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동본색>, 특권화된 세상 뒤집어보기

한국콘텐츠진흥원 | 2020-04-29 10:53


<노동본색>, 특권화된
세상 뒤집어보기


건강과 열정만 있다면 누구라도 좋은 직업(육체노동)을 가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출중한 능력만 있다면 왕을 꿈꿀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노동본색>의 세계는 순수하다.


글 조한기



미약한 개인은 사회적 압력에 삶을 압도당하기 쉽다. 이미 구성된 사회 구조가 불합리를 포함한 경우도 많다. 궁핍한 노예부터 위대한 사상가까지 많은 역사적 인물은 그러한 세계에 대해 전복을 꿈꿨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한 번쯤 억압된 무엇인가에 대한 통쾌한 뒤집기를 소망했을지 모른다. 아무리 터무니없다고 해도 상상은 자유니까. 일상에 대한 단절과 위반의 욕망은 인간의 본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바람이 만화로 재현된다면 어떨까? 동시대적인 삶의 비애를 폭로할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눈요깃거리로 전락할 것인가?

전복된 세계 이후에 대한 상상력
웹툰 <노동본색>은 괴멸적인 폭발 사건 이후 전복된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중앙 정부의 기능은 정지되고 국가는 사분오열됐다. 낙관적인 기술지상주의 신화는 무너지고, 첨단 문명은 잔재만 남았다. 불가사의한 힘으로 괴물화된 자연은 인간의 침입을 불허한다. 영토는 좁고 자원은 적다. 문화 향유는 옛말이 되었고 소시민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 없다.
이러한 기술 환경의 퇴보와 물적 토대의 변화는 사회 인식 변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소위 판검사 출신의 상류 계층은 더는 존경받지 못한다. 우대받는 직종은 농사와 막일을 하던 육체노동자다. 피폐해진 세상은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직업의 전성시대가 되었다. 노동의 가치가 역전된 세계에서 주인공 장도리는 최고의 막일꾼 ‘건설왕’이 되기 위해, 그의 친구 최배달은 최고의 택배기사 ‘택배왕’이 되기 위해 좌충우돌한다. 반전된 직업의 귀천은 고정관념을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노동본색>의 전복적 상상력은 지뚱 작가의 전작 <이장본색>의 연장선에 있다. <이장본색>은 농촌에 잠입한 주인공 최고봉이 지역 개발 사업 추진을 위해 마을 이장이 되려는 과정을 그린다. 그런데 이장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들이 ‘초농력’(농사에 관련된 초능력)을 사용 하면서 엘리트였던 최고봉은 무능해진다. 이 황당한 이야기의 배면에는 이촌 향도로 인한 농촌의 무력화와 대기업의 횡포 등 현실 문제가 적시됐다. <노동본색> 역시 고착화된 사회 문제를 유쾌한 어조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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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소년 장도리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노동왕’이 되길 꿈꾼다.


파괴된 <노동본색>의 세계는 문명보다 야생의 질서를 따른다. 고도화 된 법리는 사라지고 적자생존의 원칙이 우선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의 진입장벽은 현실보다 훨씬 낮다. 건강과 열정만 있다면 누구라도 좋은 직업(육체노동)을 가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출중한 능력만 있다면 왕을 꿈꿀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노동본색>의 세계는 순수하다. 만화의 제목이기도 한 노동의 본색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자.
노동은 행동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변화시킨다. 노동에는 응당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문제는 분배의 형평성과 정당성이다. <노동본색>의 세계가 현실을 되짚게 하는 지점이 있다면 노동의 기본원리에 대한 불평등을 꼬집기 때문이다. 적어도 야생의 세계에는 축적을 통한 불평 등의 대물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년만화가 현실의 부조리를 직시할 때
이처럼 ‘계급장 떼고’ 누구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서사는 소년만화의 구조를 연상케 한다. 일본의 유명한 소년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는 이렇게 외쳤다. “나는 해적왕이 될 거야!” <노동본색>의 장도리는 이렇게 패러디한다. “나는 건설왕이 될 거야!” 장도리의 언술에서 엿보이듯이 <노동본색>은 일단 소년만화의 관습에 충실하다. 올곧은 성정의 주인공과 그에 맞서는 악한 라이벌, 궁벽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희망, 비범한 잠재력과 혈통의 비밀, 부조리한 세계의 탄압과 주인공을 돕는 운명적인 조력자, 패배와 좌절을 넘어서는 노력과 성장까지. 세계는 소년이 노력하는 만큼 답을 준다. 조금 진부해 보이는가? 너무 얕잡아 보지는 않길 바란다. 신화의 구조와도 유사한 소년만화의 관습은 우리가 살고 싶은 세계의 전망을 투영한다. 그렇기에 때론 유치해 보이는 소년만화가 놀라운 전율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년만화적인 관습과 정서는 전작보다 진일보한 액션 작화에서도 드러나지만, 독특한 스토리가 그러하듯 연출에서도 단순히 일본 소년만화의 그것을 차용하진 않는다. 일본의 서브컬처 평론가 오쓰카 에이지는 일본의 만화 형식을 영화의 컷을 모방한 ‘칸’의 미학으로 정의한 바 있다. 그런데 <노동본색>의 연출은 그러한 일본 만화와 유다른 호흡과 흐름을 보여준다. 특히 액션 장면에선 ‘칸’의 미학을 벗어난 유장한 연출이 돋보인다. 웹툰에 기반한 한국 만화의 미학적 모색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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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본색> (글 그림 지뚱. 다음웹툰 연재)

불평등이 전복된 시대에도 남아 있는 모순들
하지만 무엇보다 <노동본색>의 스토리텔링이 흥미로운 이유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 일어나는 가치 전도 양상을 거쳐 사유의 지점을 만든다는 것이다. 가치의 유동성에 대한 탐색은 <노동본색>에 잠재된 전복성의 의미를 밝히는 길이기도 하다. <노동본색>의 서사무대(diegesis)는 ‘3차 세계대전에는 어떤 무기로 싸울지 알 수 없지만 4차 세계대전에는 몽둥이와 돌을 들고 싸울 것’이라며 기술 문명의 위험을 경고한 아인슈타인의 예단을 재현하는 듯하다. 다만 앞서 살폈듯 <노동본색>의 세계를 단순히 디스토피아라고 치부하기에는 오묘한 부분들이 존재한다. 아마도 장도리의 할아버지로 추정되는 프롤로그의 노인은 ‘문명의 쇠퇴’와 ‘화폐의 종말’을 되돌아보며 단언한다. ‘지금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말이다. 영웅으로 추앙받는 건설왕 역시 세계가 무너지기 이전에 자신은 폐인 같은 삶을 살았다고 회상한다. 이들의 과거 술회는 우리 사회의 부당한 일면을 비춘다. 실제로 개인의 역량과 사회 기여도에 상관없이 육체노동자에게 향하는 시선과 처우는 얼마나 가혹한가. 세계가 뒤집히고 나서야 이들의 불평등은 역전된다.
그러나 전복된 세계가 진실로 더 좋은 삶을 이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가치 평가의 대상과 기준만 변화했을 뿐 불합리한 위계 구조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장도리의 마을을 점거한 치안국의 왕자는 폭력으로 마을 사람들의 고혈을 짠다. 무능한 기회남은 그런 치안국에 아부하며 호가호위한다. 엘리트가 된 기술직 육체노동자 역시 지위를 이용해 약자를 괴롭힌다. 세계가 아무리 변해도 부조리는 불변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물적 토대의 전복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근본적인 사회 모순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두 사회에서 나타나는 동일한 모순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철학자 지제크의 지적처럼 그것은 우리가 은연 중에 눈 감고 있던 ‘모순’ 그 자체가 아닐까. 이처럼 <노동본색>은 단순한 현실 패러디를 넘어 그 현실을 사유할 여러 실마리를 제시한다. <노동본색>은 아직 미결이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되는 작품이다.
고정관념을 부술 통쾌한 한 방을 고대하며 남은 이야기를 즐겁게 기다리겠다. 



조한기 | 영화 평론가이자 만화 평론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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