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엄마 됨'은 왜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하는가 - 웹툰 <나는 엄마다>

조경숙 | 2019-07-12 07:54
"키친드링커", 여성 주부들의 알코올 중독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주부들을 '여성'으로 한정하는 것이나, '키친'이라는 장소가 내포한 의미 등이 성차별적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이 단어가 직시하고 있는 현상이 무엇인지는 명확해 보인다. 이 단어를 처음 본 건 웹툰 <나는 엄마다>에서였다. '순두부'는 바쁜 남편을 대신에 집에 홀로 남겨져 고된 돌봄-가사노동을 떠맡는 시기에 한 두 잔씩의 술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다 자신을 '키친드링커'로 인식하게 된다. 맥주가 다 떨어진 어느 날, 냉장고를 급히 뒤져 '비상용' 소주를 찾는 자신을 직면하면서부터다. (<180화>, <181화>)

웹툰에서는 '순두부'가 술을 찾은 이유를 "값싸고 빠르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서술한다. 오롯이 혼자 부담해야 하는 두 아들의 육아와 가소노동 속에서 '순두부'에게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최소한의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을 벗어나리라 다짐하지만, 스트레스가 주어지는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았기에 이번에 순두부는 게임을 통해 '중독 돌려막기'를 한다. 웹툰은 이를 맥주캔 대신 게임기를 들었다며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고립된 상황과 스트레스를 풀길 없는 막막함이 전달되지 않는 건 아니다.

이렇듯 웹툰 <나는 엄마다>는 기본적으로 개그를 가미한 일상툰이지만, 읽다 보면 어딘가 마음이 시큰거린다. 애초에 <나는 엄마다>의 순두부 작가는 웹툰 <나는 엄마다>의 탄생에 대해 "잠든 아이들 옆에서 궁상맞게 엎드려 A4용지에 모나미 볼펜으로 엄마라는 존재는 우주의 먼지보다 못하다는 하소연을 만화로 그린"(《지금, 만화》 71쪽)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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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다>의 소개 이미지(출처: 다음웹툰)


<나는 엄마다>의 순두부는 웹툰 제목에서부터 '엄마'의 정체성을 표방하지만, 이 웹툰을 따라가다보면 이 제목이 향하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외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엄마니까 잘해야 해."가 아니라, "이렇게 서투른 나도 엄마야,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투로, '나는 엄마다'는 오히려 '엄마'라는 (사회적) 정체성에 도전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웹툰의 1화는 순두부의 패션 스타일을 다루고, 2화는 순두부가 좋아하는 가수와 만화 등 순두부만의 취향을 다룬다. 기본적으로는 아이와 남편이 함께 하는 일상이 내러티브의 중심이긴 하지만, 이 일상 속에서 가장 주요한 플롯은 '엄마'로서와 '나'로서의 순두부가 격투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된 '하소연'은, 단지 육아가 힘들다는 포효가 아니라, 나를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하던 것들(취향, 스타일, 취미생활 등)을 육아 때문에 포기하게 되면서 맞이하게 되는 정체성의 위기에서 발한다. 

‘엄마 됨’은 왜 정체성의 위기로까지 치닫는 걸까. 기본적으로 사회가 ‘엄마’에게 요구하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엄마 됨’은 단지 돌보아야 하는 이가 생겼다는 상태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유치원/어린이집에 아이를 하원 시킬 때의 복장(린넨 옷과 뷔스티에 원피스)부터 태슬 달린 샌들까지 순두부는 ‘편하면서’ ‘후줄근하지 않은’ 옷을 고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119화>) 같은 반 엄마들의 모임에서도, 엄마들이 제각기 나누는 이야기는 ‘어색하고 의미 없지만 끊임없이 늘어’진다.(<93화>) 수다의 핵심은 정보 교류도, 단순 친목도 아니다. 그들은 ‘엄마’로서 불러모여, 자신의 아이가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자녀를 위한 ‘엄마’로서 담소를 나눈다. 이 자리에서 각자의 취향이나 취미가 다루어지지 않는 건 당연하면서도 흥미로운 포착 지점이다. 이들이 ‘엄마’로서 모일 때, 그 자리에서 ‘섹스’까지 언급될지언정 자신이 좋아하는 혼술/외국드라마/락큰롤 가수는 화두로 절대 꺼낼 수 없다는 건, ‘엄마’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가 이미 암묵적으로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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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다> 119화 중


이같은 포인트는 ‘소녀’ 순두부와 ‘아줌마’ 순두부를 비교한 에피소드(<75화>)에서도 도드라진다. 아줌마 순두부의 소지품에서는 물티슈, 아이가 주운 솔방울 등이지만, 소녀 순두부의 소지품은 화장품과 이어폰, 거울 등이다. 소녀 순두부는 누군가 말을 걸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했지만, 아줌마 순두부는 가게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도 소신 있게 답변한다. 친구들과의 ‘섹드립’도 마찬가지다. 이런 변화가 순두부 자신으로서는 즐겁고 신난다고 표현되고 있지만, 이 변화 속에서도 ‘엄마’ 또는 ‘아줌마’라는 스테레오 타입을 발견하게 된다. 애 엄마인 여자는 가사노동, 억척스러움, 당당함 등의 속성을 기반으로 할 것을, 다시 말해 이전에 요구되던 ‘여성스러움’과 확연하게 거리 둘 것이 (사회적으로) 요구된다.

‘세상에는 세 가지 성이 있다. 남자, 여자, 아줌마.’ 이 악질적인 농담에도 유효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남자는 남자와 아저씨로 가르지 않는데 여자는 여자와 아줌마, 즉 미혼과 기혼을 분리한다는 점이다. 여성이 미혼/기혼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곧 젠더와 연관된다는 이 말은, 각각에게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성적 규범이 다르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엄마다>는 ‘엄마’라는 역할/규범이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나는 엄마다>의 순두부는 ‘정치와 종교만큼은 다루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작품을 그리면 그릴수록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고 엄마를 논의하기가 어려워졌다고 서술하며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4년이 지난 지금 종교와 정치를 넘어 성차별, 독박 육아, 비혼, ‘맘충’ 등 피해야 할 카테고리가 되레 늘었다. 혐오가 세상에 만연해지고 그 중심에 결혼, 출산, 육아가 있다 보니 그릴 게 없다. 미혼의 입장에서 그렸다면 넘어갔을 소재도 엄마의 입장에서 그리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지금, 만화》, 72쪽)

순두부 작가의 이 글 제목은 <노키즈존 시대에 육아 만화를 그린다는 것>이다. 이만큼 명확하게 자신의 입지를 보여주는 문장이 또 있을까. 물론 이 문장은 미혼과 기혼 여성 중 어느 쪽이 더 피곤한 삶을 사는지 겨루자는 게 아니다. 다만 '엄마 됨'이 개개인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때, 그것이 어째서 '아빠 됨'과 다르게 작동하는지, '엄마'를 기점으로 가르는 미/기혼의 구분이 어떤 욕망으로부터 작동하는지를 명확히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엄마다>는 여전히 중요한 텍스트다. 사회적인 문제를 직접 말하지 않을 뿐, "나는 엄마"인 모습 속에서 이미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