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다매체 시대의 다양성 만화 작가들

한국콘텐츠진흥원 | 2020-04-22 10:40


다매체 시대의
다양성 만화 작가들


독자는 좋아하는 작가에게 직접 펀딩을 하고,
작가는 독자와 1:1로 대화하거나 책을 내고, 강연을 한다.
최근 웹툰 플랫폼들의 집중화, 거대화로 생긴
소통의 갭을 SNS가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글 선우훈, 도움 박미준



스마트폰과 SNS의 시대가 열리면서, 만화계가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치고 있다. 대형 포털과 웹툰 전문 플랫폼 외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가들이 등장하고, 예전부터 활동하던 독립만화 작가들도 다양한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작품을 소개한다. 인스타그램은 ‘인스타툰’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만화에 적합한 SNS로 주목받고 있으며, 트위터는 리트윗을 통한 확산이 쉽다는 장점 때문에 꾸준히 작품 소개의 통로로 이용되는 중이다. 인기를 얻은 작품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 등을 통해 독립출판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최근에는 포스타입, 딜리헙 등 개인이 작품을 연재할 수 있는 전문 플랫폼까지 가세했다. 바야흐로 개인 미디어 독립만화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SNS는 단순히 웹툰 플랫폼 연재를 위한 발판이나, 동인 또는 아마추어 창작 활동의 장에 그치지 않는다. 구독자가 60만 명에 달했던 ‘인스타툰’ <며느라기>는 정식 출간되지 않은 상태에서 2017년 ‘오늘의 우리 만화’를 수상했다. 이후 독립출판된 <며느라기>는 단행본으로 2만 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는데, 가히 한국 만화계에 새로운 유통, 소비 방식이 등장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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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왕생>(글 그림 고사리박사. 딜리헙 연재)은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탄탄한 서사를 구성한다.


SNS 시대 만화의 장르적 특징


SNS 계정에 올라오는 만화엔 개인화된 매력이 있다. 말 그대로 ‘사회적 관계망’이라는 맥락이 작용한다. 개별 작품의 제목보다(SNS 만화 중 상당수는 제목 없이 포스팅된다.) 그 계정을 쓰는 작가에 자연스럽게 이목이 쏠린다. 그래서인지 인기작 중 적지 않은 작품이 작가의 개인적 삶을 담은 일기, 에세이 등 소통형 만화다. 학원물, 로맨스, 판타지 등 장르물이 주류인 상업 만화와 다른 점이다.

SNS 시대의 만화를 관통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다양성이다. 상업 연재 웹툰은 많은 분량과 채색 작업, 빡빡한 연재 주기라는 틀 안에서 생산된다. SNS 만화는 이러한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손 그림 만화를 사진 찍어 연재하는 실험적 형식이나 단순한 흑백 그림도 찾아 볼 수 있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만화, 특수 직업군에 종사하는 작가들이 그리는 전문직 만화, 관심사를 상세히 설명하는 학습 만화, 인기 작품에 대한 2차 창작까지 다양한 장르가 쏟아진다. SNS는 만화 창작자들을 위한 거대한 실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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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수거>(글 그림 란탄. 포스타입 연재)처럼 독특하고 강렬한 연출을 볼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다매체를 통한 장르 다양성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1. 트위터
문자 기반의 트위터는 한 트윗당 올릴 수 있는 최대 이미지 수가 4장으로 적지만, 타래를 만들 수 있어 SNS 중 상대적으로 연재물에 유리한 면이 있다. 이미지를 확대해 보기도 간편해서, 출판 만화처럼 한 페이지를 여러 컷으로 나누는 레이아웃 작품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리트윗 기능으로 짧은 시간에 다수에게 전파가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동인 활동을 하는 유저들이 많아 유명 작품의 2차 창작도 많이 올라온다.

반-바지 작가
‘반(反)물질’을 연상시키는 필명처럼 반-바지 작가는 SF 단편을 연재 하는 작가다. 2016년부터 1, 2주에 한 편씩 꾸준히 연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미래나 판타지 설정의 세계를 과학적 지식의 일부로 태연하게 설명해 나가는 설득력이 상당하다.
몇 페이지 안에 세계의 단면을 드러내는 뛰어난 연출과 배경지식이 짐작되는 대사 덕분이다. 단편 모음집 <슈뢰딩거의 고양희>는 2018년 텀블벅을 통해 목표액의 2,600%인 8,000만 원을 모금하며 성공적으로 출판되었다.
반-바지 작가 트위터

시루 작가
시루 작가의 일상 만화는 출판 만화와 같은 페이지 레이아웃 연출로 가볍고 평범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안정된 기승전결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 3남매와 주변 인물들이 겪는 소소한 일상을 유머를 섞어 그린다. 작가 스스로 ‘꼬물이’라고 부르는 캐릭터들은 매우 단순한 형태지만, 흑백대비와 개성적 표정으로 구분이 쉽게 디자인되어 있다.
귀엽고 공감하기 쉬운 내용과 편안하고 탄탄한 연출로 완성도를 높인 ‘일상툰’이다. 최근에는 출판을 목표로 주 2회 연재 중이며, 포스타입에 후원 페이지를 개설하기도 했다.
시루 작가 트위터

실키 작가
실키 작가의 만화는 공들인 구성과 간결한 작화로 건네는 촌철살인으로 인기를 얻었다. 인물들은 주로 새를 의인화한 홀쭉한 모습으로 등장 하는데, 오래 다듬어진 듯한 날렵한 선과 흑백의 강렬한 대비를 담은 대담한 구성이 전통적 신문 카툰을 연상시킨다. 작가의 SNS에서는 캐릭터가 움직이는 짤막한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도 있다. 배려 없는 말들에 대한 위트 있는 반박을 보여주다가 우울과 무기력에 대한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첫 책인 <나 안 괜찮아>와 후속 작품 모음집인 <하하하이고>는 출간과 동시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실키 작가 트위터

2. 인스타그램
대표적 이미지 기반 SNS인 인스타그램은 게시물당 최대 10장의 이미지를 올릴 수 있게 개편된 후 컷툰 형식의 만화 연재가 가능해졌다. 다만 타래 기능이 없어 1-10컷 사이의 단편 만화 위주다. 이미지를 ‘그리드 뷰’ 형식으로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 관심 가는 작가의 과거 작품을 찾아보기가 수월하다. 사용자들이 소통에 적극적인 플랫폼 특성상 독자에게 요청을 받은 장면을 그려주는 작가들도 있다.

OOO 작가
OOO이라는 필명은 익명성을 노린 듯한 작명으로, 부르는 사람마다 읽는 방법이 다양하다. 작은 도트들로 이뤄진 4컷 만화에는 털이 수북한 동물형 인간들이 등장하여 귀엽고 애틋하며 때로는 으스스하기까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요리를 망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요리의 요정에게 “도와주러 오셨군요!” 하고 외치지만 막상 요정은 식칼을 번뜩이며 “요리의 요정은 요리 재료의 복수를 하러 왔어”라고 말하며 만화가 끝나는 식이다. 단 4컷에 큼직한 폰트지만 능숙하게 각 편에 완결성을 준다. 마지막 컷에 이르러서는 익숙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든다. 저해상도 그림도 기묘하게 어울리며 재미를 만들어낸다. 그간의 4컷 만화를 모아 독립 서점 유어마인드에서 출간된 <무슨 만화>는 YES24 올해의 책 후보 도서에도 올랐다. OOO작가의 만화는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모두에서 볼 수 있다.
OOO 작가 인스타그램 
OOO 작가 트위터

배성태 작가
‘그림비’라는 필명을 써온 배성태 일러스트레이터는 인스타그램에서 40만 팔로워를 가진 인기 있는 작가다. 일러스트 모음집 <구름껴도 맑음>을 출간했고, 웹툰 <집사와 꽁냥꽁냥>을 저스툰에 연재 중이다. 로맨틱한 신혼을 기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연인이자 부부이며 함께 사는 동거인과의 애틋한 순간들을 단 한 컷에 서정적으로 담는다. 일러스트에 등장하는 단 한 문장의 대화로 감정의 온도를 전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인스타그램 기능상 사용자가 올린 그간의 이미지를 격자 구조로 볼 수 있는데, 배성태 작가의 앨범은 그 자체로도 또 다른 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배성태 작가 인스타그램

시치미 작가
일상과 짤막한 생각을 담은 일기 만화를 그린다. 손으로 그린 그림을 오려서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독특한 스타일의 만화다. 종이 위에 연필로 삐뚤빼뚤 그려 색연필로 쓱쓱 칠한 그림들은 어딘지 낯익고 정겹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작가만의 일관된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범한 일상과 개성적인 작업이 맞물려 독특한 감성을 선사한다.
시치미 작가 인스타그램

3. 창작 전문 플랫폼: 텀블벅에서 포스타입, 딜리헙까지
2011년에 등장한 텀블벅은 창작자가 프로젝트를 올려 후원을 요청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독립출판 만화들이 꾸준히 텀블벅을 통해 출간되고 있다. 원고 연재를 진행한 작가들도 있다. 현재 네이버웹툰에 <킬 더 킹>을 연재 중인 마사토끼 작가는 2012년 일정 금액이 모금되면 다음 화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맨 인 더 윈도우>를 기획해 2년간 연재한 바 있다. 수사반장 작가의 <김철수씨 이야기>도 다음웹툰에서 연재 중단 된 후에 펀딩을 통해 연재를 이어나갔다.
2015년 등장한 포스타입은 한발 더 나아가, 블로그에 유료 결제 시스템을 장착했다. 창작자는 포스타입 블로그에 직접 작품을 서비스하거나 후원받을 수 있다. 텀블벅은 목표 금액 미달 시 프로젝트가 취소되므로 후원금에 따른 보상 구조를 신중히 설계해야 하지만, 포스타입은 이런 번거로움 없이 지속적인 창작과 구독을 할 수 있다.
2018년 1월에 등장한 딜리헙은 아예 웹 연재 솔루션을 표방하고 나섰다. 포스타입은 연재용 블로그 외에도 강좌, 아티클, 일러스트 등 다양한 테마를 지원하는 반면, 딜리헙은 기존 웹툰 플랫폼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유사한 화별 리스트를 기본으로 하는 특화 플랫폼이다.

앞서 언급했듯, SNS 만화에는 일정한 제약이 존재한다. 플랫폼별로 최대 이미지 개수나 이미지 열람 방식 등 기능적 차이 때문이다. 긴 화면을 스크롤 해가며 보는 기존 웹툰과 달리 개별 이미지를 배열하는 방식이라 많은 대사를 담기도 어렵다. 반면 창작 전문 플랫폼은 큰 이미지를 쉽게 올릴 수 있고, 열람 형태도 스크롤 또는 페이지 뷰 방식 중 선택 가능하며, 창작물의 수익화가 간편하다. 작품별 회차 목록도 만들 수 있어, 장편 연재에도 적합하다. 이런 창작 전문 플랫폼에서는 동인지 등 2차 창작 활동도 활발하게 일어난다.

란탄 작가
현재 여성 생활 미디어 핀치에서 <화의방향>을 연재 중인 란탄 작가의 포스타입도 주목할 만하다. 인물 ‘성숙’의 성장과 브래지어에 관한 이야기인 <성숙의 지표>를 비롯해 게재된 대여섯 편의 단편작 모두 실험적인 형식미를 갖추었다. 페이지 레이아웃, 칸의 구획과 형태, 효과음과 말풍선의 형태까지 만화의 모든 요소가 거침없이 과감하다. 여성, 노동자, 입시생, 아직 자신의 공간을 갖지 못한 청년 등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다채로운 형식 안에 녹아 있다. 2014년 작
인 <도시의 구멍>부터 2018년의 <관심의 구석>까지 작가의 실험이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 볼 수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란탄 작가 텀블벅

마사토끼 작가
창작 만화를 2006년부터 꾸준히 블로그에 올리며 <만화만 그려서 먹고 살기>를 통해 블로그 광고 유치를 기획하는 등 개인적으로 독립 창작 만화의 길을 개척해왔다. 포스타입에는 앞서 소개한 텀블벅을 통한 연재를 마친 <맨 인 더 윈도우> 외에도 스토리 작가로서 노하우를 그려낸 <만화 스토리 메뉴얼>, 트위터에 4컷씩 게재해온 <트위터 만화> 등을 감상할 수 있다. 플랫폼에 정식 연재되는 만화와 달리 연필 선 스케치로 되어 있다. 완결된 작품을 열람할 수 있고 자유분방한 이야기 구성을 보여준다는 점이 장점이다.
마사토끼 작가 텀블벅

최준혁 작가
<자본주의히어로>, <골렘연성학과> 등을 독립 출판한 최준혁 작가는 흐느적거리는 그림, 구구절절 자세하게 이어지는 대사로 허무한 웃음을 준다. 출판 만화 자체의 문법에 대한 농담 같기도 하다. 공익을 위해 국가에서 돈을 받고 히어로 일을 하는 청년이, 가슴의 지퍼를 내렸더니 후원금이 많이 들어와서 고민하는 사정 같은 것 말이다. 이름은 히어로지만, BL, 히어로물, 판타지 등 장르 자체의 클리셰도 쉽게 이해 가능할 만큼 개그 코드로 자연스럽게 풀어나간다. 최준혁 작가의 작품은 포스 타입과 딜리헙에서 모두 볼 수 있다. 단편 만화는 트위터에도 종종 게시된다.
최준혁 작가 텀블벅 
최준혁 작가 딜리헙


고사리박사 작가
딜리헙의 개인 연재 작품 중 최근 가장 뜨거운 반응을 받고 있는 작품은 단연 고사리박사 작가의 <극락왕생>이다.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2011년 부산의 여고에서 펼쳐지는 여성 서사다. 귀신이 되었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자언과 그를 돕는 도명존자가 기묘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간다. 딜리헙의 작가 인터뷰에서, 고사리박사 작가는 한국의 귀신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며, 장애인 혐오나 여성 혐오가 빠지지 않은 디자인을 찾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품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무섭기보다 그 사연이 궁금해진다. 연재 주기는 3주에 한 번으로 기존 플랫폼보다 휴지기가 긴 편이지만, 출판 만화 같은 밀도의 치밀한 표현과 불교에 대한 탄탄한 배경지식으로 완성되는 세계가 기다림에 보람을 느끼게 한다.
고라시박사 작가 딜리헙


마치며

웹툰 시장은 모바일 서비스의 등장 이래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시장 독과점 사업자의 등장, 중소 신생 플랫폼의 증가, 스튜디오 창작 확대 등 시장 성숙 조짐을 보인다. 개인 작가와 직접 계약하는 일부 플랫폼의 계약 조건이나 연재 조건에 대한 논란도 많았다. 이제 작가들은 그 대안을 SNS에서 찾았다. 독자는 좋아하는 작가에게 직접 펀딩을 하고, 작가는 독자와 1:1로 대화하거나 책을 내고, 강연을 한다. 최근 웹툰 플랫폼들의 집중화, 거대화로 생긴 소통의 갭을 SNS가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결국 유튜브 같은 거대 개인 플랫폼을 정착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기존 플랫폼의 다양성을 증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어떤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 싹이 어떻게 자라날지 흥미롭게 지켜볼 만하다. 


선우훈 | 만화가이자 만화 평론가
다음웹툰에서 <데미지 오버 타임>을 연재했고, 만화 비평 웹진 <유어마나>의 편집장을 역임한 바 있다.

무가지 <지금, 만화>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제공하는 계간만화, 웹툰비평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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