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과 증명 〈하이브〉

한국만화영상진흥원 | 2020-11-04 14:00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과 증명

<하이브>


만화평론가

한기호



“나에겐 회사에 출근하는 것과 벌레 굴에 들어가는 게 별로 다른 일이 아니야.” 주인공 이은성의 이 한 마디는 웹툰 〈하이브〉를 판타지의 공간에서 현실 세계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이 힘은 뒤로 갈수록 약화되어 아쉽기는 하지만 한가지 질문을 남긴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전염의 시대에 다시 보는 웹툰 <하이브>

웹툰 〈하이브〉는 산소 농도의 증가로 거대해진 곤충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인간들을 공격하면서 시작되는 재난만화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재난 상황보다는 전략과전투, 음모와 계략, 모정과 애정 등 다각도로 변주를 거듭하지만 기본적인 출발점은 갑작스런 재난 상황과 그에 대한 극복에 있다. 갑자기 닥친 재난에 대처하는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문제들을 시사성 있는 주제로 펼쳐 보여주던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역동적인 전투장면과 화려한 채색 등이 돋보일 뿐 깊이 있는 주제를 풀어내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이 웹툰은 재난을 다룬 만화로는 손색이 없다.

재난이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예측하지 못한 시기에,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닥치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하게 닥치는 〈하이브〉의 곤충들처럼 지금 우리사회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19의 공격으로 고통을 겪고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비상한 재난 상황의 한복판을 힘겹게 지나고 있다.
그러니 재난의 한복판을 지나며 재난을 소재로 한 만화의 의미를 살피는 일은 여러 가지로 유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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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김규삼


재난 상황에서 인간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궁극적으로 자신 안에 숨어있던 본성이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게 된다. 그것은 모든 생명체가 가진 본질적인 생존 본능이다. 처음에는 무기력하고 위축된 직장인이었던 이은성 ‘과장’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한 전투 병기인 ‘똥개’로 변신하는 것은 재난 상황이 아니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은 분명하다. 처음부터 간교하고 교활했던 전무는 재난 속에서도 자신의 비열함을 최대한 활용하여 강력한 권력을 얻는데 성공한다.그가비열하게 얻은 성취는 결국 허망하게 무너져 버리지만 그것은 만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여전히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 잔인하고 교활한 인간들이 오히려 득세하며 권력을 누리는 꼴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늘 현실은 그 어떤 만화보다 더 잔혹한 법이다. 성지은 대리 역시 평소에 드러내지 못했던 이은성에 대한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며 순애보를 펼친다. 재난상황이 닥치지 않았다면 그런 감정이 그처럼 순수한 본성으로 드러났을 것인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인간들이 자신의 능력과 본능을 드러내는 자리가 바로 〈하이브〉가 그리는 재난 현장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어떤 본성을 드러내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인간에게 묻는다

웹툰 〈하이브〉는 재난 상황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해 묻는다. 그 물음은 외형적인 것과 내면적인 것을 통칭하는 물음이다. 외형적으로 인간과 동일한 형태의 존재라면 모두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외형적으로는 인간의 형태를 잃지 않은 최성재 전무가 자신의 생명과 권력을 위해 어린 아이를 인질로 삼는 모습은곤충몸을 한 혼종인간이 순수하게 어린아이를 돌보려는 모습과 선명하게 대조된다. 그 둘 중 누가 더 ‘인간’에 가까운 존재인가? 외형은 조건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에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묻는 셈이다. 그 조건은 국가나 지역이 될 수도 있고, 생래적으로 타고난 피부색일 수도 있으며, 개인적 성향이나 이념이 될 수도 있다. 마치 주인공인 ‘과장’ 이은성이 ‘남편’일 때와 ‘아빠’일 때와 ‘오빠’일 때와 ‘똥개’일 때에 따라 어떻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가 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이미 국가와 지역과 피부색과 이념과 성향 등에 따라 온갖 차별이 만연한 우리의 현실 세계는 그 형태적 차이만 미미할 뿐 〈하이브〉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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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김규삼


우리는 아직도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아시아인들에 대한 차별을 잊지 않고 있다. 결국 인간은 외적으로 주어진 온갖 차이들을 차별이 아닌다양성이라는 시각을 통해 수용적으로 극복하고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며 슬기롭게 존속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마치 커다란 재난처럼 끌어안고 있다. 그것은 코로나19로 이제 막 촉발된 사태가 아니라 전 인류가 안고 있는 해묵은 과제라고 보아야맞다. 그렇게 볼 때 〈하이브〉에서 전개되는 곤충과 인간의 대립과 전쟁은 현실 세계의 인류에게 항시 존재해온 차별과 분열과 갈등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인간이란 위기에 직면할 때 스스로의 본성에 충실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재난의 상황에서 동물적 본능만을 극대화하며 살아가려고 처참한지 옥도를 연출한다.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조직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힘을 기르고 그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치면서까지 “벌레만도 못한” 삶을 이어가려 한다.

그런 삶 속에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언행들은 〈하이브〉가 추구하는 세계가 어떤 세계관을 지향하는지 암시한다. 이은성은 이미 작품 초반에서 “사는 게목적이라고 살기 위해서 아무거나 해도 되는건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인간임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자기 가족들의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몸을 던지면서도 “남의 곤경을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도와주는 세상이라면 지금 내가 가족 곁에 없어도 누군가가 저처럼 우리 가족을 도와주지 않”겠느냐는 이상적인 발언으로 ‘개장수’를 어이없게 만들지만 오히려 독자들은 감동하게 된다. 그것은 그의 아내 민영 역시 마찬가지이다. 외롭게 고립된 상황에서도 ‘인간이 벌레만도 못한 세상에서 그나마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서로 돕는 거란’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순박했던 어린 아이조차도 “하느님이 어딨냐?”며 울부짖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순수한 인간성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주인공들의 언행이 던져주는 울림은 크다. 세계는 결국 그 세계를 구성한 구성원들의 의지에 따라 재편되기 마련이다. 인간들이 구축한 이 세계는 구성원인 인간들이 어떤 의지를 발현하며 이끌어 가는가에 따라 아름다운 지구별이 될 수도 있고 거대한 벌집이 될 수도 있으며, 황폐한 도시로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그러니 〈하이브〉를 이끌어가는 힘은 ‘개장수’의 전략이나 탁월한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유약해만 보이는 이은성의 끈질긴 가족애와 성지은에 대한 애정이며, 성지은에게서 발현되는 응축된 사랑이며, 그리 크게 강조되지 않다가 곤충으로 변이되며 오히려 강력하게 드러나는 민영의 모성애 등이다. 코로나19로 경직되고 개별화되고 고립되어버린 이 사회에 아직 남아 있는 인간성의 모습,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순수한 인간애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안셀무스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은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논증이다.이들의 논증 여부로 신의 존재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논증이 ‘믿음’의 영역을 ‘이성’의 영역으로 포괄하려 했다는 성과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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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김규삼


그러한 이성적 노력은 신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인간의 논리적 사고력을 확장하며 더 고등한 경지를 개척해주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에 대한 증명

웹툰 〈하이브〉가 화려한 채색과 엄청난 규모의 화력을 쏟으면서, 또 과학적 상식을 간단히 뒤집는 비정상적 곤충의 생태를 끌어오면서까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결국 ‘인간 존재에 대한 증명’은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대한 답을 곤충으로 인한 재난 상황과 그에 직면한 인간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통해 끌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답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모습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주 잠시만 〈하이브〉의 현장에 우리 자신을 넣어보기로 하자. 내가 그런 재난 상황에서 인간과 곤충의 혼종이 되어버렸을 때 끝까지 잃지 않을 것은 무엇일까?종족 보존의 본능인가, 여왕을 차지하고 궁극의 권력을 얻겠다는 의지인가, 가족을 되찾겠다는 소박한 희망인가에 따라 자신이 설 자리는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지금 코로나19 사태의 한복판을 걷고 있는 우리 인류 모두에게 주어진 공동의 질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형태의 외형을 가지고 어떤 질문 앞에서 어떤해답을 찾아가는 존재인가. 이것이 모든 종류의 재난이 인류에게 던지는 물음이며, 웹툰 〈하이브〉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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