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몽환적인, 흡혈가문의 비밀 : 『양의 노래』

관리자 | 2017-10-17 11:26

몽환적인, 흡혈가문의 비밀 : 『양의 노래』

몽환적인, 흡혈가문의 비밀 : 『양의 노래』

『양의 노래』 |  토우메 케이 지음  |  1996 – 2002  |  전 7권 완결


 


평범한 삶에 집착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불행의 덫에 빠져버리곤 한다. 사람들 틈에 잘 섞일 수도 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수도 없는 흡혈귀라면 원하는 삶을 얻기란 더욱 쉽지 않다.  토우메 케이의 『양의 노래』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집안에 내려오는 유전병에 의해 흡혈을 할 수밖에 없는 몸을 지닌 치즈나와 카즈나는 분명히 현실에 발을 대고 있지만, 자신의 존재가 때때로 환영처럼 느껴지는 자들이다.


 


몽환적인, 흡혈가문의 비밀 : 『양의 노래』



운명을 자각하는 순간


토우메 케이는 그를 지지하는 팬에게조차 악명이 높은 작가다. 수시로 연재중단과 연재재개를 반복하며 완결을 제대로 짓지 않거나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려야 완결된 작품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특유의 거칠지만 몽환적인 분위기의 작화와 이야기에 끌려 결국 들여다 볼 수밖에 없는 힘을 지닌 드문 작가이기도 하다. 나카하라 츄야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양의 노래』는 연재중단, 연재처 변경 등의 악수를 겪으면서도 끝내 완결을 낸 작품이다. 탄탄한 이야기, 아름다운 작화로 토우메 케이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흑발의 신비로운 미소녀 역시 등장한다.


제목이 주는 느낌과는 다르게 『양의 노래』는 흡혈귀에서 모티브를 얻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가문에 전해져 오는 유전병 때문에 피를 보면 흥분상태가 되고 결국 사람의 피를 흡혈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등장한다. 이런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난 자들은 다카시로 가문의 아이들인 치즈나와 카즈나 남매다. 치즈나가 누나, 카즈나가 동생이지만 둘은 어렸을 적 3년을 제외하고는 따로 살아왔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엄마가 죽고 나서 아버지가 카즈나를 친구네 집에 맡겼기 때문이다. 카즈나는 어느 날 자신의 가족들을 떠올리며 옛집에 도착하고 거기서 자신의 누나인 치즈나를 만난다. 왜 자신을 버렸냐고 따져 묻는 카즈나에게 치즈나는 ‘너라도 평범하게 살길 바란 아빠의 배려’라며, ‘다카시로 가문은 흡혈귀’라는 모호한 말을 남긴다.


치즈나의 말을 듣고 나서야 카즈나는 최근 자신의 몸에 생긴 변화를 점점 더 뚜렷하게 감지하기 시작한다. 동급생 야에가시의 팔에 흐르는 피를 보고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던 일, 피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힘이 풀릴 것 같은 상태, 그것은 피에 대한 갈망이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라고만 생각했던 카즈나의 인생은 그렇게 순식간에 비틀려 전혀 다른 세계로 떨어져버린다.


 


몽환적인, 흡혈가문의 비밀 : 『양의 노래』



구원 없는 세상


『양의 노래』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깊은 절망이 만들어내는 어둠과 섹슈얼함이다. 죽은 어머니를 대신해 마치 아내처럼 아버지 곁을 지켰던 치즈나. 그리고 그런 그녀를 욕망하는 의사인 미나세, 마지막으로 그녀를 어머니, 연인, 누나, 영혼이라 생각하는 카즈나까지.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남자들과 모두 비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근친상간을 연상시키며 시종일관 성적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카즈나 그리고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렇다. 노골적인 육체관계는 키스 정도를 제외하면 등장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환영처럼 실체를 가질 수 없는 치즈나라는 존재는 모두에게 절망과 혼란을 안겨준다. 카즈나 역시 그녀의 매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카즈나는 쉽게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어 괴로워한다. 피를 갈망하는 발작을 멈출 수 있는 약을 치즈나가 건네도 약에 의지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때 치즈나가 자신의 손목을 그어 피를 건넨다. 그녀의 팔목에 흐르는 피를 핥으며 카즈나는 자신의 변화에 순응하고 치즈나와 함께 살기로 한다. 수십 년간 떨어져 지내 남이나 다름없지만, 같은 피와 운명을 지녔기에 둘은 강력한 힘에 이끌리듯 서로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양의 노래』에는 매일 밤 사냥감을 찾아나서는 흡혈귀의 잔혹함도 그들을 없애기 위한 정의감에 가득찬 무리도 없다. 대신 비탄과 애정과 어둠으로 단단히 벽을 쌓은 치즈나와 카즈나의 성이 존재한다.  절망과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피의 냄새와 끈적한 긴장감이 흐르는 세계 속에서, 온전히 서로에게만 의지하면서 그들은 현실과 멀어진다. 『양의 노래』의 매력도 거기에 있다. 구원이라고는 없는 세상에서 만난 나의 또 다른 영혼과 끝도 없는 어둠으로 추락하는 절망과 환희 말이다.



출처: 에이코믹스 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31238
윤태호 작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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