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풍자화, 카툰을 통한 표현의 자유 : 도덕적, 사회적 검열에 대하여

윤보경 | 2020-10-05 10:34

풍자화, 카툰을 통한 표현의 자유 : 도덕적, 사회적 검열에 대하여


윤보경 

프랑스 주간지 가운데 하나인 <샤를리 엡도 (Charlie Hebdo)>는 의도와는 다르게 국제적으로 그 이름이 유명세를 탔다.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 때문이다. 2015년 이슬람교를 풍자한 삽화를 실었다는 이유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샤를리 엡도’ 주간지사에 침입하여 기자 8명, 작가 1명, 건물 관리인 1명과 경찰 2명을 살해한 사건으로, 9월 들어서 본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다시 화제에 올랐다. 게다가 최근에는 ‘샤를리 엡도’ 주간지사가 있었던 예전 사무실에서 파키스탄 출신 남성이 또 다시 테러를 저질러 2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가 밝힌 테러의 이유도 그 전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를 만평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샤를리 엡도 주간지의 인사과 디렉터 마리카 브레 (Marika Bret)는 5년 전부터 꾸준한 협박과 위협이 지속되어 경찰의 정기적 보호를 받으며 법정 재판에서 증언을 이어가고 있다고 테러 이후의 고충을 밝혔다.

92-1.jpg
▲ < 총격 테러 사건 이후, 샤를리 엡도는 위의 카툰을 1면으로 주간지 발행을 이어간다.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 나는 샤를리다 » 플랭카드를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그의 위에는 ‘모두 용서되었다’고 쓰여있다>


이처럼 ‘샤를리 엡도’를 둘러싼 여러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프랑스 만화전문 뉴스레터 <악튜아 베데 (Actua BD)>는 관련한 전문가들을 초대하여 ‘표현의 자유와 검열’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였다. 
샤를리 엡도에 가해진 심각한 총격 테러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존재하며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 등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자신과 뜻이 맞지 않은 풍자화나 카툰 등을 비난하고, 짧은 시간 안에 작가의 커리어와 이미지에 먹칠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도덕적 혹은 사회적 검열’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었고, 다수 대중의 의견을 선동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최근 프랑스 일간지 <류마니떼 (L’humanité)>에 실린 작가 에스페 (Espé)의 카툰이 프랑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며 비난을 받았고, 이후 작가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나오면서 ‘허용되는 표현의 한계’ 혹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다양한 토론이 이어졌다. 
그가 그린 카툰은 특히 페미니스트, 여성 권리 보호 협회 등의 비난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 경기가 끝나고, 사이클 선수 남편과 방송사 기자 부인이 방송사 화면에 잡혔다. 그들은 사적 관계 (남편-부인)보다는 공적 관계(사이클 선수- 프랑스 TV 방송국 기자)로 보여지길 바랬다. 기자는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선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 조금은 오묘한 상황 (공적 관계를 내세우고 사적 관계 짐짓 모른 척 하는 상황)을 카투니스트, 에스페는 코믹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는 이 부부가 한 침대에서 나체인 상태로 질문을 던지고 받는 것처럼 묘사하였고, 그들의 부부 생활이 ‘검열’되어 자세한 디테일을 볼 수 없는 것으로 그렸다. 기자의 알몸과 사이클 선수의 이불 위 실루엣, 그가 입에 물고 있는 물건 (여자 속옷으로 추정되는)의 위에 쓰여진 CENSURE 는 ‘검열’이라는 뜻이다. 

92-2.jpg
▲ <에스페의 카툰, 기자가 ‘프랑스 TV의 질문에 대답해주실 수 있나요?’라 질문하는 공적 관계의 텍스트가 사적 관계의 한 침대 위 부부와 공존하고 있다>


92-3.jpg
▲ <사이클 선수 줄리앙 알라필립 (Julian Alaphilippe)과 방송국 기자 마리옹 후스(Marion Rousse)의 실제 인터뷰 장면>


자신의 일을 전문적으로 해내고 있는 여성을 마치 ‘섹슈얼 오브제’처럼 묘사한 것과 그들이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드러내고자 했던 관계를 비꼬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공분을 샀다. 비난이 거세지자 이 카툰을 실었던 <류마니떼> 일간지는 논란의 카툰을 디지털 버전 신문에서 삭제하고, ‘삭제된 이미지는 본 일간지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지 않았다’고 삭제 이유를 밝히며 ‘앞으로 에스페의 카툰 작품을 싣지 않을 것’이라는 사태 해결을 위한 사과문을 개재하였다. 그럼에도 일간지 <류마니떼>를 향한 비난은 지속되었는데, ‘모든 비난을 작가의 탓으로 돌리며, 카툰을 싣기로 결정했던 일간지의 판단에 대한 책임은 사라졌다’는 것이 이유였다. 
작가와 작품, 일간지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던 가운데, 작가를 옹호, 지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모든 독자의 취향에 맞는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그림에서 보여진 여성 기자의 포즈는 작년 달력에 실렸던 그녀의 사진과 같은 포즈라는 것이다. 그 달력에 대한 비난이나 거부감은 없었는데, 이처럼 이미 여성을 ‘섹슈얼한 이미지’로 소비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에서 이번 상황으로 대두된 모든 비난이 한 작가, 한 작품만을 향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카툰 협회 <평화를 위한 카투닝 (Catonning For Peace)>도 작가 에스페를 지지하겠다 밝혔다. “1년 전에 있었던 뉴욕 타임즈 (New Yok Times) 국제 에디션의 작가들에 대한 집단 해고도 이번 상황과 비슷했다. 비난을 받은 작품의 작가들과의 협업을 바로 끊어버리는 것으로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현상이 업계에 완전히 자리 잡혀가는 듯 보여 걱정이 크다.”고 지지 이유를 설명했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표현의 자유를 통해 발현된 비꼼이나 조롱에서 받은 상처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표현의 자유는 목숨 혹은 커리어를 걸어야 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등 다양한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92-4.jpg
▲ <백여개의 미디어사가 함께 ‘열린 편지’를 개제했다. 다같이 표현의 자유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