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감염과 질병의 시대, 사랑과 공존을 찾아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 2020-12-23 14:00

감염과 질병의 시대,
사랑과 공존을 찾아서

《푸른 알약》 + 《바깥 나라의 소녀》 

+ 〈좀비딸〉 + 〈칼 가는 소녀〉


만화평론가

김상희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좋을 때든 힘들 때든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려면 강한 인내심과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 바이러스 감염이 새로운 현실생활이 된 요즘, 사랑과 포용, 공존이 도리어 멀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고 손을 잡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지금의 시대가 새로운 사랑의 방식을 발명해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코로나19 이전 시대에서 추구했던 사랑의 가치는 구식으로 폐기처분되어야 할까? 마스크를 쓰지 않던 그 때에는 감염과 질병에도 사람들은 굳건하게 사랑을 나눴던가? 이미 수많은 만화와 웹툰에서 위기와 재난 속에서도 끈질기게 애정과 헌신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의 혼란을 극복하고 혐오와 증오 대신 관심을 가지고 공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감염자를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법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다. 중병을 견뎌야 하는 환자를 가족을 둔 사람이라면 온 가정의 생활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스위스 출신 만화가 프레데릭 페테르스도 에이즈 보균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만 고비를 만난다. 2014년 한국에 발표된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 《푸른알약》은 에이즈 보균자인 아내와 그녀의어린 아들과 함께 가정을 꾸리기로 결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솔직한 카티에게 반한 프레데릭은 가족의 냉대 속에서도 그녀와 그녀의 어린 아들과 함께 살기로 한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살기로 결심한 순간, 그들이 갖고 있는 HIV(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와도 끌어안아야 함을 깨닫는다. 카티가 인생에서 제일 비참했던 순간은 아들이 에이즈 보균자라는 걸 안 순간이라는 말처럼 프
레데릭뿐만 아니라 환자인 카티조차 사랑하는 아들을 에이즈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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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알약》©프레데릭 페테르스


여느 가정과 달리 프레데릭 네는 조심해야 할 것들이 생겼다. 아내와 성관계를 할 때는 항상 콘돔을 써야 하고 피가 나는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항상 건강을 유지하고 각자의 몸을 습관처럼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또 어린 아들이 본격적으로 에이즈 치료를 시작하면서 비롯되는 영구적인 부작용을 조심해야 한다.
(현재 ‘대한에이즈예방협회’는 HIV 바이러스를 강력하게 억제할 수 있는 치료제가 개발됐으므로 약을 잘 복용하고 치료를 잘 받으면 관리가 가능한 질병이라고 알리고 있다-편집자 주)

그러나 《푸른 알약》은 그런 고통스러운 일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운명이라는 말을 싫어하던’ 싱글일 때의 프레데릭은 가족이 생긴 후부터 미래를 궁금해 하며 두 사람만을 생각하기로 마음먹는다. 때때로 막연한 비극을 상상할 때 나타나는 거대한 흰 코뿔소가 프레데릭을 두렵게 만들지만 카티와 만들어갈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미소를 짓기도 한다. 《푸른 알약》은 프레데릭의 일상을 병구완에 지친 눈물 바람으로 채우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끊임없는 대화, 병원을 오가는 일상 속의 소소한 깨달음을 단순하고 상징적으로 그림으로써 신체적으로 건강한 보통 가정과 다를 바 없이 인생을 즐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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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알약》©프레데릭 페테르스


이윤창 작가의 네이버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이하 좀비딸)도 불변의 가족애를 무기로 소소한 일상을 회복하자고 말한다. 난데없는 좀비의 창궐에 고향으로 내려온 정환은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좀비가 된 수아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온 것이다. 시간은 지나 좀비 사태는 진정됐지만 정환은 한반도 유일의 좀비가 된 수아를 정부와 마을 사람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좀비인 수아는 불치병 환자처럼 일상생활을 아빠와 할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이어간다. 얼굴과 몸도 좀비가 됐지만, 할머니의 효자손 교육으로 동네 할머니들과 운동도 하고 학교도 다닐 수 있게 된다. 어떻게 사랑하는 하나뿐인 딸을 좀비라고 끊어낼 수 있느냐며 제 품에서 끈질기게 놓지 않는 아버지 정환의노력 덕분이다.

〈좀비딸〉은 혈육의 정으로 인물들을 연결한다. 병원에서 좀비가 된 어린 아들이 총살당하는 걸 목격하는 엄마의 눈물은 끊어낼 수 없는 인륜을 비극적으로 묘사한다. 좀비가 됐지만 차마 피를 나눈 가족을 저버릴 수 없는 한국인의 끈질긴 가족애가 〈좀비딸〉의 비정한 공포를 강조한다. 작가의 개그 코드가 유난히 빛을 발한다고 느낀다면 그 바탕에는 내 가족이 좀비가 됐을 때 느끼는 고통과 사랑이 공감대를 이미 형성했기 때문이다.


감염자를 내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법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무엇을 모르고, 네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안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질병도 마찬가지다. 원인과 예방을 잘 안다면 얼마든지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전 지구적으로 혐오와 차별, 냉소와 이기주의가 판치는 것도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기 때문이다.

《바깥 나라의 소녀》와 〈칼 가는 소녀〉는 저주라는 전염병에 걸린 소녀와 불치병에 걸린 미소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질병이 바이러스를 전파할 뿐만 아니라 혐오와 편견을 뿌리내리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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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나라의 소녀》©NAGABE


나가베 작가의 《바깥 나라의 소녀》는 안쪽 나라에서 쫓겨난 소녀 시바와 바깥 나라의 ‘선생님’이 함께 저주받은 자를 공격하는 세력에게서 살아남으려는 데서 시작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아주머니를 기다리는 하얀 소녀 시바는 검은 형체를 한 선생님의 보살핌 속에서 바깥 나라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바깥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시바를 죽이려는 군인들을 만난다.

흑백의 경계로 뚜렷하게 나뉘는 안쪽 나라와 바깥 나라의 설정은 두 세력의 갈등과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저주의 공포를 강조한다. 한 번 저주에 걸리면 치유될 수 없는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먼 곳으로 추방하고 제거한다. 이야기의 배경도 중세와 근대 사이의 어떤 지점처럼 보여서 전염병을 치료할 만한 지식과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듯하다.

결국 저주받은 자는 무조건 내쫓아야 하고 다시는 가까이하면 안 되는 존재임을 이야기 내내 부각함으로써 인물들의 오해와 갈등이 깊어진다. 흑백이 대비되는 거친 그림과 동화처럼 잔잔하게 이어지지만 간간이 드러나는 극한 상황들이 긴장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오해와 편견으로 그려진 삭막한 두 세계의 단면이 생경하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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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가는 소녀〉©오리


네이버웹툰 〈칼 가는 소녀〉의 미소녀 사랑은 평생 희귀병을 앓아야 한다. 그러나 신비로운 병약 미인으로 제약회사의 주가를 주무를 정도로 인기를 얻자 사랑의 병은 약점이 아닌 특권이 되어 버린다. 〈칼 가는 소녀〉의 사랑은 사람들은 보살핌이 필요한 환자가 아닌 동경과 질투의 10대 셀럽이다. 그래서 사랑은 병으로 고통받는 것보다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를 깨부수는 게 더 힘들다. 〈칼 가는 소녀〉는 감염과 공포로 멀리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반전시킨다. 몸이 아픈 사랑은 대중의 인기를 얻어야만 제약회사의 특수한 치료약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질병으로 애정과 관심이 필요한 사랑은 대중을 매혹하는 미모와 태도로 동경과 인기를 얻는다. 질병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 질투와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서 마음의 벽을 쌓아야 하는 유명인사인 셈이다. 〈칼 가는 소녀〉는 질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어떻게 대중을 현혹 시키는 유해한 것인지 새로운 시각으로 풍자한다.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적 거리를 두어야 하는 지금도 사람들은 더 강력하게 손을 잡으려 하고, 마음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래서 더 용기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전에 미처 몰랐던 것을 다시금 떠올리고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감염의 위험이 도사린 데도 나와 피를 나눈 가족을 버릴 수 없다. 그래서 더 소중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나와 내 이웃을 가로막는 것이 예방할 수 있는 바이러스인지 무의미한 편견과 오해인지도 공부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올지 모르는 요즘, 나의 위생을 챙기는 데도 바쁜데 공부까지 해야 하다니. 억울하고 답답하지만 나 혼자 사는 지구가 아닌 만큼 지구인으로서의 할 일을 되새기게 하는 게 코로나시대가 주는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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