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녕, 엄마>, 이상적인 관계는 없다

한국콘텐츠진흥원 | 2020-06-10 14:00

<안녕, 엄마>,
이상적인 관계는 없다


엄마가 죽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아직 건네지 못한 인사가 남았다.
 엄마, 안녕!

글 강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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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출간을 위해 김인정 작가가 그린 표지 그림. 
이 작품에서 바다는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바닷물에 젖는 것이 마땅치 않은 
엄마 영선 씨의 발과 대비되는 은영의 발 위치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안녕’과 ‘안녕’에 대한 이야기
재미있는 말이다. 별생각 없이 쓰는 ‘안녕’은, 곱씹을수록 재미있다. 명사로서의 ‘안녕’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을 뜻한다. 군더더기 없이 명확하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 인사를 건넬 때 쓰는 감탄사로서의 ‘안녕’은 다르다. 표준국어사전에는 ‘만나거나 헤어질 때’ 쓰는 감탄사라고 표기되어 있다. 만남과 헤어짐이라니, 완전히 극단의 상황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이 두 상황에서 같은 발음으로 ‘안녕’을 말한다.
웹툰 <안녕, 엄마>는 <사랑스러운 복희씨>로 꽤 많은 팬덤을 가진 김인정 작가의 새 작품이다. 복희씨에게 푹 빠져있던 독자들의 기대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프롤로그 공개 후, 댓글 창에는 <안녕, 엄마>의 ‘안녕’이 ‘Hello’인지 ‘Goodbye’인지에 대한 의견으로 분분했다. 나란히 서서 요리를 하는 엄마와 딸. 그리고 엄마에게 전하는 메시지, ‘안녕, 엄마.’ 이 모녀는 어떤 인사를 건네는 것일까. 


밥 먹었냐는 안부와 진심
“밥 먹었어?” 떨어져 있었던 시간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우리는 안부를 묻기 위해 말한다. 진짜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기 보다는 잘 지냈냐는 말의 ‘비유’적인 표현이다. 물론 아주 우회적인 표현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오래전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어려웠던 시기에는 그 사람의 안위를 파악하기 위해 ‘밥 먹었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밥 먹었냐’는 인사로 서로를 맞이한다.
'밥때가 되었으면 함께 밥을 먹자는 의미로, 밥때가 지났으면 밥을 잘 챙겨 먹었냐고 걱정하는 의미로. 생각하면 참으로 정겨운 인사다. 그런데 엄마의 그것은 다르다. 엄마의 ‘밥 먹었냐’는 질문은 안부를 묻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응” 혹은 “아니”의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짜, 밥을 먹었냐는 것이다. <안녕, 엄마>도 그렇게 시작된다. 엄마와의 전화에 은영이는 “응, 먹었어”라고 답한다. 예상되는 엄마의 물음은 “밥 먹었어?”. 엄마는 늘 진짜 밥을 먹었는지 궁금해한다(뭘 먹었는지까지도!). 그래서 우리는 그 질문에 소홀해지기도 한다. 골치 아픈 전화를 받는 와중에 엄마의 연락을 무심히 받을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은영’이도 그랬다.
‘안녕’을 둘러싼 의견에 답을 먼저 말하자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고 있다. 은영이는 엄마와 헤어졌다. 엄마의 죽음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전화 통화를 나누었던 엄마는 영정 사진이 되어 돌아왔다. 은영이는 이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런데 은영이는 다시 엄마를 만난다. 만남과 헤어짐이 아닌, 헤어짐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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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두 이야기
엄마가 죽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은영이가 받은 것은 엄마의 일기장이다. 하나뿐인 딸 은영이는 이 일기장을 조심스레 손에 쥔다. ‘자기 물건 건드리는 거 싫어할 텐데.’ 은영이는 엄마를 보내고서도 엄마에게 다가서기 힘들어한다. 잡다한 메모가 적힌 일기장을 받아들고도 생각한다. ‘이런 걸 보는 건 제일 싫어했겠지.’ 엄마가 돌아온 것은 그때부터였다. 일기장과 함께 돌아온 엄마. 엄마는 ‘죽음’이라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은영이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낸다. 은영이는 엄마의 일기장을 단숨에 읽지 못하고 한 장씩, 천, 천, 히, 넘긴다. ‘냉혈한’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차가웠던 엄마와 서먹할 수밖에 없었던 은영이는 일기장을 통해 엄마에 대해 알아갈 수 있을까. 엄마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은영이지만, 엄마를 찾아가는 와중에 은영이는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마주한다. 엄마, 그리고 딸의 이야기.


이상적인 관계?
혼자 남은 은영이는 엄마의 기억을 하나씩 좇는다. 그 과정에서 은영이는 몰랐던 엄마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존재도 몰랐던 엄마의 남자친구, 삶의 괴로움, 흔적. 엄마가 언젠가 꼭 가고 싶었다던 바닷가를 찾은 은영이는 장례식장에서부터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마음껏 엄마를 그리워하고 싶었던 것일까. 서툰 관계의 끝에서 은영이의 마음이 그렇게 쏟아진다.
그래서인지 이야기 초반엔 엄마의 흔적을 좇았다면 이후부터는 은영이의 ‘속마음’들이 드러난다. 엄마에게 스스럼없이 애정표현을 하는 희선이를 보며 은영이는 생각했다. ‘이상적인 관계.’ 힘들 때 엄마가 보고 싶다는 희선이에게 은영이는 부러움을 느꼈다. 힘들 때 엄마가 보고 싶다는 감정을 그리워한 것이다. 하지만 은영이는 이제 생각한다. ‘엄마도 힘들 때 내가 보고 싶었을까?’ 사실 희선이도 엄마와의 관계가 쉽지 않다. 은영이처럼 서먹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너무’ 의존하다 보니 적당한 거리가 없다. 성인이 되어 떠나가려는 희선이에게 서운한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서 답답함을 느끼는 희선이.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말을 은영이에게 털어놓은 희선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세상에 이상적인 관계가 있을까? 


나를 만나다
일기의 마지막 장에 가까워질수록 엄마는 흐릿해진다. 선명하던 엄마는 말없이 사라지기 일쑤다. 은영이는 알고 있다. 이제 곧 엄마가 사라지리라는 것을. 은영이는 처음부터 엄마가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무 깊은 후회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은영이가 만들어 낸 자기방어와 같은 환상이라는 것을 말이다. 은영이는 엄마의 기억을 좇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받았던 상처와 미움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와 꼭 닮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엄마를 이해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내가 안고 가야 할 상처와 기억, 그리고 그리움이다. 이제 엄마를 보내주어야 한다. 나를 만나고 “안녕”, 엄마를 보내며 인사한다.
“엄마, 안녕.” 

강정화 | 만화비평가. 현재 고려대학교와 경희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근대의 문
학과 미술을 연구하며, 한편으로 재야의 웹덕으로 덕력을 키워왔다. 이만하면 성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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