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만화 《풀》이 지금 우리에게 남긴 위안부에 대한 의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 2020-12-09 14:00

만화 《풀》이 지금 
우리에게 남긴 위안부에 대한 의미

 
중부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김신


인간이 만든 최악의 재난, 전쟁

재난이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 보면, 원래 별의 불길한 모습을 상징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하늘로부터 비롯된 인간의 통제가 불가능한 해로운 영향’으로 풀이한다.

재난의 영어(disaster) 어원을 분석하면, dis는 어원상 분리, 파괴, 불일치의 뜻이며, aster는 라틴어로 astrum 또는 star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별과의 분리’ 혹은 ‘별의 파괴’로 풀이된다. 과거의 재난은 홍수, 지진과 같은 대규모의 천재인 자연재해를 지칭하는 것이었으나, 현대사회에 들어와서는 대규모의 인위적 사고의 결과가 자연재해를 능가함에 따라 "Disaster"는 자연재해와 인위재난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재난은 일반적으로 국가나 지방정부의 지원을 통하여 관리될 수 없는 심각한 대규모의 사망자, 부상자, 재산손실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보통 예측가능성이 없이 갑작스럽게 발생한다. 이렇듯 재난이란 의미가 포괄적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한편으로 개인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는 재난은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재난이다. 그것은 인간만이 유일하게 저지르는 범죄인 전쟁으로 인위적 재난에서 파생된다.

우리가 살면서 과연 전쟁이라는 단어를 듣지 않은 세대가 존재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자, 전쟁으로 파생되는 재난은 자기방어에 가장 취약한 아이와 여성들에게 그 고통과 피해가 집중 발생된다는 점에서, 전쟁은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추악한 범죄 중 하나라는 데 이견이 없다. 자연재해로 파급된 재난은 물질적 재앙으로 인간들의 삶에 보편적 피해를 끼치면서 대중의 기억에 오래도록 생채기를 내며 저장된다. 자연재해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 안전장치를 만드는 데 적극적인 반면, 인위적인 재난은 특정 집단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대중은 내 일이 아닌 경우 외면하고 회피하는 비겁함이 작용하여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면 쉬이 잊어버리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런 성향은 피해 당사자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주는 경우가 많다. 또한 당시 사회적인 가치관에 의해 2차 폭력을 가하는 건 21세기에 살고 있는 현실에서도 자행되고 있음을 글로벌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하고 있다.

만화 《풀》이라는 김금숙 작가의 작품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으며 새삼 최근에 벌어지는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사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마음에 서두가 길어졌다. 정의연 사태는 1939년에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독일과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의해 자행된 전쟁 피해자들의 아픈 역사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2020년 현재에도 해결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생채기를 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라 생각한다. 전쟁 중에 발생한 수많은 전쟁범죄들 가운데 위안부 강제 동원은 매우 위압적이며, 조직적이었다. 위안부 강제 동원의 아픔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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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김금숙


위안부에 대한 따스하면서 냉철한 시각, 만화 《풀》

만화 《풀》에 대한 비평 청탁은 아마도 2014년 1월에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 주빈국으로 초청되어 시작된 ‘위안부만화 기획전시’로 출발하여 귀국 후 전국 40개
도시에서 순회전시에서 내가 총괄 큐레이터로 활동했기 때문일 테다. 전시 중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이 어떤 형태로 표출되고 이해하는지에 대한 관점이 필요해서 일 것이다,라고 짐작된다. 그래서 이 글의 중심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과,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만화 《풀》에서 보여주는 작품 속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생각 차이가 무엇인지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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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김금숙


만화 《풀》은 일본군에 의해 강제적 성노예로 끌려갔던 이옥선 할머니를 작가가 직접 인터뷰하여 만든 작품이다. 당시 전시를 준비하며 만난 할머니들은 경계심이 많고 마음 속의 분노와 화가 많으셔서 외부인과의 접촉을 많이 꺼려하셨단다. 김금숙 작가가 여성 작가이기에 좀더 할머니와의 소통이 가능했으리라 추즉한다. 또한 평소에 김극숙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하면서 냉철한 시각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김금숙 작가는 주로 아픔을 내포하고 있는 역사만화를 그려왔다. 박완서 작가의 《나목》을 원작으로 한 만화 《나목》, 발달장애 뮤지션의 이야기를 그린 《준이 오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그린 《풀》, 제주 4.3항쟁을 그린 《지슬》 등에서, 현재를 같이 살아가며 아픔과 마주하며 그 아픔의 당사자들과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김금숙 작가만의 공감의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이는 단순 추측이 아니라 ‘위안부 만화전’ 참여작가로 긴 시간을 그와 함께한 경험이 나에게 안겨준 소감이다.

만화 《풀》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구술을 토대로 창작한 작품이다. 글로만 표현하면 그 생생함을 표현하기가 부족하기에, 글과 그림으로 독자의 상상력과 공감대, 감동을 확대하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래서 《풀》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생생한 경험을 기반으로 한 ‘르포 만화’ 형식을 취한 그래픽노블이라 할 수 있다. 만화 《풀》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디테일한 할머니의 감정을 세심하게 표현해냈다.


정치적으로 왜곡되지 말아야 할 위안부 문제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몇몇 작품들이 정형화된 고통의 표현에 그치다 보니 사회적 맥락을 놓치는 경향이 의외로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표현할 때 ‘꺾어진 꽃’으로 비유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지난 30년간 수요집회를 주도하였으며, 여성인권운동에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투쟁해온 삶의 주체자며, 실제적 전쟁 피해의 당사자다. 그들은 당당히 활동하고 계시며 사회적 불의에 결코 꺾이지 않으면서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삶의 주체자로서 당당히 그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꺾이지 않는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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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김금숙


김낙호 만화평론가는 만화 《풀》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시간의 교차, 기억의 과정, 무엇보다 감정의 형상을 끄집어내는 완성도 높은 만화 미학속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삶을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체계적 빈곤, 수탈의 관계, 낮은 곳에서도 더욱 낮았던 여성 인권의 모습이 있다. 사회의 억압적 조건, 그 안에서 살고자 내리는 선택, 희망과 부질없음이 지옥의 경험 이전과 그 이후에도 계속됨을 보여줌으로써, ‘위안부’ 문제가 그저 역사청산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의 화두로 직결됨을 훌륭하게 증명해내는 역작이다.”

만화 《풀》은 ‘위안부 문제’는 인간이 저지른 가장 추악한 인위적 재난의 비인간적 결과임을 고발하고 있다. 또한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아픈 이야기를 ‘한 개인의 고통’만으로 치부하지 않고, 오롯이 역사의 상처 속에서도 홀로 싸워온 인간의 보편적 삶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다소 무겁고 우울해질 수 있는 소재를 김금숙 작가만의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으로 잘 표현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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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김금숙


김금숙 작가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바람에 스러지고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풀”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국적과 생사를 떠나서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바치는 헌시나 다름없다. 윤명숙 상명대 객원연구원은 ‘위안부’ 문제는 대일 과거청산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국내적으로는 친일청산의 문제, 나아가 지금 우리 안의 가부장적 성차별 문제로 확장했다. 대외적으로는 냉전체제 등으로 제기되지 못했던 19~20세기 제국주의 국가에 의한 식민지배 청산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라는 말로 추천글을 대신했다.


우리의 숙제를 알게 해준 인권 만화

2014년부터 2017년에 이르는 3년간의 ‘위안부 만화전시’를 큐레이팅하며 현장에서 관람객들의 반응을 보며 아직도 우리에게 남은 숙제가 많음을 느꼈다. 유교적 전통문화가 남아있는 도시에서의 전시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피부 깊숙이 인지하게 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과거가 같은 민족과 인간의 아픔으로 인식하기보다, 창피한 과거사로 잊고 싶어하는 일부 이기적인 관람객을 보면서, 우리가 지키지 못한 아픈 역사의 증인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게 죄스러움마저 느꼈다.

그래서 만화 《풀》과 ‘위안부 만화전시’는 ‘인권 만화’이자 ‘평화 만화’의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일본군의 만행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의 마음을 묘사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인 만화 《풀》은 이 역사적 사건에서 피해자가 주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옥선 할머니와 다른 피해 할머니들의 삶을 오롯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일본군 성노예로 바라보는 시각 또한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비틀릴 수밖에 없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일본의 시간으로 바라보는 시도는 의외로 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만연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사건을 단순히 개인의 생계 문제로 돌리는, 단지 포주에게 속은 창녀의 돈벌이로 왜곡하는 발언은 일본의 극우세력이 늘 주장하고 바라는 관점이나 다름없다. 만화 《풀》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역사적 보편성을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영국 신문 《가디언》의 ‘2019 최고 그래픽노블’, 프랑스 ‘휴머니티 만화상 심사위원 특별상’,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019 올해 최고의 만화’ 등으로 선정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정의연 사태를 보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새삼 떠올랐다. 김구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평생 블랙리스트로 사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의 이야기를 녹취하면서 나는 깊은 울림을 받았다. 해방 전 일본에 사셨던 아버지에게 전쟁에 참전중이던 큰아버지가 전쟁의 아픔을 편지로 자주 보냈다고 한다. 그중에이런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아우야 조선의 처자들이 전쟁터에 끌려와 성노리개로 이용되는데 그 처지가 너무도 딱하여 마음이 아프다.’

큰아버지는 당시 목격한 이야기를 편지에 상세히 써서 보내왔다고 한다. 그 편지들은 어릴 적에 살던 판자집과 함께 불타 사라졌지만, 아버지의 이 이야기는 나에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아픔을 공감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내 가슴에서 이 당시의 감동이 다시 살아났듯이, 만화 《풀》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를 직시하고 이제라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그 목소리가 평화의 씨앗이 되고 복수와 분노의 아우성이 아니라, 치유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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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김금숙 만화원화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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