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의 콧김 - 비로소 인간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 2020-09-16 14:00

신의 콤김 - 비로소 인간이다.


만화-웹툰이라는 장르의 특징은 무한한 상상력과 소재의 
다양성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그 상상력과 소재의 다양성이 
영화, 드라마의 식상한 소재에 신선한 피를 공급하고 
장르를 확장하고 있다. 

글 최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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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탈> (글 그림 허영만 거북이북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시간의 강물에 풍덩 던져진다. 왜 태어났는지를 질문하기도 전에 심장은 뛰고 폐는 공기를 마시며 몸은 내달리기 시작한다. 

성경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 야훼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 2장 7절)라고 되어 있다. 신은 천지를 창조한 후 인간을 창조했다. 흥미로운 것은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흙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자신을 닮은 흙덩어리를 쓰윽 보고는 심호흡을 한 번 깊게 한다. 그리곤 그 흙덩어리의 코에 후~ 하고 생기(生氣)를 불어넣는다.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흙덩어리의 심장이 뛰고 폐가 활동하고 몸뚱이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태초에 ‘신이 인간에게 콧김을 나누어 준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흙덩어리를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콧김! 이 얼마나 놀라운 콧김인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 바로 창조의 능력 중 일부를 이용해 후~ 하고 부는 순간 그 능력은 콧김이 되어 인간의 몸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신은 인간에게 속내를 말한다. 

야훼: 웬만한 건 내가 다 만들어 놓았단다. 그러니 피조물 중에서 네가 만들고 싶은 걸 정해 흙덩어리로 빚어 거기에, 후~ 하고 너도 콧김을 한번 불어 볼 테냐?
인간: 아… 신나겠는걸요.
야훼: (염화미소를 지으며) 암, 신나지. (혼잣말로) 그걸 해봐야 비로소 인간이 되는 거니까 말이다. 하지만 꽤 고통스러울 게다, 이놈아! 

허영만 작가의 <각시탈>을 앞에 두고 각기 다른 다섯 가지를 전공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모였다.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패션, 그리고 공연. 이들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원캠퍼스 구축 사업에, 청강문화산업대학교가 지원서를 쓰기 시작하면서 모였다. 각기 자기의 전공 역량을 바탕으로, <각시탈>이라는 흙덩어리를 마주하게 되었다. 
마주한 모든 이에게 “그 흙덩어리가 동시대에 살아 움직이게 할 방법을 찾아라”라는 화두 하나를 슬그머니 밀어 넣었다.

과연 60여 명의 크리에이터들은 콧김을 제대로 찾아낼 수 있을까? 

‘눈을 피한다. 수줍어한다. 말이 없다’에서 ‘테이블마다 웃음꽃이 핀다. 시끄럽다. 눈을 마주친다’로 변화하는 시간은 불과 세 번의 만남이면 충분했다.

던져 놓은 화두는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이 만나는 즐거움에 빠져 웃어대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콘텐츠 IP는 어떻게 확장하는지. IP를 확장할 때 미디어 전략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허영만 작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각시탈>을 창작했는지, 직접 이야기를 듣도록 판을 만들고 진짜 현장 작업자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테이블로 돌아온 학생들은 각 전공의 특성을 살려 <각시탈>의 발상을 찾기 시작했고, 그 찾아낸 발상은 지금에 하고 싶은 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길은 두 갈래로 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각시탈 – 가디언 마스크>라는 제목을 붙이고, “각시탈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부터 길이 생기기 시작했다. 허영만 작가의 <각시탈> 시대 배경인 1930년대 ‘각시탈’이 해결하는 사건들을 찾아보는 순간, 같은 유형의 사건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작가 허영만의 만화 속에 존재하는 각시탈’을 지금 동시대로 불러내어서, 힘들고 어려운 곳, 약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게 하자. 그리고 그 각시탈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상상해보자. 그렇게 창작 뮤지컬 <각시탈-가디언 마스크>는 콧김을 만나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각자의 전공에서 허영만의 <각시탈> 원작 IP로부터 어떻게 새롭게 확장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만화창작 전공은 <각시탈-가디언 마스크> 텍스트를 바탕으로 웹툰 창작을 기획했고. 애니메이션 전공은 텍스트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창작을 구상했다. 게임전공은 게임 플레이어가 각시탈과 정신적 공유를 통해 독립군 처소로 돌아가 전투를 통해 독립군을 구하고 플레이어가 알고 있는 미래의 독립 후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 구조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를 다시 떠올리게 하여 현시대의 문제점을 파악한다는 스토리로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 

이렇게 원작 <각시탈>이라는 흙덩어리에 신으로부터 받은 콧김을 불어 넣는 일. 청강대 학생들은 자신의 DNA 깊은 곳에 신의 흔적으로 남아 있던 ‘콧김’을 꺼내 쓰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결코 재미있거나 쉽지 않을 터인데도 그 고통의 터널을 지나 찾아오는 가슴 벅찬 순간을 기대하며 밤을 지새우고, 동료들과 손을 맞잡고 작업대를 마주한다.  이 순간 ‘태초에 콧김을 나누는 사건’은 또다시 재현되고 있다.
만화-웹툰이라는 장르의 특징은, 무한한 상상력과 소재의 다양성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그 상상력과 소재의 다양성이 영화, 드라마의 식상한 소재에 신선한 피를 공급하고 장르를 확장하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허영만, 이현세 작가 시대 이후 강풀, 윤태호 작가 등의 웹툰이 인기를 끌면서 웹툰이 원데이터가 된 2차 콘텐츠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웹툰을 원작으로 삼은 일이 보편화되어 괜찮다고 소문난 웹툰은 이미 대부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공연 시장도 만화-웹툰 원작의 작품이 대중적 친숙함과 소재의 흥미로움을 등에 업고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위대한 캣츠비>를 시작으로 강풀의 <순정만화>, <신과 함께>, <나빌레라>, <무한동력> 이후 <이토록 보통의>, <한번 더 해요>, <우리 집에 왜 왔니> 등으로 연결되고 있다.

요즘 공연 현장에서 문화를 소비하는 관객층은 잘 짜인 플롯 구조의 잘 만든 작품도 즐기지만, 유튜브나 페이스북에서 유통되는 단순 사건의 감정적 소통도 즐긴다. 감정적 소통은 깊은 사색을 통해 맥락을 생산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드라마를 다루는 크리에이터들은 깊은 고민과 자기 작업을 통한 컨텍스트 생산방식은 더욱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감정적 소통을 통한 컨텍스트를 생산하는 방식에 새롭게 도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뮤지컬’이라는 공연 양식이 아주 적합한 흙덩어리라는 것을 크리에이터들은 직감한다. 그래서 뮤지컬 제작 및 창작자들은 웹툰에 손을 내밀고 웹툰은 뮤지컬에 기꺼이 IP를 내어주는 만남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청강 크리에이터들은 작가 허영만의 ‘작품 발상’을 이해하고 드라마의 기본 구조를 이해하는 바탕 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나가고 있다. 이 순간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나누고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있는 ‘신의 콧김’을 꺼내어 서로 만나고 하나의 콘텐츠를 창조하는 경험을 한다.

이런 경험은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시각각 광속의 속도로 변화하는 문화의 현장에서 소모적인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신의 콧김’을 꺼내 진정한 창조의 고통에 들어서는 ‘비로소 인간’이 되어 콘텐츠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가 되기를 상상한다.


최성신 | 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 교수. 연출가. 창작 뮤지컬 만들기를 제일 즐거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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