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축제 - 모성을 걸고 싸우는 그녀의 복수극
한국 관객들은 여성이 주인공이든, 남성이 주인공이든 성별에 관계없이 영화 그 자체에 참 관대한 편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독특한 영상미를 자랑하며 시대를 앞서갔다 평가를 받았던 <친절한 금자 씨> 같은 여성 복수극과 최근에 개봉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여성 느와르를 그려낸 <차이나 타운>같은 감각적인 작품이 나오기까지, 여자라서 불편하다는 의견은 많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더 이상 액션 혹은 카리스마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남성들만의 전유물은 아닌듯싶다.
최근 추석 전에 개봉하여 크게 히트를 친 <베테랑> 같은 경우에는 같은 복수지만, 사회적으로 현재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던 것이 천만 흥행 성공의 요인으로 생각된다. 흥행 보증수표 황정민과 여성들의 지지를 받는 유아인의 화려한 캐스팅도 한몫했겠지만 말이다. 이런 사회적인 문제들을 담은 영화들의 최근 계보를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2011년 도가니의 경우 장애 아동들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른 사건을 다루며 사회적인 공분을 사며 개봉 20일 만에 400만이라는 놀라운 관객 수를 기록했다. 이후 2014년 시사 고발식의 실화에 기반을 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영화 카트는 관객 누적수 80만을 힘겹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자에게 베풀고 남의 아픔에 가슴 아파해 주는 것도 결국에는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하여 안타깝게도 이 카트 같은 경우에는 시기를 잘못 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최근 ‘헬 조선’이라는 말까지 등장한 마당에 말이다. 천만 관객을 뛰어넘은 베테랑의 흥행은 사회적인 이슈를 담아내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는 그런 작품들을 관객들이 기다려왔다고 증명이라도 하는 듯 보인다. 비록 내일 당장 바뀌는 것은 없어도 보고 나면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작품 말이다.
오늘 소개할 영화화를 손꼽아 기다리는 작품은 희나리 작가의 <잔인한 축제>다. 이 작품은 한 여성의 복수극을 담고 있다. 여자이기 이전에 그저 딸아이와 오손도손하게 살고 싶어 하는 한 아이의 엄마. 힘들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싶었던 그녀의 믿음이 철저하게 무너지며 복수의 칼날을 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하루하루 정직하게 살아가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녀의 모성에 기반을 둔 복수심은 잘 만들면 한국판 <테이큰> 같은 작품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애 엄마라고는 보기 힘든 아가씨 같은 몸매와 얼굴을 지닌 주인공 은수. 그녀는 살인 청부를 지시 받고 일을 처리한다. 총소리와 피.. 이 모든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되뇌는 평범한 여자였던 그녀. 해가 지기 전에 그녀는 네 사람을 더 죽여야만 한다. 배달, 대리운전, 페인트, 도배까지 안 해본 일 없이 억척스럽게 살아온 은수. 5년 전 그녀는 분식집을 운영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최근은 잠잠해진듯하지만 언제나 도마 위의 대상인 ‘갑’질하는 개념 없는 아줌마를 물리쳐주며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던 주영의 호감을 사게 되며 가까워지게 된 둘. 의지할 사람이 없었던 그녀는 주영에게 정을 주며 두 사람의 관계는 해를 거듭할수록 돈독해진다. 몇 년 뒤 그녀는 운 좋게 횟집을 하나 인수하게 된다. 선천적으로 손에 칼을 잡고 살아있는 생물을 죽이는 것이 적성에 맞았던 그녀는 이제야 힘든 인생은 끝나고 밝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희망했다. 하지만 그녀가 믿었던 사람들은 그녀를 하나둘 배신하며 그녀는 철저히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게 된 그녀는 이제 그녀의 손으로 이 모든 것을 끝내려 한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사람이라면 살면서 누구나 겪는 크고 작은 배신 섹슈얼한 요소까지 적절하게 가미가 되어있어 작품 자체도 하나의 잘 짜인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최근 영화사가 흥행에 많은 신경을 쏟으면서 대중들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이 <잔인한 축제>는 너무 난해하지도, 가볍지도 않으며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까지 겸비하고 있어 시기를 잘못 타고 나올 걱정도, 관객들의 입맛 걱정을 할 걱정도 없어 보인다. 더더군다나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말이다. 흡입력 강한 희나리 작가의 <잔인한 축제>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영화가 끝나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가 되며, 영상이 끝나고 나면 은수의 복수에 대한 여운을 관객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겨줄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