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또 다른 경험 세계의 육아 - <닥터앤닥터 육아일기>

조경숙 | 2020-05-06 11:48
수년 전, 아이를 낳은 한 회사선배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며 어떠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눈 밑이 퀭하던 그 선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루하루가 프로젝트 납기일 같아." 당시 IT회사에 종사하고 있었던 나와 선배에게 프로젝트 납기일이란 24시간 중 최소 20시간을 근무하는 날이었다. 에이 설마 그 정도 일라고요, 하고 내가 웃었지만, 선배는 웃지 않았다. 대답 대신 그는 책상에 기대어 순식간에 잠들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갓 태어난 아이와 단둘이 집을 지키면서 그날의 대화를 수십번이나 곱씹었다. 선배의 비유는 옳았지만, 현실과 다소 다른 점이 있었다. 최소 4시간은 눈붙였던 납기일에 비해 신생아 육아는 2~3시간마다 깨는 탓에 네시간도 채 잘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회사 선배가 "프로젝트 납기일"을 끌어온 건 그의 경험에서 정확한 비유였다. 그처럼, 사람들은 자신 앞에 미지의 사건이 도래했을 때 그것을 자기가 익히 배워왔거나 경험해 온 기존 공식에 맞추어 분석하려고 한다. 분석하고 이해해야만 그 상황을 어떻게든 수용할 에너지와 새로운 해법이 생기기 때문이리라. 그것을 철학적으로 풀자면 인식의 확장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개하고 싶은 건 웹툰 <닥터앤닥터 육아일기>다. 이 웹툰은 공학박사인 '베르'와 의학박사인 '안다'의 경험 틀 안에서의 육아 생활에 대해 그리고 있다. '베르'는 공학도인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육아를 '알파똥'에 비유하는데, 이 '알파똥'은 대체 왜 언제 경보벨이 울리는지 종잡을 수가 없으며 주어진 해법대로 조치해도 매번 다른 결과가 도출되는 기계다. 베르는 다양한 조건들을 실험하면서 적합한 정보들을 수집하며 알파똥의 패턴을 이해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그는 태아 시절의 아이가 어떤 환경에 놓여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 의학 논문들을 찾아 읽으며 신생아의 심정을 가늠하려 하고, 자신의 상황으로 대입시켜 아이의 상황에 공감하고자 한다. 이에 더해 베르의 동료 양육자 '안다'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임신한 기회(?)에 자신이 세운 가설에 자신의 몸을 날려 스스로 증명을 도출하기도 한다. 안다를 지나쳐 간 여러 환자의 경험담을 중심으로 산부인과 정보를 흥미롭게 획득할 수 있는 것도 이 만화의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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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앤닥터 육아일기> (출처: 네이버웹툰)



<닥터앤닥터 육아일기>의 가장 큰 매력은 이공계/의학계 지식세계를 바탕으로 육아생활을 이해하고 분석하려한다는 데에 있다. <유부녀의 탄생>, <아기 낳는 만화>, <어쿠스틱 라이프>, <나는 엄마다> 모두 육아 생활을 중심으로 한 생활툰이지만, <닥터앤닥터 육아일기>처럼 '공학도'의 관점으로 육아를 분석한 만화는 없었다. 물론 여기에 우열이 있는 건 아니다. 아기를 이해하기 위해 논문을 찾아 읽는 베르의 노력은 위에 거론된 만화들과 비교했을 때 질적인 면에서 차별화되는 게 아니라 방법론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또 재미있는 사실은, 서로 다른 방법론과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웹툰들이지만 이 육아 생활툰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의 지향점은 결국 같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 누구 한 사람의 일방적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보다, 양육자와 아이가 모두 행복한 방법/인식을 찾아내려 고군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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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앤닥터 육아일기> 1화 중 (출처: 네이버웹툰)


그러나 지향으로 보았을 때는 비슷한 메시지를 던지더라도, 이 개별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한 건 저마다 다른 경험 세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양육자들의 배경은 당연히 다른 데다 아이들도 성장 속도나 수면 패턴, 성격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들이 만나 빚어내는 생활의 단면은 완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육아웹툰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것은 육아 자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확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에게 육아에 대한 공감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마다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육아 솔루션을 찾는 도움말이 되기 때문이다.

확실히 육아는 매순간이 새로운 고비다. 모든 육아 생활툰에서 '육아 우울증'이 한 번씩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양육자들이 매순간 처하는 어려움에 비해, 육아에 대한 사회적 대우는 매우 각박한 편이다. 자극적인 몇몇 사건들은 양육자 전반을 혐오하는 시선으로 계속해서 회자되는 데에 반해, 우호적이거나 좋은 사례들은 금방 묻히기 십상이다. 육아 생활툰들이 이런 사회적 시선과 꼭 정면으로 대결하는 건 아니더라도, 차차 완화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생활툰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회피하는 생활들도 아주 깊숙한 일면까지 보여준 데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