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것이 재난만화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 2020-09-30 14:00

이것이
재난만화다


호남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백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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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선〉©이은재


재난만화가 주목받고있다
2010년대 들어 ‘재난’을 소재로 한 영상 콘텐츠가 속속 등장했다. 변종 연가시로 인한 감염을 다룬 〈연가시〉(2012), 고층빌딩의 화재사고를 다룬 〈타워〉(2012), 변종 감기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 사태를 다룬 〈감기〉(2013), 좀비로 인한 사회적 마비를 다룬 〈부산행〉(2016), 대형 터널 붕괴 속 구조작업을 다룬 〈터널〉(2016)등의 작품이 흥행에 성공했다. 웹툰으로는 〈조의 영역〉(2012), 〈삼풍〉(2013), 〈연무〉(2013), 〈1호선〉(2013), 〈데드데이즈〉(2014), 〈하이브〉(2014) 등의 작품이 제작되어 인기를 얻었다. 

사실 ‘재난’이라는 소재는 한국에서 그다지 사랑받는 장르가 아니었다. 사랑받지않은 정도가 아니라 관심 밖이었다는 게 더 적확하겠다. 웹툰 장르에 재난이라는 카테고리도 별도로 구분되지 않아 〈조의영역〉, 〈심연의하늘〉 등의 장르가 소년, 스릴러 정도로 구분될 정도였다. 사실 〈조의 영역〉, 〈하이브〉, 〈데드데이즈〉, 〈1호선〉 등의 작품에 대한 장르를 구분할 때 재난 장르인가, 라고 물음을 던진다면, “글쎄?” 라고 답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데드데이즈〉나 〈1호선〉은 ‘좀비물’, 〈하이브〉, 〈조의영역〉 등은 ‘괴수물’ 정도로 구분하는 게 일반적일 수 있다. 최근 콘텐츠의 흐름에서 장르를 명확하게 구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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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드데이즈〉©D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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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브〉©김규삼


좀비 장르는 재난과 호러의 성격이 강하고, 괴수 장르는 SF와 재난의 성격을 갖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처럼 이런 저런 소재들이 섞여 있어 장르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 장르를 구분하고 분석해 볼 필요는 있는데, 장르라는 것은 유사한 소재의 작품들이 서사적 구조와 연출과 이미지의 미학적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 비평가 로빈 우드는 장르를 연구할 때 ‘무엇’에 관한 것보다는 ‘왜’에 대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장르가 탄생한 조건과 맥락을 살펴 봐야 한다는 것인데 2010년대 이후 재난을 다룬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것은 어떤 변화의 시점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연재난과 사회재난
재난만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재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재난만화의 특징은 결국 재난의 유형과 개념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재난’은 ‘뜻밖에 일어난 재앙과 고난을 뜻하는 것’으로 물(川)과 불(火)을 의미하는‘재(災)’와 어려움, 고통을 가리키는 ‘난(難)’이 결합된 단어이며, 이와 비슷 한것으로 통용되는 재앙(災殃) 역시 하늘이 내리는 벌을 의미한다. 이처럼 전통사회에서의 재난 및 재앙은 지진이나 태풍, 가뭄, 홍수등의 자연적 원인에 신화적 성격이 결합되어, 인간의 통제 바깥에서 일어나는 ‘운명의 장난’으로 인식되었다. ”(문강형준, 2012) 그러나 과거의 재난과 달리 현대 사회에서의 재난은 단순한 자연적 현상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과 도시 기반 시설의 확대로 밀집화 ・ 대형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재난은 자연적인 동시에 인위적으로 일어난다.

이처럼 재난을 크게 둘로 구분하면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재난은 말 그대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재난을 의미하며 태풍, 홍수, 해일, 지진, 화산활동, 소행성 ・ 유성체 등 자연 우주 물체의 추락 ・ 충돌, 그밖에 이에 준하는 자연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재해다. 사회재난은 화재 ・ 붕괴 ・ 폭발 ・ 교통사고 ・ 화생방사고 ・ 환경오염사고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피해와 교통 ・ 금융 ・ 의료 등 국가 기반 체계의 마비, 감염병, 가축전염병의 확산,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피해라고 할 수 있다.
(이강원·손호웅, 2016) 

사회재난은 대부분 사람의 고의나 실수에 원인이 있다. 즉 문화적 · 사회적 현상에 기인하기 때문에 재난 상황의 발생과 대처는 그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 수준과 이데올로기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재난 장르는 다른 장르에 비해 각 사회가 갖고 있는 특징을 보다 명확히 보여준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각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표출한다.


재난 장르는 어떻게 시작됐고 왜 주목받는가?
시각매체에서 재난장르는 만화보다는 영화에서 더 활발히 제작됐고 연구됐다. 그 때문에 먼저 재난영화에 대한 정의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재난영화(Disaster Film)란 다수의 사람들이 자연적 혹은 인위적 재앙을 맞아 시련을 겪고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이야기의 구조를 이루는 영화’(이승구·이용관, 1990)를 말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연재난이나 여행의 재난, 도시 재난, 괴물의 공격 등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는 일군의 영화들을 지칭하는 것’(김광철·장병원, 2004)이다. 재난영화의 출발점은 할리우드에서 찾을 수 있다.

할리우드의 재난영화는 1970년대 초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관계가 있다. 당시 미국은 경제, 사회, 정치 전반의 위기상황을 겪고 있었고 대중의 불신은 보다 나은 사회 시스템에 대한 열망을 불러왔다. 이러한 대중의 불안한 심리에 재난을 소재로 한 스펙타클 형식의 영화산업 전략이 통했고 흥행에 성공하기 시작했다.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 〈대지진〉(1974), 〈죠스〉(1975) 등의 작품이 이러한 경향을 이끌어 갔다. 재밌는 점은 블록버스터의 시작이 이 지점이었다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가 1억 달러를 넘는 흥행수입을 올리며 본격적인 블록버스터 시대를 열었고 이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전 지구적인 재난 ,지구의 종말, 거대한 괴물, 우주 전쟁 같은 거대 서사를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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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1973)의 백인 배우들


이때 등장한 다양한 작품들에서는 ‘백인우월주의’, ‘가부장적인 성격’, ‘기독교 신앙’, ‘영웅주의’를 보여주는데, 당시 미국 사회를 위협하는 요소들에 대한 백인 중산층 남성들의 열망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도 해석 할수있다.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한 재난영화의 관습적 요소를 살펴 보면 ① 위협받는 대상은 개인보다는 사회 전체이고, 피해자는사회의 축소판처럼 그려지며, ② 극중 인물보다는 플롯이 우선되며, ③ 때때로 계급 간의 갈등이 삽입되고, ④ 주변으로부터 고립된 상황에서 재앙을 당하고, ⑤ 사태해결은 주로 전문가(엔지니어 등)가 하며 ⑥ 영웅의 등장으로 재난을 해결한다. ⑦ 문제가 해결되면 미국대통령이나 장관 등 대표자가 대국민성명을 발표하며 세계에 미국의 위상을 알린다. 이러한 점은 당시 미국이 갖고 있는 테러나 외부 위협세력에 대한 불안함을 재난으로 표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재난영화에서 재난의 정체성은 당시 대중들의 불안감과 공포심의 상징이자 은유물이라 할 수 있다.

재난 장르가 재미있는 점은 재난 상황으로 인해 사회적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그 사회의 원초적인 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 사회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특징들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촉진제의 역할을 한다. 많은 장르가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재난 장르는 이데올로기를 명확하게 드러내면서 각 문화권의 문제점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터너는 “재난이란 사전 경고들을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문화 속에서 축적된 위험요소들이 한꺼번에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집중하여 나타나서, 한 사회의 하위체계의 존속을 위협하는 사건”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재난 장르는 사회가 숨기고 있던 부조리함,부정부패등의 문제점을 표면 위로 드러내고 사회구성원들의 억제되어 있던 본성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재난을 소재로 한 작품이 모두 재난 장르는 아니다. ‘재난으로 인한 혼란이 내러티브의 중심이되고 그것을 피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사회 구성원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 재난 장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재난만화의 장르적 특징
재난장르를 정의할 때 영화와 만화를구분하는 것은 큰의미가 없어 보인다. 앞서 설명했던 재난영화의 정의에서 매체의 특성이 따로 정의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작업 방식과 미학적 측면에서 분석한다면 영화와 만화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움직이는 영상과는 달리 정지된 장면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만화는 재난영화에서 내세우는 스펙타클의 효과를 얻기 힘들다. 이 지점에서 재난영화와 재난만화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재난영화의 시작과 전성기는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적 전략에 의존한 것이었다.

대다수의 재난만화는 스펙타클보다는 개인에 집중한다. 화려한 시각효과를 통해 재난을 현실적으로 재현한 스펙타클을 주요 전략으로 취하는 영화에 비해 화려한 시각효과를 구현하기 힘든 만화는 영화와는 반대의 전략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광범위한 곳보다는 고립된 곳, 대규모 재난보다는 개인의 사고에 초점을 맞춘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홀로 생존하거나(《생존게임》) 대규모 재난을 겪지만 터널 등의 고립된 장소에서 사고를 당하거나(《드래곤 헤드》) 무인도에 갇혔다가 탈출 했더니 세상이 멸망해 있다던가(《그의나라》)하는 방식으로 소수의 인원을 남겨놓고 그들의 생존기를 보여주는 식이다. 개인에 집중하게 되면서, 재난을 야기한 사회적 시스템을 해결하기 위한 영웅적 모습보다는 재난 상황에 의해 변해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묘사에 비중을 둔다. 사회적 시스템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이 능력 있는 성인보다는 미성년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재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딱히 없지만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삶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갖고있다. 삶에 대한 열망으로 버티다보면 자연스럽게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추악함을 목격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현대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인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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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래곤 헤드》©모치즈키 미네타로


재난만화는 재난영화와 마찬가지로 재난 장르의 유사한 플롯을 갖추고있지만, 재난영화보다는 범위가 한정적이고 일상적인 특징을 보인다. 재난만화의 유형을 정리해 보면 ① 지진이나 화산 또는 폭풍이나 눈과 같은 자연 재난, ② 화재나 테러에 의한 도시 재난 ③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 좀비 재난 ④ 초자연적 변종 생물의 공격 등으로 압축된다.여기서 주목할 점은 각각의 특징이 따로 설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중복된 형태로 재난 장르의 서사구조를 이루기도한다. 재난만화는 사회 시스템을 해결하거나 재난 속에서 군중들을 구해내는 영웅주의보다는 사회 시스템 속에 순응하고 살아가던 혹은 적응하지 못하던 개인의 나약함이 재난을 통해 강한 생존 열망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목도하고 고발하는 특징을 보인다.


한국의 재난만화가 주목하는 것은?
과거의 재난은 한정적이라는 특징이있다. 지진, 화산폭발, 해일 등 일정 지역 안에서 벌어지는 재난은 위협적이지만 한정된 범위를 갖고 있다. 때문에 각 국가가 갖고 있는 재난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에 따라 소재가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있다. 일본의 경우 지진, 화산폭발, 해일 등의 자연재난에 노출되어있고 폭격, 원폭 피해 등 대규모 폭발의 두려움을 갖고 있는데 〈고지라〉(1954)나 《브레이크다운》(1995)은 핵폭발에 대한 두려움을, 〈일본침몰〉(1973,2006), 《드래곤헤드》(1995)는 지진, 화산폭발에 대한 두려움을 표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있다.이렇듯 과거의 재난만화는 각 국가가 겪은 주요한 재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한국은 자연재난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국가다. 가까운 일본이 항상 지진, 해일, 화산폭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본다면 한국에서 재난 장르의 제작이 비교적 저조했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 현대의 재난에 대한 인식은 복합적이다. 1990년대 일어난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사고,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남북 대치상황으로 인한 천안함 폭침, 2014년의 세월호 참사, 메르스,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 등 사회적 재난이 주를 이룬다.각기 다른 형태의 재난처럼 보이지만 결국그 저변에는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와 위기관리의 실패, 혼란에 대처하는 미숙한 대응이라는 공통요소가 있다.

1990년대의 잦은 사고에 대한 사회적 금기와 재난의 기술적 재현이 힘들었던 재난 장르는 한국영화계에서 기피대상이었다. 그러나 한국 만화는 한국 영화가 쉽게 다루지 못했던 재난을 오히려 다양하게 다루고있다. 박흥용의《경복궁학교》(1997)는 한국의 사회적 재난이 줄줄이 터지던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다. 어느 날 무너진 건물에 갇힌 7명의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보여주는 이 만화는 당시 일본의 재난만화나 할리우드의 재난영화들이 보여줬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플롯을 보여준다. 삶에 대한 강한 열망과 생존본능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을 보여주는 기존의 재난 장르와 달리 개별적 에피소드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담담하게 고발한다. 다만 세 번째 에피소드 이후 청소년 보호법 파동으로 잡지가 중단되어 연재가 종료되어 버리는 바람에 전체적인 작품의 의도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는게 안타깝다. 사회의 부조리를 다루던 만화가사회의 부조리로 인해 연재가 중단됐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윤태호의 《야후》(1998)는 주인공 김현의 시선을 통해 1985년 5공 시절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한국 사회의 사건사고를 보여준다. 5공 시대의 폭력성과 부정부패,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의 대규모 사고들을 경험하며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당시 한국 사회의 부조크다운》(1995)은 핵폭발에 대한 두려움을, 〈일본침몰〉(1973,2006), 《드래곤헤드》(1995)는 지진, 화산폭발에 대한 두려움을 표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있다.

박흥용의 《그의 나라》(2001)는 조금 독특하다. 무인도에 표류하는 주인공의 생존기처럼 보이지만 주인공 내면의 두 인격과의 대화를 통한 철학적 사유와 무인도 탈출 후 황폐해진 세상과 광기어린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모순된 사회에 대한 냉철한 화두를 던진다. 앞서 소개한 3개의 작품 모두 본격적인 재난만화 장르라고 말하기 애매하지만재난을 소재로 다룬 얼마 안되는1990~2000년대 작품들이다. 본격적으로 재난을 소재로 다룬 재난만화가 많지 않아 당시 한국 재난만화를 유형화시키기 힘든 면이 있지만 이 작품들은 모두 자연적 재난이 아닌 사회적 재난을 소재로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재난의 전지구적인 확산
앞서 말했든 과거의 재난은 한정적이다. 그러나 현대적 재난의 특징은 전지구적인 확산이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선 누출,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등 바이러스 감염은 더 이상 한정된 지역 내에서 벌어지는 재난이 아니다.

과밀화된 도시인구와 유동적인 현대인의 생활은 자연재난이 사회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항시 내포하고 있다. 〈혹성탈출:진화의시작〉(2011)의 엔딩 장면은 바이러스에감염된 파일럿의 비행경로를 통해 현대적 재난이 확산되는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실에서는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사고와 코로나사태가 그 예다. 이렇듯 현대의 재난은 더 이상 한정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남의 나랏일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게 재난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을 갖게 한다.

2000년대 중반 웹툰이 정착되고 다양한 장르가 생산되면서 시대적 문화 코드를 반영한 재난만화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재난 소재의 본격적인 등장은 좀비물이었다. 주동근의 〈지금 우리 학교는〉(2009)을 시작으로 한국만화에서 다루지 않던 전형적인 좀비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2010), 이은재의 〈1호선〉(2013), DEY의 〈데드데이즈〉(2014)등 좀비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재난을 다룬 웹툰이 제작되었다. 이 작품들은 재난 상황에 미숙하게 대처하는 국가의 모습과 그에 따라 변해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담았다. 또한 이상 기후나 원인을 알 수 없는 변화로 인한 괴생명체의 출현을 다룬 〈조의 영역〉(2012), 〈하이브〉(2014) 같은 작품들이 만들어지며 높은 인기를 얻었는데, 〈조의 영역〉은 한국형 재난만화가 갖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의 출몰로 사회가 무너져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미국식 영웅주의나 일본식 피해의식을 보여주지 않는다. 재난을 해결할 수 없는 등장인물들은 사회를 원망하기보다는 단지 생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내러티브의 근간에는 어차피 현실이 재난과 같은 ‘헬조선’이라는 인식이 있다. 국가는 이미 불신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러한 재난 상황과 그에 대한 미숙한 대처를 이미 예상했다는 식이다. 그리고 결국 재난이 해결됐음에도 그러한 모순점과 부조리함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현재 한국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이후 본격적인 재난 실화를 담은 〈삼풍〉(2013),알 수 없는 연무로 인한 재난상황을 다룬 〈연무〉(2013), 학교폭력과 지진을 소재로 고립된 장소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유쾌한 왕따〉(2014) 등 사회적・자연적 재난을 다룬 본격적인 재난만화들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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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의 영역〉©조석


재난만화는 우리의 일상을 파괴시키고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했던 것들은 우리를 배신한다. 우리가 수긍하고 의지하며 살아왔던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현 사회의 문제점을 상기하게 된다. 2010년 들어 잇달은 국가적 사고가 발생하며 우리의 일상이 변하고있다. 2014년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재난대처능력의 불신을 야기했고 현재 코로나 사태는 우리의 일상을 파괴하며 전 국민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재난만화가 주목받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재난을 소재로 다룬 이야기는 재난에 숨겨져 있는 현실의 모순을 독자들이 인식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재난만화는 웃고 기는 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환기시킴으로써 현실적 모순을 극복해 나갈수 있는 장르로서 적합하다.


참고문헌|김려실(2012),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고지라와 일본침몰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유문무(2007), 영화 속 재난에 나타난 사회적 함의와 그 성찰 -〈괴물〉을 중심으로-, 《한국경호경비학회》 
              이지행(2017), 연쇄하는 재난의 세계를 건너기: 묵시록적 포스트모던 재현의 양상, 《대중서사연구》 제23권 1호
              한송희(2019), 한국 재난영화의 정치적 무의식: 2010년대를 중심으로, 사단법인 언론과 사회
              백종성(2013), 재난만화 장르의 표현기법 및 서사구조 특성 연구, 상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이강원 · 손호웅(2016), 《지형 공간정보체계 용어사전》, 구미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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