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중의 프랑스 만화 작가 시위와 파업

윤보경 | 2020-02-07 10:00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중의 프랑스 만화 작가 시위와 파업


윤보경




2020, 올해의 앙굴렘 국제만화축제는 예년 축제들과 비교해 분위기가 조금 더 달아올라 있었다. 만화의 해로 지정된 2020년에 개최된 만화 축제라는 이유, 또한 1974년 축제가 시작된 이래 대통령 공식 방문이 두 번째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경우는 1985년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방문). 축제가 열렸던 나흘 동안의 날씨는 계속 나빴지만, 높은 주목과 흥행으로 그 성과는 성공적이라 평가된다. 다양한 전시장에는 많은 수의 관람객이 길게 줄을 이었고, 출판사들의 책 판매 수익도 기록적이었다. 아시아 만화, 특히 일본 만화 작품을 다루는 망가 시티관의 방문객 수도 작년에 비해 두 배가 늘었다.

 

<이미지 1. 2020년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을 방문한 프랑스 대통령>

▲<이미지 1. 2020년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을 방문한 프랑스 대통령>

 

하지만 속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축제를 둘러싼 다양한 면들이 다시 보이게 된다. 프랑스에는 작년 말부터 거세진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위, 파업 등이 작고 크게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과 특별한 기회(만화의 해)는 만화 작가들을 더욱 연대하게 했다. 그들의 연대는 아래와 같은 목소리로 모아졌다. “문화부에서 지정한 2020년 만화의 해 전시, 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불안정한 작업 여건, 퇴근이나 주말도 없는 긴 노동 시간,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원고료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가들은 보이지 않는가? 작가 없이는 만화도 없다!” 그 동안에도 대다수 작가들이 불가피하게 겪고 있는 노동 악조건에 대한 항의와 개선 요청 등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부, 출판사, 책 배급처나 서점 등 만화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각계의 노력이나, 개선된 부분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작가들은 만화의 해를 맞아 아예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연대하고 항의하기로 했다.  


작가 없이는 당신들이 읽을 만화도 없다!” 작가들의 대규모 시위는 에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의 방문이 있었던 축제 첫 날, 목요일이 가장 뜨거웠다. 앙굴렘 시청 앞에 집결한 작가들과 작가 노동조합 등 시위대의 항의로 대통령은 시청 앞에서 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연설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대통령 경호에는 수많은 경찰과 군인 등이 동원되었고 때로는 관람객의 동선을 통제하거나 건물과 보행로 사용을 금하기도 했다.

 


<이미지 2. 작가들의 시위 : 작가 없이 더 이상 만화는 없다>

▲<이미지 2. 작가들의 시위 : 작가 없이 더 이상 만화는 없다>



<이미지 3. 작가들의 시위 : 파업 중인 예술>

▲<이미지 3. 작가들의 시위 : 파업 중인 예술>


시위를 뒤로하고, 대통령은 만화 관계자들과 점심을 함께 했다. 만화 기관의 대표, 축제 운영회 관계자와 몇몇 선택된 작가들이 참석했다. 동석했던 한 작가가 대통령에게 선물한 티셔츠와 그 티셔츠를 받은 대통령의 태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찍힌 사진 등 이 상황을 둘러싼 모든 요소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프랑스의 모든 채널에서 계속 뉴스로 다룰 정도로 (만화 축제보다도 그 상황을 더 주목했을 정도로) 커다란 논쟁을 불러왔다.


2018년의 노란 조끼 시위와 2019년의 연금개혁반대 시위 등 전부터 프랑스에서는 집회와 시위가 잦았다.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LBD (Lanceur de Balle de Défense /방어를 위한 총알 발사 무기)는 사람의 머리를 피해서 조준되어야 하지만 경찰은 충분한 주의 없이 시위 참가자들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발사했고, 이를 통해 많은 이들이 부상을 당했다 (피해자 수 : 2016 1, 2017 3, 2018 25, 2019 15).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얼굴, 특히 눈에 충격을 받아 심한 경우 실명까지 되었다.


진압을 위해 사용된 무기 이름의 약자 LBD가 만화의 약자 BD (Bande dessinée)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LBD BD를 연관 지어 다양한 풍자 작품이 등장했다. 앙굴렘 축제 마스코트와 유명한 만화 캐릭터들을 피 흘리는 다친 눈 한 쪽에 붕대를 감고 분노하고 있는 모습으로 바꾼 작품들이다.

 


<이미지 4. 만화의 해(BD 2020)의 비슷한 단어 약자를 통해 풍자한 LBD 2020 포스터>

▲<이미지 4. 만화의 해(BD 2020)의 비슷한 단어 약자를 통해 풍자한 LBD 2020 포스터>


 

 여기에서 다친 눈 한 쪽은 정부, 경찰의 과잉진압에 희생된 시위자 각각을 상징한다. 이런 뜻을 담고 있는 캐릭터 티셔츠가 만화 작가, (Jul)에 의해 대통령에게 선물된다. 공권력의 강제, 과잉 진압에 항의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캐릭터 티셔츠를 가운데 두고 대통령과 작가는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앙굴렘 축제를 기회로 한 자리에 모인 만화 관련자들, 시위에 참여했던 일반 시민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경찰과 시위 진압대 모두, 두 사람의 태도와 상황이 적절하지 않다며 크게 비판했다. 자리를 빛내고 만화의 진흥을 위해 앙굴렘 축제를 방문을 했다는 대통령의 의도와는 달리, 축제가 끝나고 난 이후까지도 더 큰 주목을 받고 입방아에 오르내린 것은 LBD 티셔츠와 그를 둘러싼 이들의 사진이었다.

 


<이미지 5. 피 흘리는 앙굴렘 축제 마스코트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선물로 건네는 작가, 쥘(Jul)과 전달받는 프랑스 대통령>

▲<이미지 5. 피 흘리는 앙굴렘 축제 마스코트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선물로 건네는 작가, 쥘(Jul)과 전달받는 프랑스 대통령>


 

축제 이튿날 금요일 오후에는 작가들의 파업도 이어졌다. 작가들은 오후 4, 관람객이 제일 많을 시간에 전부터 이미 계획되어 있던 작가 사인회 진행을 취소하거나 거부했다. 사인회장(전시장이나 서점)과 각 출판사 부스 등에서 작가들은 원래 있었던 그 자리를 지켰지만 사인을 위한 펜을 꺾어 둔 채였다.

 


<이미지 6. 사인회 테이블을 가려놓은 검은 천 위에 쓰인 ‘파업 중’이란 안내>

▲<이미지 6. 사인회 테이블을 가려놓은 검은 천 위에 쓰인 ‘파업 중’이란 안내>


 

2020년 만화의 해를 그저 겉보기에 좋은 이벤트로서 소비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복리와 정당한 권리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개선할 수 있는 진짜 만화를 위한 한 해가 되어야 한다는 작가들의 목소리는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한 해 동안 BD 2020가 아니라 LBD 2020 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위의 주장을 지속할 것이라 말한다. 올해 앙굴렘 만화축제에서는 그들이 앞으로 개시할 다양한 행동(시위, 파업과 홍보 등)의 시작을 확인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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