티 연재작에서 으레 따라붙는 '장기 연재로 인한 작화 붕괴' 역시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종종 시대물에서 나타나는 '모두 비슷한 복장이라 알아보기 힘들어요' 또한 보이지 않는다. 성인 BL물답게 각 캐릭터의 신체 라인 묘사도 매우 훌륭하다. 작화만 믿고 본다 해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인 <야화첩>.

2. 작화만 좋으면 그게 웹툰이냐, 일러스트집이지.
- 그런 의미에서 야화첩은 웹툰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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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옛날 고전 용어인 야오이(야마나시(やまなし, 주제 없음)·오치나시(おちなし, 결말 없음)·이미나시(いみなし, 의미 없음))를 위시한 기떡떡떡, 혹은 떡떡떡떡이라 불리우는 BL만화가 없는 건 아니다. 본업에 충실한 성인만화를 더러 나쁘다 좋다 나눌 생각은 없다. 다만 유료 연재 성인 만화의 미덕이 결제를 유도하는 씬이라면, 결제를 유도하는 씬과 씬 사이를 잇는 스토리의 정도에 따라 만화의 퀄리티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이야기 아닐까.

야화첩의 시작은 이렇다. 장소 불문 밤낮 가리지 않고 남색을 밝히는 희대의 개망나니 주인'공', 윤씨 가문 장자 윤승호는 남색 춘화집에 푹 빠져 춘화가를 찾아 나선다. 윤승호가 푹 빠진 춘화집을 그린 주인'수' '백나겸'. 백나겸을 찾아낸 윤승호는 백나겸에게 '나의 처소에서 먹고 살며 나를 위한 춘화를 그리거라'라고 하는데……. 제 마음을 픽한 존잘님을 가둬놓고 먹여주고 재워주며 그림을 뽑아내겠단 이야기다. 문제가 있다면 윤승호가 하는 것을 보고 그려야 한다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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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부터 칼로 사람을 죽이질 않나, 성희롱과 납치는 물론이요 시원스레 알몸과 기타 등등(!!)을 까주는 망나니 주인공 윤승호. 1화부터 그렁그렁 우는 얼굴로 독자들 마음을 사로잡은 춘화 존잘 백나겸. 

아, 이거 어디서 많이 먹어 본 맛이다! 아는 맛이라 놓을 수 없는 그 맛이다! 조선시대 춘화라는 가슴 뛰는 소재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존잘님께 연성을 뽑아내겠노라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양새에 BL좀 잘 아는 사람들의 입맛을 돋구는 광공키워드까지. (현대물이었다면 냉장고에 에비앙이 가득했겠지!)

이 녀석들, 누가 봐도 이 둘이 커플이 되겠군. 내가 이런 패턴을 999개 쯤 읽었는 데 나중엔 둘이 서로 죽고 못사는 관계가 될 걸. 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는 맛이라서 더 놓지 못하는 맛집이라 그런 것일까. 망나니 주인공의 천방지축(!) 춘화 제작기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두근거리는 관계 진행도때문일까. 

사실 야화첩의 스토리는 무척 단순해보인다.
너, 내 춘화집을 그려라! / 히이이익!!!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줄여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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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에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괄호) 서브 주인공들은 물론이요 역시나 구관이 명관이라고 어디서 본 듯한 광공인듯 다정공인듯 남들에겐 미치광이 패악질 난봉꾼인 주제에 주인수에게는 역시 미치광이인듯 하지만 어딘지 다정한 손길을 보이는 윤승호, '하기 싫어요 안 할 거에요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라는 클리셰 대사를 줄줄 뱉지만 할 때는 잘 하는^^ 백나겸을 보다 보면 도무지 쉽게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정신 차리고 보니 최신 화까지 결제된 것은 물론이요 왜 다음 편이 없는 지를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윤승호에게 아주 조금 공감한다. 존잘님, 왜 다음 편이 없냐고요.) 오타쿠적 맥락에서 읽다 보면 그래도 윤승호...할 땐 다정한 남자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음, 역시 아니네! 라며 고개를 젓게 만드는 작가님의 밀당이 오늘도 독자들을 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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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맛, 아는 맛 하게 되는 단짠 클리셰 조합들. 아, 어디서 많이 좀 본 대산데, 너는 아마 그 말을 몇편 뒤에 뒤집을 것이다. 아, 어디서 좀 본 상황인데, 너는 네 말대로 될 것이다. 하고 흐뭇한 얼굴로 '알면서도 그 장면이 보고 싶어' 스크롤을 내리고 결제를 하게 만드는 게 바로 작가의 능력 아닐까? 

단순 주인공뿐만 아니라 서브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 얘 이런 역할인가? 아, 얘는 그런 역할이겠구나. 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한다. 단순히 씬을 기대해서 다음편을 결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는 맛을 모아 '잘 조형된' 캐릭터들의 향후가 기대되어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님, 나겸이 행복해지는 것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