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소 웹툰 플랫폼의 강소 만화들

한국콘텐츠진흥원 | 2020-07-08 14:00
중소 웹툰 플랫폼의 강소 만화들

웹툰 시장이 포화라는 말은 결국 중소 규모의 웹툰 플랫폼의 숫자 역시 한계까지 다다랐다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몇몇은 서비스를 종료하기도 했고, 다른 몇몇은 합병을 통해 ‘중소’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앞으로 치고 나가려 단단히 벼르는 중이기도 하다. 

글 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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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웹툰 시장은 포화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보다 능동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 중인 작금의 시류 역시 더는 국내 시장 확장은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포화론’을 일찌감치 인지한 결과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이 선두에 서 있고, 그 뒤를 ‘레진코믹스’, ‘카카오페이지’ 등이 추격하면서 단단히 세를 굳힌 형국이다. 하지만 단지 이들만으로는 현 웹툰 시장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중소 규모의 다양한 웹툰 플랫폼이 후발주자로 속속 뛰어들면서 국내 웹툰 시장은 명실공히 춘추전국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 한 해 동안 웹에서 10회 이상 연재됐거나 종이책으로 출간된 만화를 대상으로 한 ‘2019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의 1차 심사 후보 대상작은 무려 2,500여 작품이 넘는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다채로운 만화가 창작되고 향유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도 남을 만한 수치다. 

유료 웹툰 플랫폼으로 단단히 자리 잡은 ‘투믹스(www.toomics.com)’는 전신인 ‘짬툰’에서 시작해 ‘엠툰’을 인수하면서 세를 늘렸다. 
2015년 문을 연 ‘짬툰’부터 따져도 웹툰 플랫폼으로서는 비교적 후발주자에 속하지만, 현재 작품 수나 인지도 등에 있어서는 대형 포털사이트 못지않은 규모로 성장했다. ‘네이버’나 ‘다음’과는 달리 성인 남성 독자를 대상으로 한 차별화된 작품군으로 우선 대결함으로써 현재는 중소(中小) 플랫폼이라기보다는 강소(強小) 플랫폼의 면면을 가장 잘 드러낸 곳이라 할 만하다. 그중 <루갈>(글 그림 릴매)은 ‘투믹스’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만화 중 하나다. 엘리트 형사 강기범은 권력의 수뇌부까지 쥐락펴락하는 범죄조직 ‘불개미’에게 아내와 딸, 그리고 두 눈까지 잃는다. 여기에 가족을 살해했다는 누명까지 쓴 채 병원에 수감 중, 의문의 편지를 받고 탈출해 실험 단계에 불과하던 불안정한 인공 안구를 이식받는다. 이후 기범은 거대 기업을 자처하는 난공불락의 불개미 조직을 ‘박멸’하기 위해 설립된 비밀 특수조직 ‘루갈’의 멤버로 합류하면서 힘겹게 복수극의 서막을 올린다. 

통속적인 복수 드라마를 뒤트는 건 첫째로 현대 배경의 드라마와 부러 선을 긋는 SF 요소들이다. 기범이 이식받은 인공 안구를 필두로 신체를 강화하는 다양한 장치들과 근접전을 염두에 둔 여러 가공의 무기를 앞세운 액션 장면은 피와 살을 뿌리는 고어한 연출과 세련된 작화로 끊임없이 강렬한 이미지의 산을 쌓아나간다. 여기에 맞서 온갖 범죄의 중심에 서서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불개미 조직을 핍진하게 설계하고, 특히 주요 악역들이 발하는 잔혹한 기운을 섬뜩하게 묘사함으로써 극에 진중함마저 더한다. 물론 경찰 시절 기범의 후배였던 미나가 루갈에서는 막내 기범의 ‘사수’가 되어 펼치는 역전된 관계가 주는 색다른 재미, 선배로서 행하는 문자 그대로의 지옥훈련 역시 흥미롭다. 자칫 지나치게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지점마다 이를 이완하는 루갈 멤버들의 쾌활한 면면 또한 잘 만든 블록버스터로서의 힘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현재 <루갈>은 OCN에서 내년 방영을 목표로 드라마로도 제작 중이다.

2018년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 <심해수>(글 이경탁 그림 노미영)는 월간 연재의 장점을 십분 살린 작품이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작업하는 만큼 세밀한 작화는 물론이고, 작품 내내 여러 번 펼침컷으로 전개되는 액션 퍼포먼스는 비교할 만한 작품을 쉽게 찾을 수 없을 만큼 역동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여기에 마치 공멸을 모색하는 듯 보이는 종말 이후의 이기적인 인간들과, 세대를 넘나들며 사랑받는 소년만화 특유의 상승 정서, 그리고 가족애라는 인류 보편의 서사를 녹여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심해수>는 해수면이 상승해 육지가 사라진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이 몰락한 사이 신세계의 포식자로 등극한 거대 식인괴수 ‘심해수’의 위협으로부터 생존하려는 소년 보타의 모험과 성장을 그린다. 문명이 바다 밑으로 침몰한 종말 이후를 배경 삼은 것만큼이나 때때로 바닥까지 침잠하게 만드는 절망적인 상황은 이 작품의 서사적인 면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동시에 결국 심해수보다 무서운 것은 인간이라는 진리를 촘촘히 더해가면서 이야기는 소년만화와 액션 장르에 뿌리를 둔 채 여러 번 변화무쌍하게 진화한다. 

외식배달 주문 서비스업체인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만들어 화제가 된 ‘만화경(comic.manhwakyung.com)’은 격주간지 형태로 차별화를 꾀했다. 웹툰 플랫폼이지만 마치 새 책이 발간되듯 같은 날 모든 작품을 업로드함으로써 집중도를 높인 것이다. 특히 작가들의 인터뷰를 함께 수록해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환기한 점도 돋보인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난 8월 말 출간된 창간호부터 가장 최근에 출간된 5호까지 총 6권, 각 작품당 최대 6회의 연재분만 공개됐음에도 몇몇 작품은 눈길을 끌기 충분해 보인다. 

<윌슨가의 비밀>(글 그림 MILL2)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저택의 비밀을 파헤치는 미스터리극이다. 손녀 안나는 아버지와 떨어져 홀로 저택에 머물면서 여전히 이곳에 머무는 몇 명의 관리인의 눈을 피해 할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퍼즐 형식으로 전개되는 미스터리에까지 독자를 동참시키기에는 조금 모자란 구조지만, 직접 호러 요소를 덧대면서 요소요소 섬뜩함과 음산함은 물론 상당한 궁금증마저 불러일으킨다. 특히 서구를 배경으로 한 탓에 부분적으로 고딕 장르의 일면까지 엿볼 수 있어,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밝고 화사한 색감과는 무관히 스릴러 색채 또한 고유한 것으로 만든 점도 주목할 만하다. 

<회사원 채대리>(글 그림 채대리)는 에세이툰 장르가 가진 여러 장점을 포괄하면서 특히 ‘사색’에 많은 비중을 할애해 이를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33살의 대기업 대리인 채대리의 현재 이야기만이 아니라 회사 동기이자 대학 동기이기도 한 보람의 이야기, 그리고 대학교 시절, 수능시험 치던 날, 어렸을 적 피아노학원 다니던 시절 등을 마구 휘돌며 어쩌면 어느 누구나의 인생의 한 자락이었을 시절을 무심하게 툭툭 건드린다. 게다가 단순히 추억을 소환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채대리와 김대리가 떠올리는 과거 어느 시절은 붕어빵틀에 부어지듯 교육받아 회사를 이루는 한 개의 블록이 되어버린 현재와 언제든 맞닿으면서 독특한 울림을 자아내곤 한다. 때때로 여자로서 늘 남성 중심사회의 일면과 맞닥뜨리는 김보람 대리의 시선이 더해질 때면 작품의 층위는 한층 두터워진다. 제목과 작가 이름마저 ‘채대리’라 굳이 에세이툰 장르로 분류하긴 했지만, 여타의 에세이툰이 황당한 일상과 상황을 개그로 포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 진득하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그 덕분에 이 작품은 에세이 장르의 본디부터 정수였을 부분을 스토리만화로서 성찰하고 완성한 값진 결과물처럼 보인다. 

BL(Boy’s love)과 GL(Girl’s love) 장르를 주력으로 한 듯 보이는 ‘봄툰(www.bomtoon.com)’도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으니, 그중 <세기의 악녀>(글 네온비 그림 PITO)는 첫손에 꼽을 만하다. 이야기는 과거 연기 신동으로 주목받으며 큰 인기를 누리던 아역 배우 이루리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배우에서 은퇴한 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우울한 현재에서 시작한다. 루리가 연기자 생활을 포기한 이유는 다름 아닌 ‘역변’한 외모 때문. 그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충격 때문에 어렸을 적 귀여웠던 외모를 점차 잃어간다. 살도 찌고 피부도 안 좋아져 자신감을 잃은 나머지 연기는커녕 학교마저 포기한 채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조용히 잊히기로 한 것이다. 반면 어릴 적에는 늘 단역에 불과했던 루리의 유일한 친구 승찬은 현재는 스타가 되어 승승장구하면서 루리와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이에 과학자인 루리의 이모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수록 점점 더 예뻐지는 ‘미칩(美chip)’을 개발해 조카에게 이식함으로써 연기자의 꿈을 되찾아주려 한다. 그리고 마침내 미칩을 이식한 루리에게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물론 이야기는 아름다움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루리의 단선적인 성장에 국한되진 않는다. 우선 실수로 미칩을 거꾸로 삽입한 탓에 루리는 사랑을 받으면 예뻐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야 예뻐진다는 전복적인 설정이 가세한다. 스타 연기자인 승찬 역시 심한 난독증으로 말미암아 대본을 외우는 데 늘 애를 먹는 터라 루리의 도움 없이는 연기할 수 없는 지경이다. 눈에 띄는 외모로 연예기획사에 발탁된 하라는 출중한 외모와는 달리 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연기력의 소유자다. 하라는 창작자의 의도에 걸맞게 대본을 해석한 루리의 도움을 받아 오디션에서 다른 지원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연기함으로써 작가의 눈도장을 받기도 한다. 이렇듯 세 명의 주인공이 절묘하게 얽히고설키며 만들어내는 도약과 위기가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를 더해간다. 

<소야신집>(글 그림 홍다)은 ‘전하지 못한 말’이 의인화된 채 떠도는 가운데 이를 볼 수 있게 된 소년 전세계와 그런 떠도는 말들을 수신자에게 전해주는 소야 우체국의 이야기를 다룬다. 각 에피소드는 늘 애증이라는 모순된 감정으로 점철되곤 하는 인간관계의 틈바구니를 파고든다. 긴 시간 쌓아온 오해를 불식시키고, 그동안 죽 잊고 있던 말을 떠올려 전하는 상쾌한 결말만큼이나 따뜻하고도 환상적인 분위기로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만화다. 

‘딜리헙(dillyhub.com)’의 <극락왕생>(글 그림 고사리박사)은 ‘당산역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던 주인공 자언이 2011년 고3 시절로 회귀해 귀신과 관련한 기묘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순전히 지옥의 호법신 도명존자 때문이다. 지나친 공명심에 눈이 멀어 악귀도 아닌 자언을 멋대로 지옥으로 끌고 가려다 이를 관음보살에게 들킨 것. 관음보살은 도명으로 하여금 2011년 1년 동안 자언과 함께 부산에서 생활하면서 그를 귀인으로 만들어 극락왕생시키도록 명한다. 강한 불교색으로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고 별다를 것 없는 여고 안에 한국형 귀신을 여럿 형상화하며 생경한 판타지를 구축한 이 작품은 두 명의 여성 주인공을 통해 작품의 고유한 매력을 더욱 명확히 드러낸다. 자언은 죽음 이전, 그것도 멋대로 옛 학창 시절로 회귀한 것에 대해 의미 없는 시간을 다시 한번 겪는 ‘벌’로만 생각했건만, 의외로 그 안에서 새삼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자연히 그 과정은 담백하고도 진중한 의미로 수렴된다. 컬러가 아닌 흑백을 고집한 작화 역시 정교하고도 독특한 구상화를 통해 보는 즐거움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여기에 만화 장르 특유의 개그컷까지 절묘하게 더해지면서 굉장한 재미를 준다. 두말할 필요 없는 수작이다. 이밖에도 외계 생물, 그러나 게임을 좋아하는 백수에 불과해 보이는 남자들과의 동거 생활을 짧은 형식으로 구성한 <@-effect>(글 그림 Area)는 여타의 일상만화와는 선을 긋는 무심한 듯 잔잔한 스타일로 눈길을 끌며, 단편 <란제리요정>(글 그림 다과)은 깜찍한 그림체로 은근하게 정체를 가린 공포만화로서 작품의 메시지에 힘을 더한다. 
 
웹툰 시장이 포화라는 말은 결국 중소 규모의 웹툰 플랫폼의 숫자 역시 한계까지 다다랐다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몇몇은 서비스를 종료하기도 했고, 다른 몇몇은 합병을 통해 ‘중소’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앞으로 치고 나가려 단단히 벼르는 중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작품이 비단 ‘네이버’나 ‘다음’이 아닌 곳에서 다양한 소재와 연재 주기, 새로운 구성과 형태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그러나 포화 상태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협소하고 제한적인 게 사실이다. 분명한 건, 익숙한 웹툰 플랫폼을 벗어나면 반드시 색다른 작품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개중에는 더러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500여 작품이라면 그 안에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자신만을 위한 작품 또한 있을 게 분명하다. 당연히 그걸 위해 만들어진 다양한 플랫폼이기 때문일 터. 그야말로 보물을 발굴하는 재미가 도처에 있다.
 
 강상준 |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등의 매체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영화, 만화, 장르 소설,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며 먹고 살았다. <위대한 망가> <빨간 맛 B컬처> 시리즈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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