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 사람을 침범한다, <침범>

나예빈 | 2020-10-19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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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기억 속에 있는 어린 시절에는 어떤 것들을 하고 놀았나요?
스마트 기기가 많이 발전한 지금의 어린이들과 과거의 어린이들은 사뭇 다른 놀이를 하며 지냈습니다. 지금은 모여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각자 집에서 태블릿 피씨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온라인상에 모여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죠. 때로는 재미있는 효과를 준 영상 같은 것들을 찍어 공유하기도 합니다.
오프라인상에서 논다고 해도 놀이터로 직접 나가 몸으로 뛰어놀기보다는 슬라임같이 새로운 도구를 이용한 것들이 많을 것이고요. 제 기억 속에 어린 시절은 놀이터와 관련된 것들이 많습니다. 모래를 신발 속에 담아 놀던 친구들도 있었고 그네가 상공 위로 오르자 뛰어내려 누가 더 멀리 나가나 겨루기도 했었죠. 때로는 개미나 잠자리를 잡아 괴롭히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잠자리 날개를 떼어서 무엇이 웃긴 것인지 웃음을 터트리던 친구들. 과연 우리는 그러한 행동들을 두고 보기만 해도 괜찮은 것일까요? 어렸을 적에 잘못 쌓아 올린 감수성은 커서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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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여자. 사람 한 명 없는 어두운 곳이 무섭지도 않은지 자유롭게 물살을 가르고 있습니다. 사방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집중해서 보이며 이곳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혹, 무언가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게 되죠. 그 예상이 맞았을까요. 여자는 자유롭게 얼마나 나가지 못해 물속에서 고통스럽게 버둥거립니다. 움직일 수가 없다고 놀람과 동시에 물 밑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죠. 바로 그 정체는 피입니다. 여자는 살려달라는 말을 채 뱉지 못하는데 그런 여자를 누군가 바라보고 있습니다. 바로, 여자의 “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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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여자. 꿈은 무의식이 나타나 하나의 연극을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수영장 속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던 피가 허상은 아니었는지 꿈에서 깨어난 여자는 현실에서도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피의 근원지는 벌어진 허벅지 상처. 대체 잠을 어떻게 자면 허벅지에 상처가 나는 것일까요. 그때였습니다. 슈캉, 슈캉.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이 방 안 가득 차오릅니다. 소름 돋는 소리의 시작을 따라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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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자의 딸. 소현이였습니다. 소현이가 가위로 누군가를 위험한 것은 여자의 허벅지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소현이는 다른 사람들한테도 공격성을 드러냈습니다. 같은 유치원을 다니는 친구들에게 가위의 날을 가져다 댄 적도 있었죠. 가위를 높게 쳐들어 친구에게 내려찍으려는 순간. 다행히도 선생님이 일이 터지기 전에 먼저 발견해 아이의 행동을 저지하게 되었습니다. 가까스로 친구가 다치지 않았기에 다행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정말 다행인 상황이 맞을까요. 선생님은 엄마를 불러 더는 유치원에 함께 다니는 것은 무리라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사고 아닌 사고가 한번이 아니었거든요. 여자는 결국 아이를 데리고 나옵니다. 이런 일 때문에 유치원을 옮긴 것도 처음은 아닙니다. 여자가 벌어진 일들을 설명하고 아이를 잘 타이르려고 하지만 오히려 소리를 지르는 아이. 아이는 쉽사리 달래지지조차 않습니다. 왠지 여자 혼자 해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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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던 것은 근래의 일이 아닙니다. 여자는 오래전부터 아이에게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고 남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죠.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아주 완벽히 냉랭했습니다. 원래 아이들은 다 그런 식으로 뛰어놀면서 자란다. 속 편한 소리만 늘어놓은 것이죠. 종일 붙어 지내며 아이와 떨어질 시간도 없는 여자보다 잘 알리도 없으면서 귀여운데 대체 너는 왜 그러냐는 핀잔만 늘어놓았습니다. 여자의 속에 답답함이 차올라 격해진 감정으로 일들을 토해내도 남자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무표정으로 여자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죠.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대체 왜 여자가 그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어린 시절의 감수성.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아빠와 지쳐버린 엄마. 제대로된 감수성이 생기기는 어려워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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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소현이가 친구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 하는 일이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는 결국 실소를 터트리며 여자의 어깨를 두드립니다. ‘그래, 그래. 소현이는 나쁘고 네가 맞아.’ 이것이 한 아이의 남편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내린 결론입니다. 여자는 이렇게 정서적인 불안을 가진 아이와 집안에 대해 무관심함을 넘어서 언어폭력을 일삼는 남편 사이에서 모든 것을 다 해야만 했습니다. 그 많은 것을 해결하려 하다 보면 자신은 늘 뒷전이었겠죠.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여자. 남편과 갈라서는 편을 선택합니다. 그건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혼자보다 둘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여자는 자신이라도 마음을 강하게 먹고 소현이의 잘못된 길을 바로잡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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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되기란 어렵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있어서 쉬운 일은 없겠지만 자식이라는 것이 특히나 그렇겠죠. 여자는 유치원에 나갈 수 없는 소현이를 혼자 키워내려고 애를 씁니다. 더는 누구에게든 맡길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여자는 남편과 갈라선 뒤에 혼자 아이를 키우며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전공인 수영을 살렸습니다. 수영장 관계자는 여자를 뽑지 않으려고 했죠. 여자가 능력이 없어서는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가진 엄마라는 이유 때문. 관계자는 그동안 ‘애 핑계’ 대며 수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선생님들을 많이 봐 아이 가진 엄마는 잘 뽑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회는 이렇게 조금씩, 이 모녀가, 특히 여자가 서 있을 수 있는 자리를 빼앗아갑니다. 신문지 위에 서서 레벨이 올라갈수록 한 면씩 접어 가는 게임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접어 나가다 보면 결국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없고 추락을 하겠죠. 그러면 우리는,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할까요? 사회는 쉽게 가정사를 침범하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는 사라지죠. ‘집 안 문제’라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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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여자는 소현이를, 자신의 딸을 두려워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누구보다 믿어주고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제는 믿을 수도, 스스로가 지켜줄 수도 없죠. 잠자리에 들면 소현이가 다시 날카로운 무언가를 들고 자신을 해할 것 같아서 잠에 제대로 들지 못합니다. 근래에 벌어진 일들이 많아 제대로 피로를 풀지 못했던 상황에서 더해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고통에 휩싸이던 여자는 자신을 몰아세우는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결국 집안에 흉기가 될 수 있는 것이란 모든 것들을 찬장에 올려놓고 테이프로 봉해두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정신을 잃고 두려움에 휩싸인 자신 모습에 다시금 무너진 여자. 여자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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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범>은 아무렇지 않게 한 사람, 한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면서도 정작 도움을 구할 때는 개인사라는 이유를 대며 도망치는 사회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자는 안정을 되찾을 방법을 구할 수 있을까요. 가볍게 만은 볼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꼭 보아야 하는 이야기. <침범>을 네이버 웹툰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