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땐 웃었고, 지금은 불편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 2020-08-26 14:00

그땐 웃었고, 지금은 불편하다


나를 웹툰과 화해하게 만든 것은 여성 작가들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에는 
내가 있고 나의 동료들이 있으며 엄마, 자매들이 살아간다.

글 이지혜


기안84, 조석, 귀귀…. 아, 전생에 알던 이름들인가. 이렇게 아득할 수가. 물론 이들이 매일 만나는 친구만큼이나 친근하던 때도 있었다. 네이버 요일별 웹툰을 챙겨보고, 베스트 도전까지 점검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오전 업무를 마치고 나면 즐겨보는 웹툰을 ‘새로고침’하며 아직 올리지 않은 작가들의 마감을 체크하고, 점심시간이면 동료들과 그날의 베스트 웹툰에 대해 즐겁게 혹은 격하게 평하곤 했다. 십여 년 전 일하던 TV 매거진에서 웹툰 연재 담당을 하면서 웹툰이라는 플랫폼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 세계를 움직이는 작가들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즐겼다.

웹툰은 지금도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매체에서 선호하는 창작물이다. 당시에도 새로운 창작자들이 새로운 플랫폼에서 기존 매체들의 한계를 깨는 작품을 선보였다. 웹툰에서는 공간도, 물리적 법칙도 심지어 제작비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초능력자들이 우주를 배경으로 전쟁을 벌이고(<덴마>) 800년 넘게 잠들어 있다 깨어난 최강자와 개조인간, 세계정복을 노리는 비밀결사(<노블레스>)까지 웹툰의 무대는 무한히 확장된다.

일상툰은 좀 더 쉽게 독자들에게 파고들어 안방에 정착했다. <마음의 소리>를 통해 전경이라는 집단의 구태의연함과 부조리를 뚫고 나오는 코미디에 웃었고, 8kg 성안에 갇혀버린 애봉이의 다이어트를 내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작가의 반려동물인 정남이와 센세이션의 안부까지 걱정할 정도였으니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는 내 마음의 소리이기도 한 셈이었다. 목요일은 <패션왕>을 보는 날이었다. 기안84 작가는 패션에 과도하게 몰입한 청소년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한편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외모지상주의를 꼬집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패딩 점퍼에 삼선슬리퍼를 신은 바가지 머리 고등학생들이 그때만큼 가깝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참, <정열맨> 때문에 오징어덮밥도 많이 먹었었지. 한번 추격을 시작하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방대한 스케일, 도대체 제정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고수고의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 덕분에 사무실에서 자주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야 했다.

매주 그들의 일상을 구경하고 공감하며 웃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떠올려 보니 흐뭇한 추억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사실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웹툰은 한 번도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나를, 여성을 경멸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눈을 뜬 여성들처럼 나 또한 빨간 약을 집어 먹었고, 내가 사랑하고 동일시하던 문학 속의 중년 남성이, 영화 속의 백인 남성 영웅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아가 웹툰에도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 <마음의 소리>는 끊임없이 여성 캐릭터 애봉이의 외모를 비하했고, <패션왕>은 <복학왕>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여성과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소수자를 조롱한다. <정열맨>의 귀귀 작가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여성들을 모욕했다.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를 입고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캐릭터의 성기 부분에 전복을 붙이고는…. 아니다, 하도 저열하고 졸렬한 방식이라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다.

이러한 남성 작가들의 퇴보와 추태는 비단 개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웹툰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고 소비하는 남성들은 여성 혐오를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의 시계를 한참 뒤로 되돌린다. 실체도 불분명한 ‘메갈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검열해야 한다고 주장한 ‘예스 컷’, ‘노 쉴드’ 운동뿐만 아니라 ‘성숙한 독자들을 위한 프리미엄 만화 서비스’를 한다는 레진코믹스는 작가들에게 페미니즘과 관련해 개인의 생각을 SNS에 올리지 말라는 성숙과도 프리미엄과도 거리가 먼 경고를 했다. 일부 남성 독자들은 페미니즘을 지지하거나 여성주의적 시각을 담은 작가의 작품에 열심히도 별점 테러를 한다. 이런 형국에서 어떻게 웹툰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에서 빠져나왔으며 이들의 이름이 전생처럼 아득히 먼 기억이 된 것이 조금도 아쉽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웹툰을 즐겨본다. 나를 구경꾼, 그것도 초대받지 못한 처지에 머물러있으라고 말하지 않는 작품들이다. 그것은 앞서 말한 이름과는 다르게 더 이상의 퇴보를 거부한 사람들 덕분이기도 하다. 도저히 전체관람가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선정적이며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월요웹툰의 강자 <뷰티풀 군바리>에 대해 여성들은 꾸준한 항의와 비판을 보내고 있으며, 작가들 또한 더는 눈과 귀를 닫고 있지 않다. 비록 페미니즘 지지 선언 이후 독자들의 반발로 사과문을 올리는 촌극을 빚기는 했지만 <덴마>의 양영순 작가는 작품 속에서 여성 캐릭터를 통해 발전을 꾀하고 있다. 2010년, 연재 초기만 해도 <덴마>에 등장하는 여성은 창녀 아니면 성녀였다. 여성들은 남성 캐릭터를 각성시키거나 눈요깃거리로 소비되었다. 그러나 연재가 계속되면서 <덴마> 세계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초능력자 퀑에도 여성이 등장하고, 강인한 리더와 최강의 퀑 역시 여성이다. “50kg 넘으면 몬스”라는 대사에서 “그건 외모 평가질 할 때나 쓰는 말 아닌가?”로 오기까지 그는 과거에 머물기보다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기를 택한 모양이다. <누들누드>와 <아색기가> 같은 성인만화에서 여성의 성 상품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놀라운 발전이다.

특히 나를 웹툰과 화해하게 만든 것은 여성 작가들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에는 내가 있고 나의 동료들이 있으며 엄마, 자매들이 살아간다. 웹툰과 불화하던 시절에도 거의 유일하게따라가던 <어쿠스틱 라이프>의 난다 작가는 결혼과 출산, 육아를 통해 바뀌는 일상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그는 오랜 연인 한군과 결혼을 하고 딸 쌀이를 낳으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전과는 달라져야 하는 생활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배우자와 다른 소비 행태와 식습관 차이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조율해나간다. 딸을 키우면서 대체 불가능한 행복을 느끼면서도 고된 육아의 속성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한다. 동시에 마감 노동자로서 겪는 곤경과 페미니즘에 대한 고민 등은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가지고 있을 문제와 기쁨을 두루 돌본다.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를 보면서는 자주 울화통을 터뜨렸다. 나 역시 시댁 식구들에게 ‘예쁨’을 받고 싶어 하는 ‘며느라기’ 시절을 거쳤기에 우아하지만 단호하게 가부장제의 부조리한 역할극을 고발하는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며 연재 내내 민사린이 되어 기혼 여성 친구들과 열을 올렸다.


image.png


이 외에도 여성 작가들의 웹툰은 한층 더 다양하고 넓어지고 있다. 현실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위험과 불합리가 살갗으로 감지될 만큼 생생한 <혼자를 기르는 법>에서 위로를 받고, <극락왕생>의 멋진 여성 영웅들을 만나고 임파워링 할 수도 있다. 수놈만 골라 죽이는 능력자 엄마가 맛있게 반찬을 만들어내는 <홍녀>의 대담함에 환호할 수도 있다. 이제 다시는 혐오가 판치는 과거의 웹툰으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도 악플에 시달려가며 원고를 그려가는 여성 작가들에게 마감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그리고 당신 역시 남성 중심적인 웹툰에 실망했거나 불화하는 중이라면 혹은 퇴보가 아닌 진보를 원한다면, 새로운 웹툰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지 않겠습니까?  


이지혜 |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에 관해 쓰고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더 많이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절은 수상하고 악의는 
요란하지만, 오늘도 영화 속의 멋진 여성 캐릭터와 그보다 더 멋진 주위의 여성들에게서 힘을 얻습니다


무가지 <지금, 만화>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제공하는 계간만화, 웹툰비평지입니다.


클릭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금, 만화> 페이지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