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만화 비평가 협회(ACBD)상의 후보 다섯 작품과 최종 그랑프리 수상작

윤보경 | 2020-12-29 15:33

만화 비평가 협회(ACBD)상의 후보 다섯 작품과

최종 그랑프리 수상작


윤보경 


2020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팬데믹 상황으로 만화계는 정말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원래대로라면 ’만화의 해’ 행사로 많이 분주했었을 도서 박람회나 만화 축제, 만화 전시 등은 취소되거나 온라인을 통한 축소된 형태의 이름뿐인 축제로 치러졌다. 올해 출시된 만화 신간들 가운데 대다수는 정상적 영업이 불가했던 (두 차례의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기간인 대략 5개월 동안 휴점) 서점의 사정 때문에 출간 날짜를 다시 조정하기도 했다. 다행히 출시를 했더라도 독자들에게 어필할 시간적 여유나 다양한 프로모션 이벤트 등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판매대에서 내려지고 잊혀지는 등의 어려움도 종종 겪었다. 온라인 상에서의 책 구매는 가능했었지만, 이는 ‘우연히 흥미를 갖게 되어 발견’되는 작품보다는, 이미 기존에 유명한 작가의 작품에게 훨씬 더 유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온갖 제약과 어려움 속에서도 다행히 작품들은 계속해 출시되고 있으며, 그 중 몇몇 작품은 호평 받고 있다. 내년 프랑스 출판 만화는 올해 밀린 리스트로 인해 기존보다 조금 더 많은 신간들이 나올 예정이다. 

어려웠던 한 해를 정리하면서, 다양한 플랫폼과 협회 등에서는 ‘어려움 속에서도 빛을 낸’ 작품들의 리스트를 선정하고 발표하고 있다.
가장 먼저, 프랑스의 만화 비평가/언론가 협회 (ACBD) 회원들은 2021년 그랑프리 후보에 선정된 15작품 가운데, 최종적으로 다섯 작품을 추려 발표했다. 
레오니 비쇼프 (Léonie Bischoff)의 <아나이스 닌 : 거짓말의 바다에서 (Anaïs Nin : sur la mer des mensonges)>를 비롯한, 마튜 바브레 (Mathieu Bablet)의 <탄소와 실리콘 (Carbone et Silcium)>, 스타니스라스 무세 (Stanislas Moussé)의 <긴 삶 (Longue vie)>, 시나리오 작가, 유베르 (Hubert)와 작화가, 잔짐 (Zanzim)의 <인간의 껍질 (Peau d’homme)>, 알렉스 잉커 (Alex Inker)의 <다른 일과 같은 일 (Un travail comme un autre)>이 리스트에 올랐다. 여성 작가의 작품과 중소규모 출판사의 작품들과 대형 출판사 작품들이 같이 섞여 있는 등 다양한 작품을 아우르는 리스트였다. 하지만 ‘프랑스어권 만화’를 조건에 넣고 있기 때문에 선정작이 모두 프랑스어권 작품들이라는 형식의 한계는 존재한다. 
만화 비평가/언론가 (ACBD)협회는 ‘새로움을 발견하고, 가치를 지키고 지지하겠다는 생각 속에서’ 수상작 선정 기준을 설명하면서 ‘서사와 그래픽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작가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나 목적 등에 의해 작품에 힘과 독창성, 새로움 등이 드러났는지를 점검한다’고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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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BD 그랑프리 후보 다섯 작품

위의 작품 가운데, 만화 비평가 및 언론가들의 가장 많은 표를 가져간 최종 그랑프리 선정작은 글레나 (Glénat) 출판사가 출간한 <인간의 껍질 (Peau d’homme)>이었다. 이 만화는 이미 르 푸앙(Le point)에서 주관한 월린스키 만화상 (Prix Wolinski de la bd point)과 란데노 만화상 (Prix Landerneau), RTL 대상 (Grand Prix RTL de la bd)을 수상한 작품이었다. 내년 1월 말에 발표될 앙굴렘 만화페스티벌에서도 수상하게 된다면 (이미 경쟁부문에 본 작품이 올라가있다) 기존에 없었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작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껍질>을 높이 평가하는 독자와 비평가들은 ‘진부한 표현을 거부하는, 가벼운 듯 깊은, 독창적인 이야기’에 그 가치를 두고 있다. 관용, 페미니즘, 현대성을 기피하는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철학적인 동화’라고 평가될 만큼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본 작품의 시나리오를 쓴 유베르(Hubert)는 지난 2월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했다. 작품과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 모두 드라마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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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껍질이 수상한 만화관련 상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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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관련대상 4개 수상작품이 된, 인간의 껍질


다양한 어려움이 산재했던 한 해였지만 좋은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는 한, 만화에 대한 관심은 계속 될 수 있을 것이다. 만화 산업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좋은 작품들에게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